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왕봉 ~ 벽소령, 느리게 걸었더니 야생화가 보였다
안개비가 그윽이 내려앉은 중산리 계곡. 노랫가락에 의지한 채 점점 더 계곡 깊은 속으로 들어갔다. 땀이 어느새 몸 깊숙한 곳으로 흥건히 젖어들고 온몸은 그야말로 아우성이다. 이내 새로운 선택에 직면했다. 우의를 벗어 버리느냐. 아니면 육신의 따가운 원성을 계속 들어가며 계속 앞으로 나아가느냐. 선택은 오롯이 나의 몫.
난, 전자를 택했다. 주인님 더 이상 못 참겠어요, 란 원성소리에 두 손 두 발 다 들어 버린 상황. 그 선택은 적중했다. 나의 결정장애는 이제 먼 이야기가 되어있었다. 너무도 홀가분했고 몇 십년 묵은 마음의 짐을 하나 벗어버린 그런 느낌. 그 시원함이 뼛속까지 전달되고 있었다.
지금껏 폭주기관차처럼 줄기차게 앞만 보고 달려온 나. 어느 날부터 쉼이란 게 필요했지만 난 철저하게 외면했다. 어떤 때는 숨이 꽉꽉 막혀버릴 것만 같았다. 그토록 앞만보고 달렸건만 내손에 잡히는건 거의 없었다. 내 인생은 그렇게 항상 엉망인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가족도 보고 친구도 보고 주변도 보며 세상을 관망해 보기로 한 것. 처음엔 여러 곳을 응시하다 보니 시선이 산만해지기도 했었지만 아무래도 괜찮았다. 지금은 내가 보고 싶고, 생각하고 싶고, 오직 내가 결정한 일에만 집중하면 되었으니.
그래서, 숙고 끝에 선택한 건 백두대간 종주. 그 길을 직접 걸으며 내면 가장 깊숙하고 심오한 곳에 웅크리고 있을 비밀의 공간 탐험을 감행해보고 싶었던 것. 하늘길은 딱 걸은 만큼, 흘리는 땀의 무게만큼 한 뼘, 한 뼘 점점 가까워져 오고 있었다. 정직의 대명사처럼 난 오롯이 천천히만 가면 되었다. 지금은 접속로를 걷는 중이지만 걷다 보면 어느새 원하는 목적지에 도착해 있을 터. 그 길은 두 갈래 길이 아닌 오직 외길이다. 북진 아니면 남진 중 난 북진을 선택하며 걷고있는 중이다.
하늘이 점지해준 그 길을 타고 한발두발 걷다 보면 그 길의 끝은 북녘땅이 한눈에 바라다 보이는 신선봉. 하지만 지금 오르는 곳은 그 반대지점인 천왕봉이다. 난, 그 길을 가능한 천천히 가고자 한다. 길섶 주변에서 서성이는 자연의 주인공들과 교감도 하고 내 내면과의 대화도 하기 위함이랄까. 천왕봉 오름길 가는 곳마다 물분자들이 옹기종기 모여 꽃망울위에 방울져 맺혀있었다. 마치 어릿광대가 외줄 타기 하듯. 그 멋스러움에 취해 정신없이 셔터를 눌러댄다.
지나가는 산꾼들의 따가운 시선들이 조금 신경쓰이긴 했지만 까짓것 상관하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그들과 난 같은 길을 걷는 듯 하면서도 서로 같은 듯, 다른 듯 일테니. 제법 많은것들이 보였다 또 사라지기를 여러번. 앞만 보고 달렸을 땐 눈뜬 봉사처럼 전혀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멈추며 집중했더니 감쪽같이 보이는 듯했다. 지리산이 준 자연의 선물들. 바람에 흔들거리는 초록잎들의 향연과 아우성거리는 소리들이 유유히 들려오고 있었다.
땀을 한 사발 길바닥에 뿌린 후 도착한 로터리대피소.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서 배낭을 풀어 한 모금의 물과 준비해 간 과일들을 목에 넘겨줬다. 행복이 충만한 여행길이다. 이 길에서 내가 찾고 있는 건 무엇인지는 이미 그 의미가 정해졌다. 다시금 오름이다. 된비알 깔끄막길. 난, 원래 걷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두 종류의 사람. 걷는 자와 걷지 않는 자 중.
둘 중 후자에 가까웠다. 그러나 날 바꾼 건 어느날 불의의 사고 때문이었다. 낚시에 심취해 있던 나에게 갑자기 다가왔던 졸음 운전. 그 후론 걷는 걸 숙명으로 알고 거의 산에 의지해 있었다. 그랬더니 내 삶이 거짓말처럼 바뀌기 시작했다. 180도 바뀐 삶. 방향이 정해지니 모든 게 송두리째 변하기 시작했던 것.
