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소령 ~ 성삼재, 벽소령 달밝은 밤을 꿈꾸며
남녘의 밤은 온통 칠흑이다. 귓가에 가끔씩 미명의 풀벌레소리만 희미하게 들려올 뿐, 삼라만상의 모든 자연도 깊이 잠들어 있는 시간. 어젯 밤은 너무나도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던 시간들이었다. 설렘이 지나쳤던 것일까. 아니면, 염려했던 대간 마루금 1구간을 무사히 완주하였다는 안도감 때문이었을까.
지난주, 지리산을 내려온 이후 일주일은 육신이 무척 힘들어 했다. 그런데도, 전두엽은 두 다리 사정따위에는 안중에도 없어 보였다. 내 인생의 총지휘자인 전두엽의 관심은 온통 하늘길에 있었고 오직 마루금에만 머무르길 원했다. 이른 새벽, 고향집을 등지고 아내와 난 앞서거니 뒷서거니 또다시 성삼재로 가는 중에 남녘의 농촌풍경에 깊이 빠져든다.
초여름의 공기는 적당히 따사롭고 바람도 잔잔했다. 초록으로 물들은 산야. 내 눈의 안구마져 정화시켜주는 호사스런 광경이다. 마침내 구례 인근을 지나니 섬진강 강줄기가 어렴풋이 보여진다. 수면위에 모락모락 물안개가 피어나고 생명의 젖줄인 강물이 유유히 흐르는 섬진강 어귀.
산과 강이 연속해서 보여졌다 또 사라졌다를 반복한다. 농부들은 모내기 준비로 분주했고 난 미지의 먼길을 향해 떠나는 중. 목련이 벌써 지고 벚꽃, 명자, 개나리가 살포시 꽃망울을 내밀어 주던 때가 바로 엊그제 같았는데 벌써 모내기라니. 성삼재 오름길에 애마 창문을 활짝 열어 젖혔더니 오늘따라 산바람이 유난히 살갑게만 느껴지듯 나를 감싸준다. 달은 이미 서쪽으로 완전 기울었다.
세월 무상함을 새삼스레 느끼며 굽이굽이 고갯길을 넘고 또 넘었더니 성삼재다. 노고단과 반야봉, 고리봉이 모두 지척인 고개. 삼삼오오 짝을 맞춰 떠날 채비에 분주중인 산꾼들. 애마를 이 고개에 세워두고 아내의 차에 육신을 의탁했다. 달궁계곡으로 내려가는 구불구불 꼬부랑길, 아내의 표정에서 피곤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지만 그리 싫은 기색은 없어 보인다. 구렁이 담넘듯 그곳을 빠져나와 이내 함양 음정마을로 향했다.
멈추니까 무언가 들리는 듯
지난, 1구간을 무사히 마치고 터벅터벅 내려왔던 벽소령길. 오늘도 온화하고 여전히 조용했다. 세속과 신선계를 잇는 길목엔 생명의 숨소리 여전했다. 이윽고 배낭을 등에 맸다. 배낭을 등에 짊어질라치면 산꾼들은 하나같이 번뇌가 사라지고 스스로 음유시인이라도 되어지나 보다. 만물이 생동하는 계절, 이곳 지리산에도 봄의 기운이 성큼 다가와 있었다. 긴알락꽃하늘소 갯버들 꽃망울위에서 유유자적 서성거리고 다래덩굴 꽃망울은 유난히 이름답게 봄마실 중.
멀리 벽소령의 실루엣이 아지랑이일듯 피어오른다. 모든 잡념일랑 세속에 남겨둔채 난, 마음만으로 오르고자했지만 그것마져도 내 마음대로 되어주질 않는 현실. 잔잔하게 뱀처럼 휘어진 임도길을 걸으며 과연 오늘의 주제는 뭘까를 생각했다. 수많은 잔상들이 뇌리를 스쳐오지만 그중 단연 후회란 키워드가 심금을 울리게 한다. 그 후회의 주인공은 여전히 어머니다.
내심 좀더 기다려 주실 줄 알았는데. 내가 사회라는 바다에 무참히 내던져진 후로, 정신없이 세상 풍파에 내몰렸다가, 어느날 갑자기 정신을 차렸을 땐 이 세상에 계셔주질 않았다. 마음이 점차로 무거워진다. 다급히 어머니의 잔상들을 보내드리고 발걸음을 벽소령대피소로 향했다. 의도치 않게 걱정거리 하나가 또 내 꼬리를 물고 뒤따라와 내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늘상 있는 근심걱정에 가슴이 두근거리며 심신마져 점점 조마조마 모드로 바뀐다. 이내 오늘만은 진심으로 자유롭고 싶어 전화기 소리마져 무음으로 전환했다. 쓸모없는 걱정들을 모두 떠나보내고 그 자리에 쓸모있는 개똥철학으로 대신하고 싶었다. 그 경험이 먼 미래에 내 삶의 층이 되고 또 날 버티게하는 힘이 되어주리라는 간절한 믿음에서다.
