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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토리 Mar 16. 2021

"너 참 예쁘다"는 엄마의 말

한때 엄마는 나에게 예쁘다는 말을 많이 했었다. 데이트를 위해 한껏 꾸미고 거실을 지나갈 때면 엄마는 "얘 속눈썹 풍부한 것 좀 봐.", "허벅지 탄탄한 거 봐.", "머리숱 많은 것 좀봐.", "너 오늘 참 예쁘다.", "옷 너무 예쁘다." 하며 과한 칭찬들을 늘어놓고는 했다. 민망해진 나는 "엄마가 낳은 결과물이잖아! 안 예쁠 수가 없지!" 하고는 빠르게 집을 나섰다.


엄마는 여성성을 수행하는 나를 보며 대리만족을 느꼈다. 긴 머리에 블라우스, 플레어 스커트를 입은 나를 좋아했다. 엄마의 칭찬은 애인들이 건네는 칭찬과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분명 서로 다른 인격이면서도 같은 환경과 유전자를 공유한 엄마의 칭찬은 기묘했다. 단순히 타자화한 시선으로써의 칭찬이 아니라 엄마가 갖지 않은 것 혹은 갖고 있었으나 잃어버린 것에 대한 아쉬움과 질투, 애정이 복합적으로 느껴지는 칭찬이었다. 여성성의 수행은 나이에 따른 위계를 만들어냈고, 내가 수행하는 이 여성성은 중년의 엄마가 수행할 수 없는 여성성이라고 여겨지는 듯했다. 엄마 배에서 나온, 같은 듯 다른 나를 보며 엄마가 무슨 생각을 했을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런 내가 단발로 자르고 온 날, 엄마는 기함했고 "아들이 하나 더 생겼네!"라며 큰 웃음을 터트렸다. 머리를 잘랐다고 나를 아들로 명명하는 엄마의 반응도 신기했지만, 그 이후로 나를 칭찬하지 않는 엄마가 더 신기했다. 나라는 사람도, 내가 가진 요소도 그대로인데 어느 순간 외모에 대한 칭찬들이 사라졌다.


이후로 엄마는 머리를 자르고 손이 가지 않아 방치했던 나의 페미닌한 옷들을 탐냈고, 비슷한 스타일의 옷들을 구매하기 시작했다. 진하고 스모키한 화장에 누드한 립, 가죽자켓과 부츠를 선호했던 엄마가 하늘하늘한 원피스를 구매하기 시작했고 그에 맞춰 채도 높은 립과 화장품들을 구매하기 시작했다.


이 변화들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다만 자신은 입어서는 안 된다고, 입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스타일을 시도하는 엄마를 보면서 즐겁기도 했고 조금은 우울하기도 했다. 엄마가 예쁘다고 생각했던 그 여성성들을 수행하는 젊은 나를 보면서 엄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내 나이에 엄마는 나를 돌보느라 하고 싶은 것들을 포기하며 살아왔을텐데. '나는 안돼'라고 생각했던 그 규범을 깬 새로운 시도는 어떤 맥락에서 등장했던 것일까. 잘려나간 내 머리가 엄마의 시도를 추동하는 계기가 된 것일까?


이제는 내가 엄마에게 예쁘다는 말을 건넨다. 왜 진작 엄마에게 이런 따뜻한 말을 건네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와 아쉬움을 담아. "엄마 오늘 옷 잘 어울린다.", "그 립 색이 참 예쁘다.", "여전히 예쁘고 젊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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