사바세계를 떠나 자연을 동경하고 의지하며 살게 된 건 덤이었다. 어느새 난, 남들이 걷지 말라 애원해도 걷는 걸 당연히 받아들이는 그런 사람이 되어 있었다. 법계사는 나름 분주했다. 속세같기도 아닌것 같기도 모든게 애매모호했다. 해발고도 1,400여 미터. 온통 운무에 뒤덮인 듯 마치 신선계에 들어선 듯하다. 부처님과 여러 보살님의 영혼의 소릴 들으며 적멸보궁 앞에 두손고히 모아 합장하며 다시금 천왕봉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 오른다.
천왕샘엔 운무가 앞을 가렸다. 한 치 앞도 분간하기 힘든 길. 이때 잠시 가던길 멈추고 자아를 되돌아본다. 막혔던 것들에서 잠시 해방된 이 묘한 느낌. 동안 왜 수없이 무너지고 가슴 아파했는지를 되새김질 해보는 멈춤의 시간들이다. 무심으로 걷다 보니 드디어, 천왕봉이다. 일 년 넘게 그토록 고대하고 염원했던 곳. 그 자리에서 난 기도했다. 마루금 무사히 완주할 수 있도록 초심 변치 말게 해달라고. 집 나간 자아와 자존감을 다시금 되돌아오게 해달라고 빌고 또 빌었다. 드디어 진부령을 향해 출발선상에 서있는 나.
멀리 발아래 파노라믹하게 펼쳐지는 장관을 보고 싶었건만 자연은 그것마저도 허락하지 않았다. 삶은 늘 아쉬움이다. 속세에서든, 마루금에서든. 아직 준비가 덜된 것이리라. 이제 정말 새로운 시작이다. 신선봉까지 690여 킬로미터. 꿈을 꾸었으니. 첫발은 내디뎠으니. 도전은 시작되었으니. 이미 절반은 성공한 샘. 이때 혜민스님의 심금을 울리는 문장을 빌려오지 않을 수 없다.
날 둘러싼 세상이
너무 바쁘게 돌아간다고
생각하세요?
잠깐 멈추고 나에게
물어보세요,
지금 내 마음이 바쁜 것인지
세상이 바쁜 것인지,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혜민스님
사람 간의 관계에 대해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행동으로는 미쳐 안 되는 것들에 대해 스님 특유의 섬광 같은 지혜가 엿보이는 글이다. 멈추니까 보인다, 라는 말의 의미를 깨닫기까지 어찌하여 그리도 많은 시간을 허비해야 했던 것인지. 아직은 알 수가 없었다. 아마 소백산 넘고 태백산 지나 설악산 대청봉위에 내 육신이 서있을때 그때 아마 깨닫게 되지 않을지.
통천문을 지나기 전, 하늘로 오르는 길 앞에 겸허히 섰다. 부디 초심 잃지 않기를 바랬다. 자만하지도. 가끔 멈춰서서 세상을 좀 더 멀리 관조하는 시간 가져주길 빌었다. 또다시 떠남이다. 떠남 중독증 환자에게는 지극히 당연스런 현상이다. 운무가 이 봉우리를 집어삼킬 듯 휘몰아 쳤지만 준동 없이 자릴 지켜내고 있는 제석봉 고사목들을 멍때리며 바라보다 또 걷는다.
삶과 죽음이 하나란 것도 새삼스레 깨닫는다. 하늘길을 걷는 내 마음을 이해해 주기라도 하듯, 아무 말 없었지만 자비롭고 지혜로운 혜안을 선사해 주기라도 하는 눈치 가득이다.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걷는 사이 도착한 곳은 만남과 헤어짐이 공존하는 장터목대피소. 만남의 설렘과 기쁨, 헤어짐의 아쉬움과 슬픔이 공존하는 곳. 따뜻한 커피 한잔 목에 넘겨주고 연하선경을 향해 또다시 출발이다.
물분자들의 마법과
능선의 야생화,
그리고 연하선경
걷는 내내 물분자들이 연출해 내는 마법과도 같은 황홀경에 점점 빠져든다. 콩닥콩닥하는 마음이 좀체로 진정되지 않는데. 가끔은 이렇게 멈춰주기도하며 물분자들이 펼쳐내는 마법의 쑈들을 감상하며 겸허한 마음으로 걷는다. 몸으로 걷고 마음으로 느낀다. 오늘 도전하지 않았으면 영영 보지 못했을 이 황홀한 광경들. 물분자들과 야생화와 내가 하나 된 순간들이다. 멈춰 서서 보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들이 아니었을지.
가혹하게 불어오는 삭풍도 내 도전 의지를 꺾지 못했다. 가끔 흔들릴지언정 웬만해선 꺾이진 않는 자연의 섭리들을 보며, 과연, 자연과 내가, 숲과 내가 함께 공존이 가능한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점심 무렵 도착한 세석대피소. 이곳도 축제의 장이자 만남의 장이었다. 나그네들이 한분 두분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어떤이는 대피소 귀퉁이에 기대어 눈을 감고 피로를 풀고있는 중이었고 또 어떤이는 신발을 벗고 근육이완제를 뿌려대고 있는 중이었다. 나도 출출해진 배의 요청을 거부할 수가 없어 빛의 속도로 산상 라면을 끓여본다. 대피소에서 구입한 따끈 따끈한 햇반과 그리고 아내가 챙겨준 김치와 함께. 라면맛의 향연 속으로 은근슬쩍 빠져든다.이 행복감. 황홀감. 이렇게 매 순간 짜릿해도 되는 걸까.