떠나는 설레임과 가슴을 짓누르는 걱정 사이에서 내 마음은 온통 갈피를 잡지 못하는 상황. 근심걱정일랑 잠시 접어두고 오늘은 하늘길과 마루금길 걷는데만 집중하기로 한다 . 정말 가능하긴 할까. 부디 어머니의 품속처럼 포근하고 온화한 길이 되어주길 바라면서 신선계를 향해서 오르기를 계속한다. 햇살이 나뭇잎사이로 가늘게 흘러 내리더니 한줄기 바람도 귓가를 스치며 잔잔히 흘러내렸다. 나무들이 뿜어낸 산소를 페부 깊숙이 호흡하며.
걷다보니 어느새 하늘길
비목나무, 고추나무, 고광나무, 산수국, 다래덩굴, 촛대승마, 덜꿩나무 , 각시괴불나무, 시닥나무, 금강죽대아재비의 호위를 받으며 걷는길은 룰루랄라 길이다. 드디어 벽소령대피소. 만남과 헤어짐이 교차하는 곳이다. 두근거림의 만남이 이젠 아쉬움의 이별로 승화되기 직전이다. 어차피 인생은 만남과 이별의 이중주이니. 출발선상에 마음가짐을 위해 잠시 쉬어가기로 한다.
제법 많은 산객들이 모여 담소중이다. 뱃속에 허기를 채우시는 분들. 먼길을 떠나기위해 짐을 꾸리시는 분들. 나도 물한잔 마셔주고 다시금 배낭을 등에 둘러맸다. 지리의 심장 깊숙한 곳으로 두번째 하늘길을 향해 막 항해를 시작하기 직전. 지금의 날, 산길에 머무르게 했던 건, 10여년전 교통사고가 한몫했다. 그때의 졸음운전이 날 지금 이곳으로 이끌게 된 것. 병원침대에 누워서, 잔뜩 째려 보고있는 형광등 불빛을 보며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이곳이 어디이고 난, 왜 이 병원에 사지가 묶인채 환자로 누워있는 건지. 모든게 너무나도 생소하고 낯설었다. 퇴원후 그 후론, 난 늘 산에 있었다. 육신은 늘 고단했지만 마음이 편안하고 안락했다. 세상사 두렵고 알수없는 일 투성이라 생각될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산을 찾았다. 그때마다 산은 날 아무런 조건도없이 받아주었고 또 위안도 되어 주었다.
IMF때의 실직했던 것도 결코 빠질 수 없다. 그에 따라 우리 가정은 부부싸움이 늘 끊이질 않았다. 3남을 두었던 난, 가장역할을 해야 했으나 그냥 배짱이처럼 빈둥거리며 놀기만했다. 그러던 어느날, 메시아처럼 찾아온 사업. 난, 성공에 대해선 반신반의했다. 허나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미 사업에 내 몸과 마음을 빼앗긴지 오래. 하지만, 그 10여년동안 해오던 사업마져도 공중분해되는 데는 그리 오랜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준비도, 사업 방향도, 하다못해 자본준비까지도 전혀 되지 않았던 것.
할일이 없어 시작했던 것, 그져 목표도 없이 남들이 하니까 나도 그냥 따라서 했던 것이 성공할리는 만무했다. 처음엔 잘되는 듯 착각도 했지만. 사업은 점점 더 깊은 수렁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어느날부터 난, 긴급 도피처가 필요했다. 숨을 쉬는것도 감당이 되지 않았을 정도. 그래서, 고심끝에 택했던건 낚시였다. 하루를 벌기위해서 였다. 붕어의 위로를 받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 하루가 이틀이 되고 한달이 되고 일년이 되어가고 있었다.
물은 산을 범하지 못하고,
또 산은 물을 건너지 못한다.
산자분수령
가정은 점점 금이가고 있었고. 아내의 근심 또한 깊어만 갔다. 사업은 늘 허공을 맴돌고 있었고 나의 마음도 점점 갈피를 잃어가고 있었다. 방향감각조차도 잃어버린 채, 점점 길잃은 미아가 되어가고 있었던 나. 매일이 자포자기 상태였다. 그렇게 몇 년이란 시간이 지난후, 졸음운전 교통사고는 관계결핍증, 관계상실이란 걸 나에게 선물했다.
그건 저인망 그물과도 같았다. 내가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게 만들어 놓은 그물코는 너무도 좁고 촘촘했다. 가족관계는 모래알로 변질되고 있었다. 모였다가 어느날 갑자기 흐트러지기를 반복했다. 모래알로 지은 성은 너무나도 쉽게 허물어졌다. 내 스스로 옭아맨 틀이었을지도 모른다. 존재하지도 않는 프레임을 가지고 일부로 내 자신을 옭아매고 있었던건 아니었는지.
마치 모래위에 그려놓은 선처럼. 파도가 지나가면 금새 지워질줄 알면서도. 우려가 결국은 현실이 되었다. 법원에 회생 신청을 냈다. 준비없이 시작한 사업의 댓가는 처참했고 난 정신없이 두들겨 맞았다. 내 삶은 늘 그랬다. 소잃고 외양간 고치기. 그렇다면 지금 내가 가고자하는 하늘길도 도피처인 것일까. 그때 사업에 실패했던 것처럼.
