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말들을 삼키지 않으면 아이는 영영 어른이 될 수 없다.
아이를 위해 뭐든 다 해주고 싶었던 엄마는 몇 마디 삼키지 못한 것뿐인데 아이를 영영 아이에 머물도록 만든다.
-나는 다정한 관찰자가 되기로 했다.(이은경) 중-
아이가 일 년 넘게 다닌 수학 학원이 있다.
학원 수업을 듣고 나면 3-4쪽 남짓의 문제 풀기 숙제와 배운 내용을 복습 후 부모님께 설명한다.
이 과정을 바탕으로 다음 주에 쪽지 시험을 치른다.
이 패턴은 적지 않은 시간과 성실함이 수반되어야 한다.
어떤 때는 다 맞을 때도, 어떤 때는 반만 맞을 때도 있고.
이 쪽지 시험이 뭐라고 맞은 개수가 통보될 때 일희일비하게 되는 게 점점 맘에 안 든다.
컴퓨터 부팅 속도가 느려지고
자동차 브레이크가 느슨해짐을 감지할 때
'아 다 되어가는구나'를 느끼 듯
숙제를 마치기로 한 요일에 해내지 못해 밀리고
그러면 도미노처럼 다른 것들도 와르르 미뤄진다.
진득하게 앉아있기를 예전만큼 못하고
물 먹는다고 일어나고, 간식 먹는다고 일어나고
그런 모습들이 눈에 띄게 포착될 땐
이때다 싶어
내 안에 모아놓았던 불만들을 여과 없이 쏟아낸다.
'그렇게 할 거면 그만 다니자.'
'누가 공부를 그렇게 하냐.'
'매번 시간이 부족하다 하면서 네가 시간을 낭비하는 걸 모르냐.'
'왜 한 번할 때 제대로 안 해서 두 번하냐.'
이왕이면 잘했으면 하는 마음이 더 크니
아이를 다그치고, 내 눈에 보이는 부족한 점들을 상세히(?) 알려준다.
그러면 그것에 자극받아, 힌트를 얻어 정신 차릴까 싶어?
대부분의 부모들이 그런 마음으로 잔소리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건 만고 우리들 생각이다.
우리 엄마가 나에게 저렇게 했다면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네! 알겠어요. 엄마! 잘해볼게요!!"라고 할까.
그게 아닌 걸 알면서 계속 반복하는 이 엄마는
머리가 나쁘거나 나쁜 엄마다.
이번 주는 최대 고비다.
아 이제 진짜 이 학원을 그만둬야 할 때가 왔구나. 싶다.
숙제를 처음으로 다 못했고
내일이 쪽지 시험인데 수업 내용이 이해가 안 된단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어려울 때가 있었지만 모르겠다고 한 적은 없었기에
화가 나기보다 이게 우리 아이의 능력치구나 싶었다.
그래도 그럼에도 아이 탓을 하게 된다.
'그러게 좀 집중해서 듣고, 바로 복습했으면 좋았잖아. 내일이 시험인데 이제 방법이 없다.'
라는 말을 참았다.
삼켰다.
"이만하면 할 만큼 했어. 누구나 어려운 파트가 있는데 좀 모르고 갈 수도 있지. 늦었다. 자자."
11시를 훨씬 넘기고 아이가 조용히 잔다.
눕자마자 뻗어버렸다.
다음 날,
학원 수업 1시간 반 가량을 남겨두고 전화와 왔다.
기운이 없다.
"아들, 잘 들어."
"너! 수학 잘해! 솔직히 네가 지금 푸는 문제 못해내도 돼. 대한민국 모든 애들이 그거 다 공부해? 그게 뭐라고. 종이에 검은색 프린트된 문자와 식일 뿐이야. 화이트로 지우면 사라져 버리는 아무 힘도 없는 문제일 뿐이야. 그깟 수학 문제에 네가 왜 져. 기죽지 마! 알겠지? 엄마는 네가 오늘 빵점 받아도 괜찮아. 아~~ 무렇지도 않아. 정직하게 포기하지만 말고 하는 데까지 해. 오케이?"
아이가 피식 웃는다.
한층 밝아진 목소리로 말한다.
"엄마, 하는 데까지 해볼게"
"그래! 아들, 파이팅!"
마음이 가볍다.
사실 쪽지 시험이 있는 날엔 몇 점일까. 궁금하다.
그런데 오늘은 하나도 안 궁금하다.
속이 시원하다.
수업을 다 마치고 아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 나 다 맞았어."
"엥? 정말? 어떻게?"
"뭘 어떻게야. 내가 포기 안 해서 그렇지."
"너, 그깟 수학 문제에 지지 않은 거야?"
"응!"
"오~ 멋진데. 다음엔 좀 져주기도 해."
"싫어~~~"
삼키지 않았다면
기어코 내 하고 싶은 말을 다 뱉었다면
2시간 뒤 우리는 이런 대화를 하지 못했을 거다.
더 많은 말을 삼켜야겠다고 다짐했다.
아이를 믿으며
아이를 더 소중히 여기며
말을 삼켜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