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싯적 우리 동네
우리 동네는 약 50 가구가 사는 조금 한 시골 마을이다. 남쪽은 산으로 둘러 싸여있다. 북쪽으로는 열러 있어 읍으로 가는 길이 두 갈래로 나뉘어 있다.
한길은 걸어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좁았다. 좁은길을 지나서 논두렁과 낮은 산 언덕을 지나면 읍으로 갈 수 있었다. 학교 갈 때 다니는 길이었다. 이 길로 학교에 가면 시간과 거리가 절반으로 줄었다. 한 번씩 노루가 길을 가로질러 지나가곤 하였다. 다른 한길은 차와 리어카가 다닐 수 있는 조금 넓은 비포장 도로였다. 교통수단의 차들이나 리어카가 다닐 수 있는 길이었다. 작고 좁은 길은 지금은 사라져다. 시골의 학생들의 감소와 노령화로 그 길로 읍으로 가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 동네는 지대가 주변 동네보다 약간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우리동네 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모아놓은 제법 큰 못과 비를 모우는 작은 못이 있었다. 비가 계속 와서 물이 많이 모이면 개방하여 수온 높이를 조절하였다. 물이 자주 교환 되지 않고 고여있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깨끗하지 못하였다. 작은 못이지만 약 400평 정도 제법 큰 못이다. 못에는 연꽃이 가득하였다. 8월 말경에는 연꽃이 만발하였다. 연꽃은 도매상에 팔아서 동네 기금으로 사용하였다. 도매상에서 연근을 캐고 남은 자투리는 우리 꼬마들의 차지가 되었다. 연근을 캐서 집에 가져가면 어머님이 좋아하셨다. 맛난 반찬으로 사용되었다. 지금 기억으로는 10월 말경의 동네 풍경이었다. 큰 못은 동네뿐만 아니라 아래 동네 농사에 활용했다.
그리고 마을 위의 큰 못 위 산에는 진달래가 많이 있었다. 3월 말 경에는 진달래 꽃이 활짝 피었다. 진달래가 마을 뒤편에 병풍처럼 펼쳐졌다. 어릴 때 친구들과 진달래가 피어 있는 산에서 게임도 하고 진달래를 따먹고 놀곤 했던 산이었다. 지금은 산에 사람들이 가지 않기 때문에 키가 큰 나무들이 자라서 상대적으로 키가 작은 진달래나무는 사라졌다.
이 동네에서 우리 가족들과 같은 또래 친구들 남자 5 명, 여자 아이 2 명이 공동체를 이루고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