쉼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일단은 종착역을 향해 떠나줘야 하기에. 오늘의 마지막 미션, 벽소령대피소를 향해 또다시 출발이다. 영신봉, 칠선봉, 덕평봉, 그리고 벽소령대피소, 7킬로미터 남짓한 거리. 물리적으로 만만치않는 거리이지만, 문제될 것 전혀 없었다. 가슴이 쿵쾅거리고 요동쳐온다. 운무 가득한 하늘길에 피어 올린 야생화들의 향연과 신선이 산다 해도 전혀 이상할 것 같지 않는 신비의 세계.
세석대피소를 나오자마자 빗줄기가 제법 거세어진다. 또 선택의 기로다. 땀에 젖느냐, 비에 젖느냐. 일단은 우의을 걸쳐 입었다. 저 산밑 골짜기에서 불어오는 바람들이 운무를 산등성이로 밀어 올렸다. 이윽고 난, 신선봉에 앉아 신선놀이에 깊이 빠져든다. 나 말고 주변엔 칠선녀들 뿐. 덕평봉을 지나니 온몸이 땀으로 뒤범벅. 쉰내 가득한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며 걷고 또 걷는다. 오롯이 무심이다. 오르막이 펼쳐지다 또다시 내리막. 마루금길과 내 삶의 그것이 어찌나 빼닮은 건지 모를일이다.
하염없이 배낭 위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멍 때리며 걷다 보니 어느새 벽소령대피소. 벌써부터 벽소령 달 밝은 밤이 그리워진다. 언젠가 또다시 벽소령의 달밝은 밤에 벽소명월에 취하게 될 날을 기대해도 될까. 하지만, 지금은 애마가 있는 음정마을까지 10킬로미터를 더 걸어야 한다. 다행인건 임도길이라는 것과 완만한 내리막길이라는데 그져 안도한다. 내 마음도 젖고 등산화도 모두 젖었다. 마지막 남은 양말하나 갈아 신고 다시금 먼 길을 떠나기 직전.
나그네에게 필요한 건 꿈이다. 내 생에 노마디즘에 취해 대간길을 직접 걷게 되는 날이 오다니. 이대로 아무 이름조차도 남기지 않은 채 세상에서 잊혀지고 사라진다 해도 괜찮을성 싶었다. 꿈이 있어 결코 외롭거나 흔들릴 수도 없는 이 행복감 무엇과 견줄 수 있을까. 저 멀리 파랑새가 나 보고 어서오라고 마치 손을 흔들어 주는 듯하다.
미지로 떠나는 여행은
별일 많아야
행복하다던데
정말, 별일 많은 5월 어린이날 3일 연휴가 되어 준듯하다. 별일많아서 엄청 행복한 연휴가 되어 주었다. 꿈을 향해 달리기 위한 준비기간부터, 설렘으로 시작하여 걸었던 순간까지. 학수고대했던 마루금 종주의 첫 스타트를 겨우 이제 끊었다. 익숙함에서 낯섬으로의 떠났던 여행. 이제 겨우 한걸음. 그 시작이 이제 갈무리 되는중이다.
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길 바래도 될까. 아니면, 그져 그런 잔치일 뿐인 걸까.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무지 많았던 시간들이 아니었나 싶다. 음정마을에 도착하니 주변이 어둑어둑해졌다. 장호원 아지트로 오는 길, 마치 개선장군이라도 된 것처럼 어깨가 들썩거리고 주체하기 힘든 성취욕에 몸둘바를 모를 지경이다. 누가 날 말려줄 순 없는건지.
접촉사고 때문인지 고속도로는 가다 서다를 무한 반복했지만 내 마음은 놀랍게도 평정심을 되찾고 있었다. 냉정함과 침착함이 바로 내 안에 생겨나 있었던 것. 마음 평안함과 안도감들이 교차한다. 눈꺼풀이 자꾸 감긴다. 졸음쉼터에서 한번씩 찬물로 세면을 해준다. 장장 네 시간 반 만에 도착한 아지트엔 어스름이 짙게 내린 새벽이었다. 700여 킬로미터 중 이제 겨우 한걸음 내딛었을 뿐인데 난 세상 모든 걸 다 가진 사람처럼 황홀감에 취해버렸다.
도착 후, 오늘의 모든 사연들을 방바닥에 내동댕이 쳐 둔채 씻는 둥 마는 둥 깊은 잠이 들었다. 간밤에 꿈을 꾸었다. 내가 백두대간 끝인 신선봉에서 북녘땅을 향해 손을 흔들어대도 있었다. 오늘의 뒤끝이 온몸으로 전해져 들어오는 꿀밤이란 정말 이런 것이지 싶었다. 나도모르는 사이에 내안에 새로운 내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하늘길이 날 살린 것이리라.
계속해서, 05화 지리의 심장속으로 편이 발행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