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의 선택이 옳았을까?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내게 묻는다. 삶의 방향을 정하는 어떤 선택은 운명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학교를 졸업하고 나는 어느 중소업체의 비서실에 근무 했다. 경제적 독립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더 이상 학비를 부모에게 의존하고 싶지 않았고, 내게 쓰는 모든 돈을 내가 감당하고 싶었다. 돈을 좀 벌어서 이듬해에는 진학하고, 박사과정까지 계속 공부하고 싶었다.
부모와 함께 살면서 일하던 1년 동안 예기치 못한 사건이 생겼다. 대학 때의 동갑내기들이나 동아리 선배들과는 뭔가 다른 어떤 남자가 등장했다. 공대 건물 위층에서 다이폴이나 야기 안테나를 조립하던 아마추어무선 동아리 HAM의 추억이 여전하던 내게 무선 리그에 특별한 전선 RG58의 개발에 참여한 그가 불쑥 인생에 나타났다. 사랑에 빠진 것이다.
나는 대학원 시험을 볼까 서울의 Y학교 교사시험을 볼까 살짝 망설였다. 사랑에 빠진 나는 좀 반듯한 명함을 갖고 싶었다. 그래서 시험을 보았고 중등 영어교사가 되었다. 언제든지 공부해서 박사가 되고, 교수가 되어 캠퍼스 연구실에서 연구하다가 뭔가 교육적 논문을 쓰는 일이 어려울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던 만 스물세 살 때였다.
운명을 후회한 적은 없으나 어떤 고집스러운 선택을 끝내하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다. 그러나 그는 내게 유학의 기회를 주었다. 내가 원한 교육철학이 아니어서 공부는 그곳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다. 영어만 유창해졌다.
혹시, 그때 결혼을 하지 않고 진학을 했다면 나의 인생이 좀 달라졌을까? 그를 사랑해서 결혼한 것을 후회한 적은 없으니 결혼이라는 사건이 나의 공부를 막은 것은 아니다. 그저 하루하루의 소소한 행복을 선택한 것인데, 진학해서 공부하고 싶은 내 마음을 돌보아 주지 못한 후회가 좀 남아있다.
세월이 오래 흘렀다. 이제는 박사가 되겠다거나 하는 꿈은 사라졌다. 내가 나를 위해 포기할 수 없는 일상의 작은 꿈들을 미루지 않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나이를 탓하며 심장이 두근거리는 순간들을 외면하지 않고 더는 후회하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