부모가 더 많이 사랑한다는 착각
학부모 공개수업 D-1.
학부모 공개수업이 있는 주간은 일상과 다른 기운이 맴돈다.
이건 마치 현장체험학습 가기 전날? 수학여행 가기 전날과 비슷한 기운이다.
아이들의 흥분지수가 높아지면 교실 속 공기의 흐름과 농도에 변화가 생긴다.
소위 '기 빨린다'라는 표현을 이때 쓸 수 있다.
공개수업 당일 아침은 말할 것도 없다.
하긴 우리 아들도 교실 앞에서 날 보고 좋아 날뛰었으니.
아이들에게 학부모 공개수업은 현장체험학습, 수학여행, 운동회 수준의 이벤트다.
2교시 공개 수업이 시작되기 전, 부모님들이 조심히 교실로 들어온다.
앉아있는 아이들과 손 인사도 하고, 가까이 다가와 머리를 쓰다듬기도 한다.
'저분이 준호 아버님이신가?'
준호 부모님이 많이 궁금했었는데 준호 가까이 자리를 잡으시고 가만히 보니 얼굴이 닮았다.
우리 준호는 3월부터 10월까지 과학, 미술 일부 자신이 좋아하고 관심 있는 수업 내용을 제외하고는
참여를 하지 않거나 딴짓을 해서 분 단위로 때로는 초 단위로 준호를 집중시켜야 했다.
그런 준호의 오늘 수업은 어떨까. 궁금하다.
사실 올해가 가기 전에 준호 부모님을 학교에 모시고 진지하게 상담을 해 볼 생각이었다.
잘되었다. 오늘 아버님도 준호의 수업 모습을 보실 테니 상담이 좀 더 수월해지지 않을까 내심 기대도 되었다.
우와~ 세상에~ 반전이. 이런 반전이.
'준호야! 너 이럴 수 있니!'
한 시간 내내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경청하며 발표해 볼 사람? 에 한 번도 빠짐없이 손을 들고 참여했다.
준호 아버지의 표정은 처음 교실에 들어설 때 내심 걱정이 비쳤지만 서서히 평온함으로 이내 행복함 가득으로 교실을 나가셨다.
윽.. 상담.. 못하겠다.
준호 부모님은 내 말을 믿지 않으실 거다.
(사실 오늘 준호뿐만이 아니라 반전 친구들이 너무 많았다. 이 녀석들...!)
그러고 보니 지난 5월, 우리 아들 참관수업 때가 생각난다.
바른 자세, 적극적인 발표, 모둠활동에의 주도적인 참여.
지나치게 나를 의식하는 너의 모든 행동들이 부자연스럽긴 했지만 만족스러웠다.
오늘 나를 많이 놀라게 한 준호를 비롯한 우리 반 친구들, 그리고 우리 아들은 부모님께 잘 보이고 싶었던 거다. 평소와는 너무 달랐지만 그 모습에서 거짓과 가식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이들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자신들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서 있는 부모에게 '잘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거다.
난 그걸 아이들의 '부모님에 대한 사랑'이라고 느꼈다.
우리 부모는 아이를 사랑한다.
그런데 아이들도 못지않게 부모를 사랑한다.
어떤 가정은
자식이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이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보다 더 클 수도 있다.
부모는 오롯이 부모의 선택으로 아이를 세상에 나오게 하지만
아이들은 본인의사와 상관없이 선택받음으로 세상에 나올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 입장에선 참으로 불리한 조건이다. 억울할 수도 있겠다.
내가 선택한 게 아니니 누굴 탓할 수도 없다.
아이들에게 태어남은 곧 운명이다.
그러나 자신의 의지와 전혀 상관없이 태어난 이 아이들이
선택받은 이 아이들이 부모를 사랑한다는 건 어쩌면 참으로 고마운 일이 아닐까.
내가 어떤 사람이건, 내가 어떻게 하건, 내가 부모라는 그 이유로 날 사랑해 주는 건 고마운 일이다.
"남편~ 만약 우리 감동이가 부모를 선택할 수 있었다면... 우리를 선택했을까?"
"음, 글쎄..."
"내 생각엔... 부모를 선택할 수 있었다면 굳이 우리를 선택하지 않았을 것 같아. 그래서 난 가끔 미안한 마음도 들고, 고마운 마음도 들어. 우리 마음대로 애를 세상에 나오게 하고, 우리를 부모로 만나게 했잖아. 그러니 우리.. 애한테 잘해주자. 최고의 부모는 못되더라도 적어도 우리에게 태어난 걸 싫어하지는 않게. 우리가 세상에 나오게 했으니까 우리가 더... 잘해주자."
"아들~ 너 엄마, 아빠한테서 태어난 거 나쁘지 않지?"
"어~~ 음~~"
"왜~ 그래도 엄마, 아빠 80점은 넘지 않아?"
"어~~ 음~~"
"너 다시 뱃속으로 들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