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영신 Sep 13. 2024

꽃다발의 의미

꽃이란 그 식물의 마지막 고백 같은 것이다. 꽃에는 그 식물의 열매 유전자가 숨겨져 있다. 어지간해서는 피워내지 않고 꽁꽁 숨겨둔다. 특히 추운 겨울에는 더욱 애지중지 숨겨두었다가 어느 따뜻한 날에 지체 없이 싹을 틔우고, 꽃봉오리를 맺어 마침내 꽃잎으로 피워낸 것이 꽃의 진실이다. 이러한 역사는 꽃을 단순히 꽃으로만 볼 수 없게 한다.

꽃을 베어 한 다발로 묶은 꽃다발은 중요 행사를 장식한다. 이때 쓰이는 꽃들은 대부분 화원에서 기른 관상용이다. 마치 우리가 먹는 계란과 고기를 얻는 방법과 같다. 계란이란 닭의 알인데, 닭은 낮과 어둠의 감각이 무뎌서 어두우면 자고 밝으면 일어나서 알을 낳는다고 한다. A4 사이즈라는 양계장에 어둔 장막을 치는 것은 알을 얻는 시간을 조절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고기 또한 마찬가지다. 가축은 동물이라 당연히 감정과 지능이 있다. 도축을 위해 길러지는 가축과 반려 동물과는 다른가? 꽃다발용 꽃이 되기 위한 꽃과 관상용 꽃은 다른가? 베어지기 위한 꽃은 너무 아쉽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닭도 가축도 꽃도 아무렇지 않은데 그저 인간의 관점일 뿐일 수도 있다.

꽃들은 모두 훌륭하다. 화훼 농가에서 길러지는 꽃들도 잘 피어주어서 훌륭하다. 나는 야생화를 좋아한다. 이름을 외웠지만 잊을 때가 허다하다. 사람들 손에 꺾이지 않는 외지고 구석진 곳에서 한철 피었다가 사라지는 작은 꽃들은 모두 멋지고 훌륭하다. 꽃을 선물한다는 건 마음을 전달하는 것이다. 꽃말의 대부분은 사랑을 상징한다.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의 짧은 생명은 열매를 위한 것이다. 관상용 꽃다발의 짧은 생명도 어떤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꽃다발의 목적에 따라 그 열매가 다를 것이다. 감사, 사랑, 첫인사, 그리움 등이다. 꽃다발은 받는 사람에게 보이는 순간부터 전달되어 그 열매를 맺는다.

내가 받았던 최고의 꽃다발은 남편이 무심한 듯 사온 생일 축하 꽃다발이었다. 꽃다발에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사랑이 담겨있다. 처음 받아본 장미 섞인 평범한 꽃다발이었는데 나는 남편의 마음이 너무 이뻐서 오랫동안 꽃만 보아도 설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