그러는 사이 내 앞을 막아선 형제봉. 미풍에 나뭇잎 흔들거리는 소리 정신없이 들으며 걸었더니 어느새 집채만한 봉우리 두개가 턱허니 버티고 서있다. 봉우리 사이 은은하게 꽃망울을 터트린 철쭉들이 날 유혹한다. 난, 또 무식하게 금줄을 넘고야 말았다. 그래선, 안되었는데. 바위 사이 좁은 틈으로 네발로 기어올랐더니 은빛군무가 펼쳐진다.
형제봉에선 한시도 서있기조차 힘들었다. 삭풍이 불어 사지를 흔들었고 어디선가 사고가 났는지 구조헬기까지 굉음소리를 내며 떴다가 사라졌다. 삼각고지를 지나 이런저런 생각에 골몰하며 걸었더니 연하천대피소. 산꾼들의 영원한 정거장이다. 이원규 시인의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이란 시 한소절을 읇조리며 약수 한사발 공양해 본다.
잠시 귀동냥하는 사이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서울 안내산악회 일부 회원님들과 대화 중, 그들도 북진 종주 중이시란다. 그렇다면, 그 속에 이미 정답이 나와있는 샘. 난 이미 심신이 지쳐갔고 내 마음은 그 산악회에 반쯤 기울어가고 있었다. 그들과 전략적 제휴를 하기로. 벌써 3번째 설계변경이라니. 아직 지리산도 벗어나기 전인데. 사실, 자가운전하는데 꽤나 힘들고 고단하긴 했었다.
어찌됐든 새로운 묘책을 찾아야 할 입장이었는데. 기가막힌 타이밍에 나타나 준 메시아. 안내산악회와의 인연을 뒤로한채 봄꽃들의 박수소리를 들어가며 걷는다. 오르막, 내리막 후 또 구불구불길. 직선도 없고 쭉쭉뻗은 실크로드는 언감생심이다. 내가 힘들어 할때마다 고락을 함께 해준 자연의 주인공들과 두런두런 얘길하며 걸었더니 오늘의 반환점인 화개재.
그 고개에서 무지막지한 수백개의 계단을 올려다보니 생각만으로 아찔해진다. 지나가는 산객께 얼마나 남은거냐고 물어보니 얼마남지 않았단다. 속는셈치고 올라볼까. 입에 거품을 물고 오름짓했더니 정말 삼도봉이다. 전라남도와 경상남도,그리고 전라북도의 경계. 고행끝에 낙이 온다더니 정말 그말을 진심으로 믿어야 될 것 같았다. 운무는 이제 완전 거치고 바람만 스멀스멀 피었다가 사라지길 반복하는 중.
철쭉의 향연속으로
멀리 아스라이 천왕봉과 촛대봉이 보였다 사라진다. 내가 오늘 직접 걸었던 길들을 되돌아보며 긴 생각에도 잠겨본다. 오늘 걸었던 일은 내 몸만 살리는 일이 아니었다. 온종일 이 숲의 주인공들과 나눈 대화들이 내면속에 자리하고 있었다. 아마 몸으로 느끼고 마음으로 걸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니었을지. 지리산은 매일 같은 자리에서 다른 이야기를 토해내고 있었다. 이른 새벽엔 운무를 토해내고 산꾼들은 하늘길을 걸으면서 수많은 삶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있었던 것.
그 중에 백미는 역시 철쭉꽃들의 향연. 찍고 또 찍고 돌아서서 아쉬움에 또 찍고. 한시도 눈을 뗄 수 조차도 없었다. 세속의 어수선함에서 시적했던 산행이 어느덧 종착역을 향해 치닫고 있다. 반야봉은 아무말이 없이 여전히 그 자릴 지키고 있었다. 난, 오늘도 역시 혼자인듯 혼자가 아니었다. 바람, 야생화, 안개, 구름, 나뭇잎,이름없는 새들, 곤충들과 함께였다.
하늘바다에 둥둥둥 떠다니는 뭉게구름들부터 내일 시집갈것처럼 화사하게 피어올린 야광나무를 거쳐 마지막으로 치마를 땅바닥에 바짝 내리며 수줍어 피어있는 처녀치마까지. 점점 피곤이 몰려오는 시간이다. 오르고 또 내리고, 넘고 또 넘어 오늘의 마지막 고개인 노고단 고개를 겨우 넘었다. 산은 너무도 정직했고 마루금은 기대했던대로 수많은 이야기를 선물해 주었다.
내 귀가 어두워 그 이야기를 듣지 못햇을 뿐. 내 눈이 어두워 받아들이지 못했을 뿐. 종국엔 내려 와야하는 수고로움과 성취욕은 덤이었다. 해는 어느새 늬엿늬엿 서쪽을 향해 몸을 뉘이고 내 몸은 이미 지쳐갔지만 내 전두엽은 벌써부터 3구간 설계중이다. 좋은사람들과 함께 하는 3구간. 벌써부터 기대가 모락모락 피어난다. 보금자리로 되돌아오는 고속도로는 막힘없이 쭉쭉 뻗어있었다.
계속해서, 06화 지리산을 떠나던 날 편이 발행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