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천 개의 말, 하나의 진실

언어의 전장

by 영업의신조이

이름 없는 나의 튤립에게



사무실 책상 위

빈 양주병 하나가 있었다

그 안에 이름 없는 튤립이

조용히 피어 있었다


술 냄새가 남은 병 속에서

꽃은 묵묵히 숨을 쉬었다

희미한 형광빛 아래

그 잎사귀는 서서히 빛을 배워갔다


버려진 것과 살아 있는 것이

한 공간에 있었다

나는 그 조용한 균형 앞에서

오랫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날 이후

나는 그 장면을 마음 깊이 품었다

빛이 말라붙은 오후

손끝의 냄새와 바람의 결이

조용히 한 줄기 빛으로 번져

그 빛은 개나리색 가장자리에서 천천히 퍼져

방 안의 공기를 물들였다


이제 그 빛은

내 방문 벽 위에서 숨을 쉰다

튤립은 여전히 피어 있고

나는 여전히

그 조용한 숨을 듣고 있다


<아크릴화작품 by Ubermensch 작가님>


*** 이 시 〈이름 없는 나의 튤립에게〉는

브런치 작가 Ubermensch님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쓰였습니다.


그림의 배경에는

술 냄새가 아직 남아 있는 빈 양주병,

그리고 그 안에서 조용히 피어난 한 송이의 튤립이 있었습니다.


그 단순한 장면 속에서

저는 니체의 철학 ― Übermensch, 초인의 사유 ― 를 떠올렸습니다.


니체가 말한 초인은 세상을 지배하는 존재가 아니라,

세상이 부여한 가치의 틀을 넘어

스스로 의미를 새로 창조하는 존재입니다.

쓸모없다고 여겨지는 것들 속에서도

자신의 존재 이유를 발견하고,

무용함 속에서도 고요히 피어나는 생의 의지를 가진 자.


저에게 이 튤립은 바로 그 상징이었습니다.

버려진 병 속에서,

빛을 배우며 스스로 피어나는 작은 살아있음.

그 존재는 말이 없지만,

그 고요함이야말로 가장 큰 언어처럼 느껴졌습니다.


진정한 초인은 세상을 정복하는 자가 아니라,

쓸모없음 속에서도 스스로 빛을 피워내는 자라는 것을.

그 빛은 타인의 인정이 아닌,

존재 자체로부터 피어나는 내면의 진실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이 튤립처럼,

이름이 없어도 존재하는 이유만으로 충분히 아름답고,

그 자체로 이미 하나의 의미가 되어 있음을...


이 시에 영감을 주신 Ubermensch 작가님께,

존재의 본질을 다시 바라보게 해 주신 것에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