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체니 온천 탐방기
유럽 도시를 돌아다니다 보면 온천이 인근에 있는 곳들이 가끔 있다.
비엔나 기준으로 보면 테르메 빈(Therne Wien), 잘츠 캄머구트 근처에 바트 이슐, 베를린에는 바할라, 저 멀리 아이슬란드에는 누가 정했는지 모르지만 세계 10대 온천이라고 하는 블루라군.
그런 온천들이 있다면 헝가리에는 세체니 온천이 있다고들 현지인들은 생각할지 모른다.
부다페스트는 로마시대 때부터 온천으로 유명했던 곳이라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로마 왕들이 가끔씩 피부병을 치료하러 들렀다는 얘기도 있다.
세체니 온천은 부다페스트 온천 중 가장 큰 규모로 네오 바로크 양식으로 1913년에 건축되었다. 온천탕만 실내 실외를 합쳐 13개이며, 물 온도도 다양해서 여행객들이 피로를 풀며 한나절 물놀이 즐기기에는 그만이다.
유럽의 온천들은 물 온도가 다 미온수라서 오래 물속에 있어도 힘들지 않고 계속 그 따뜻함을 즐기고 싶다. 처음에는 온천이라 해서 "뭐 이리 뜨겁지도 않고 온천 맞나. 수영장 아닌가" 했는데, 그 미온수가 몸에 감겨드는 느낌이 피로와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것 같다.
실제 온천물에는 황산염, 칼슘, 마그네슘, 중탄산염, 불소 등이 있어 피부와 척추에 좋다고들 한다. 척추는 모르겠으나 미네랄 이름만 들어봐도 피부에 좋기는 할 것 같다.
겨울에 눈 오는 날. 탕 속에서 머리만 빼꼼히 내밀고 있으면 아주 최고의 여행지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한여름 더울 때는 좋을지 모르지만 가을 겨울 추울 때엔 꼭 한번 들러보면 좋을 것 같다.
건물은 유럽의 전통적인 바로크 양식이라 고풍스럽고 멋지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개인적으로는 반듯반듯한 블랙 앤 화이트 모던한 것을 좋아하지만 건물은 유럽풍의 장식이 한껏 가미된 것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건물 앞에는 레인까지 설치된 수영장이 있어서 사람들이 배영, 평영을 즐긴다. 평영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지지치지도 않는 에너자이저들 같다. 왔다 갔다.
공연장 관람석 스탠드 같은 것이 설치된 메인 건물이다. 아마 해가 좋을 땐 썬베드에 누워서 아랫것들(?)이 수영하는 것도 보고 선탠도 즐기고 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치된 곳이 아닐까 싶다.
날이 살짝 추워지는 11월에 간 터라 온천에서 올라오는 김이 온천의 생동감을 자아낸다. 그래서인지 이 작은 온천탕에 인구밀도가 아주 높았다.
대부분 유럽 현지인들이지만 간혹 한국말을 하는 여성분들도 있다.
해외 나가면 왠지 한국말 쓰는 사람이 다 친구나 가족 같다. 애국자가 되는 건가.
머리만 동동동 물에 떠다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도 사람들이 머리만 쏙 내밀고 온천을 즐기고 있다.
야외 탕도 있지만 실내 탕도 여럿이다.
다 한 번씩만 돌아다녀봐도 얼추 반나절은 걸릴 것 같다.
부다페스트 2회 차 여행.
그래도 낮에는 당일 가이트 투어를 했던 곳을 따라 복습하다 쉬기도 할 겸해서 찾은 세체니 온천.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넘어간다.
밤에는 어떤 조명으로 어떤 느낌일까 궁금했지만 그렇다고 그 시간까지 기다릴 순 없다.
밤의 온천은 겔레르트 온천이라고들 하니 서둘러 겔레르트 온천으로.
그 옛날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가 황실에서만 쓰게 했다는 노란색의 유럽 건물. 그 노란색 빛이 해가 넘어가는 늦은 오후, 겨울을 맞이하러 잎을 떨어뜨려 앙상한 가지들만 남은 약간 을씨년스러운 부다페스트의 한 때를 그래도 활기차게 밝게 만들어주고 있는 것 같다.
겔레르트 온천으로
사실 이 날은 그동안 비엔나에서 일하며 혼자 생활하던 일상에서 벗어나 여행 말고 온천으로 쉬다가 가자 싶었다. 기실 뭔가 바지런히 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인지 그렇게 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조금의 틈이라도 있으면 그래도 무언가 기억에 남을 만한 것을 해야지 하는 강박관념이 있는 사람처럼. 여행은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말이다. 그냥 못 보면 못 보는 대로 여유 있게 지내는 것도 다 여행의 일부인데.
해외 가는 직원들에게 여행 다니는 것도 좋은데 그 동네, 그 도시의 일상과 생활을 즐기고 오는 것도 해외 나가는 즐거움 중 하나라고 강조하면서도 정작 나는 스스로에게 그러지 못한다. 병이다.
부다페스트를 여행 가는데 온천을 좋아하는 분들을 위해 3대 온천이 있다. 세체니 온천, 겔레르트 온천, 루다스 온천이다. 세체니 온천은 다녀왔고, 겔레르트 온천은 밤에 맨 꼭대기에서 도나우강과 부다페스트 야경을 즐길 수 있는 야경 맛집이라고 한다.
정작 거기까지 가서 들어가진 않았다. 비엔나로 돌아갈 시간도 얼마 안 남고 해서 딱 두세 시간만 가서 보고 가고 싶었으나 하루 패스를 끊어야 한다 해서 그건 접고 겔레르트 언덕에 잠깐 들렀다가 갔다.
여행 블로그들을 보면 겔레르트 온천은 세체니에 비해 모던한 느낌인데 언젠가는 한번 가 보고 싶은 곳으로 버킷 리스트에 넣어두기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