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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메리 Dec 11. 2023

한쪽소설-거가대교는 주정차금지입니다.

자살을 막는 사람들

"실장님! 저 차 저기 멈춰있는 거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CCTV 화면 속 갓 뺀 것처럼 보이는 흰색 SUV 가 거가대교 갓길에 멈춰있는 장면이 이상해 보였다.

왠지 모를 싸한 느낌

제길! 요새 주가가 좀 빠지는 거 같더니 또 어떤 멍청이가 뛰어내리려는 건가 보다.

이번 달만 벌써 3명째다.

이 일만 10년째 근무하신 실장님이 와서 보더니 말씀하신다.


"아이고~ 딱 보니 맞네. 김주임, 잘 봤어. 얼른 경찰이랑 해경에 신고하고 CCTV 녹화본 돌려봐서 확인해!"

실장님은 근무 첫날에도 기가 막히게 대교 갓길에 멈춰있는 단순 사고 차량과 자살 시도 차량을 구분하셨다.


직원들 사이에선 무슨 신기가 있다고 소문이 돌 정도였다.

그날도 그냥 CCTV를 멍하니 보고 계시는 듯했는데, 갑자기 직원들에게 말했다.


"어이~ 박주임, 출동 준비 하자. 최주임은 경찰이랑 신고하고, CCTV 보고 있다가 이상 있거나 내가 전화하면 바로 해경에도 신고해. 알았지?"


다들 실장님 말씀에 아무런 의문을 갖지 않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근무 첫날인 나만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어 어리둥절하게 서 있었다.

그런 나를 실장님은 뒤늦게 알아채고는 그냥 사무실에서 지켜보라고 하고 박주임과 출동을 나갔다.


최주임과 나는 상황실에 남아 CCTV를 지켜보았다.

최주임님 말에 의하면 실장님은 차가 속도를 줄이는 모습이나 갓길에 차를 세워놓은 모양만 보아도 그 차가 고장이 나서 세우는 건지 자살을 하려고 세우는 건지 알아챈다고 했다.

자기는 아무리 봐도 그 차이를 모르겠어 실장님께 물어보면 그냥 일하다 보면 알 게 될 거라는 소리만 한다고.


실장님과 박주임이 도착하기 직전 차에서 운전자가 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그 운전자는 다리 난간 근처로 천천히 걸어갔다.

꼭 뭐에 홀린 듯이 보였다.

실장님은 도대체 언제 도착하는지 시간이 느리게 가는 것 같이 느껴져 가슴을 조리며 지켜봤다.


다행히 운전자가 뛰어내리기 전에 실장님 차가 도착했다.

그날 처음 실장님을 뵙지만 편안한 인상과 여유로운 말투에 저절로 신뢰가 생겨, 실장님이라면 그를 설득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들었다.

최주임의 얼굴에도 안도의 빛이 돌며 숨을 내쉬는 게 들렸다.


실장님이 그에게 천천히 다가가며 뭐라고 말을 거는 듯했고, 박주임은 어딘가로 전화 통화를 했다.

얼마 후 경찰이 도착하고 차량 소유주를 추적하여 가족과 전화연결이 되는 등 일들이 착착 진행되었다.

그날의 자살 시도자는 그렇게 무사히 돌아갔다.

현장에서 돌아온 실장님은 활짝 웃으면서 신입이 들어와서 오늘은 운이 좋은 것 같다며 어리바리 앉아있는 내게로 공을 돌렸다.

다른 직원분들도 뿌듯함과 안도감이 교차하는지 사무실 분위기가 한결 부드러워졌다.


근무 첫날 그 사건에서부터 강렬한 인상을 받아 실장님에 대한 내 신뢰는 절대적이 되었다.

그 이후로 근무를 하면서 그렇게 사전에 발견하여 사고를 막을 수 있는 경우는 많지 않다는 걸 알게 되어 충격을 받긴 했지만 그래도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우리 실장님 뿐이었다.


그런 생각을 떠올리며 실장님과 현장에 도착해 보니 운전자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그새 뛰어내렸나?

제발 운이 따라 살아있기를 바라면서 다리 난간으로 바다를 내려다본다.


오늘은 바다가 그래도 잔잔하다.

멀리서 해경정이 빠르게 다가오는 것도 보인다.

거가대교 밑에 있던 어선들도 분주하게 움직이는 게 느껴진다.

해경한테서 익수자 수색 협조 연락을 받았나 보다.

혹시나 내 눈에도 보일까 싶어 여기저기 두리번거려 본다.

그러다 차에 둔 망원경이 생각나 얼른 뛰어가 가져온다.


"허허. 아니? 김주임? 그게 뭐야? 그거 어디서 났어? 설마 샀어?"

"아... 네... 그냥 취미로... 뭐... 옆집 보고 변태같이 그러려고 산 건 아니고요. 그냥... 혹시나 해서요."

"김주임. 자네가 참 마음이 여리지 여려. 그려!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는 거지. 사람들이 왜들 그렇게 그러는가 몰라..."


나보다 더 많은 자살자와 자살 시도자들을 봤을 실장님이 하시는 말씀을 들으니 눈시울이 붉어져 얼른 망원경을 들어 올린다.

그런데 그 사이 거가대교 밑에 도착해 있던 해경정에서 사람 모양을 한 뭔가를 건져 올리는 것이 보인다.


엇? 다행히 자살자를 구조했나 보다!

이렇게 빨리? 정말 대단하다.

푹 젖어있는 자살자를 갑판 위로 구조하고 이것저것 확인을 하더니 신속히 CPR을 시작하는 게 보인다.

제발 제발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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