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승아리 Jul 04. 2024

내가 너한테 질 것 같지?

엄마는 계속 진화할 거야.

나름 인성교육으로 장관상을 받은 엄마인데

상상도 못 한 일이다.


엄마한테 못된 말을 하다니.

엄마한테 지랑 비교하며 지적을 하다니.

엄마한테 온 힘을 다해 짜증을 내다니.


내가 그리던 내 아이는 이러면 안 되었다.

엄마가 얼마나 학교에서 애들을 바르게 키우는데

네가 집에서 이러면 나는 뭐가 되냐고.


다시는 못하게 하리라.

교실에서 아이들을 지도하는 훈육 주머니를 펼친다.


1. 온화하게 그러나 단호하게 말한다.

    "예의 없는 행동은 하면 안 되는 거야."

2. 눈을 쳐다보며 말없이 강한 눈빛으로만 덜덜 떨리게 한다.

3. 네가 한 행동이 네 삶과 인류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질리게 잔소리한다.

4. 마음공부를 쓴다.(반성문을 쓴다.)


아이들 성향에 또 빈도에 맞게 골라 쓰면 된다.

교실에서는.


그런데 집에선 참으로... 안된다.

  

내가 아이에게 받은 상처와 배신감에 내 감정을 숨기기가 어렵고

내가 아무리 무섭게 한들

자신을 너무 사랑하는 엄마와

엄마의 마음 여림을

이미 뼛속까지 아는 눈치 빠른 이 아들에게는

쉬이 먹히지 않는다.

포기하면 편하려나.

안 들은 척. 안 본 척.


그러나

버릇없는 말

짜증

이상한 말

안되지. 지면 안되지.


1번부터 4번까지 그때그때 골라 무한 반복.

나 또한 감정을 절제 못하고 폭발.

악순환이다.


내가 교실에선 얼마나 영향력 있는 선생님인데

집에선 이 모양이다.


오늘도 툭 내뱉은 너의 말이

엄마 마음을 아프게 했다.


예전 같으면

나도 폭발하고 모든 에너지를 다 소진, 쓰러졌겠지.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이럴 땐 '10초'를 세어보라고 했지.

자, 해보자.

'하나, 둘, 셋, 넷...' 흥분이 조금씩 가라앉는다.

 

그래, 아무리 폭발한들 달라질 것 없는데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


그때, 눈앞에 '시집'이 보인다.

"아들, 이거."


폭발해야 할 내가 차분히 건넨 시집에 '뭐지'하는 눈빛이다.


"37쪽에 '너를 두고'란 시가 참 좋더라. 외워보자."


폭발한 엄마의 모습이 온데간데없고

엄마의 버럭으로 너는 벌 받은 거라

쌤쌤이다. 생각하려 했겠지만

미소 지으며 건네는 시집을 뿌리칠 명분도 없다.

그 정도로 막 나가지도 않으니

순순히 시집을 받아 든다.


너를 두고

                        -나태주-

세상에 와서

내가 하는 말 가운데서

가장 고운 말을

너에게 들려주고 싶다


세상에 와서

내가 가진 생각 가운데서

가장 예쁜 생각을 너에게 주고 싶다


세상에 와서

내가 할 수 있는 표정 가운데

가장 좋은 표정을

너에게 보이고 싶다


이것이 내가 너를

사랑하는 진정한 이유

나 스스로 네 앞에서 가장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소망이다.


암송하는 시에 내 마음이 녹아내린다.

외운 시를 읊는 너도 미소를 짓는다.

아름다운 글귀가 너에게서 나오니 참 좋다.

너도 그걸 느낀 거겠지.


그렇게 우린 마주 보며 웃었다.


그래,

또 못된 말 해봐.

짜증 내봐.

이 시집은 176쪽까지 있단다.

그 후, 우리집 식탁에 있는 시집



 














이전 01화 god의 '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