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예 Dec 17. 2018

접시 위의 예술

04 에즈, 샤또 에자 Château Eza

깎아 자른 듯한 절벽 위에 자리 잡은 아주 작은 마을 에즈. 에즈는 13세기 무렵 로마인들의 침략을 피해 암벽 위에 생겨난 마을로, 언덕배기의 구불구불한 미로 같은 돌길과 당시 돌로 지은 집들이 잘 남아있다. 이 집들이 대부분 기념품 상점이나 공방으로 탈바꿈했다는 점만 빼면 말이다.


이런 절벽 위까지 피난을 와 마을을 꾸리다니 이 동네 사람들이 독한건지, 로마 사람들이 독한건지는 모르겠지만 누구 때문이건 그건 다 옛 이야기일 뿐, 지금은 그저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동네이자 선인장들로 가득한 열대 정원의 모습을 하고 있다. 선인장은 사막에 있어야만 할 것 같은데 푸른 하늘과 바다가 함께여서 더욱 이색적인 느낌이 든다. 니스에서 차로 2~30분 정도면 닿을 수 있는 매우 가까운 곳인데도 니스와는 그 분위기가 천지차이다.


특유의 분위기가 워낙 독특해서인지 예전에 니체가 이 곳에서 사색을 즐기며 영감을 받아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썼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한다.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말했다>는 산 속에서 은둔하며 살던 주인공 짜라투스트라가 어느 날부터 사람들이 살고 있는 마을로 내려와 ‘신은 죽었다’고 설파하는 여정을 담고 있다. 엄청나게 많은 은유와 사상이 담겨있기에 이렇게 간단명료하게 한줄로 요약할 수 있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지만 내용만을 단순히 축약하자면 그렇다.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총 4부로 구성되어있는데 그 중에서도 니체 스스로가 "이 책의 근본구상"이라 일컬었던 "영원회귀사상"에 대한 이야기가 3부에 담겨있고, 바로 이 3부를 에즈에서 열흘 남짓한 기간 동안에 완성했다고 한다.  


영원회귀사상은 "삶이란 동일한 것이 영원히 되풀이 되는 것이다"라는 의미로, 니체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되 그 순간을 충실히 살아내는 데에 바로 구원이 있다고 생각했다. 설령 이 순간이 반복된다고 해도 후회하지 않을 만큼 이 순간을 알차게 채워넣는 것. 새로운 것들을 배우고 느끼기 위해 멀리 여행을 떠나온 이들과 이들을 한껏 품은 에즈 역시 이 사상과 꼭 들어맞는 모습이라고 느꼈다면 너무 끼워맞추기식 억지 해석일까. 아무튼 이런 억지 해석조차 절로 달콤하게 느껴지는 풍경이다.


세계 어느 곳이나 그렇듯, 그 지역에서 가장 풍광이 좋은 곳엔 카페나 식당이 자리를 잡고 있다. 그건 에즈도 마찬가지인데 그 중 한 곳이 바로 샤또 에자다. 에즈에서 가장 경치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지중해를 내려다보며 지중해식 요리를 맛본다는 것이 바로 샤또 에자의 매력. 최신 정보를 찾아보니 2017년 12월에 메인 요리사가 한차례 바뀐 것 같긴 하지만 샤또 에자는 여전히 미슐랭 가이드에 이름을 올리고 있고 사람들의 발길도 끊길 줄을 모른다.


바깥 자리도 있기는 하나, 이 날은 바람도 많이 불고 기온도 낮아 바깥 자리를 이용할 수는 없었다. 원한다면 바깥 자리에서 음료만 마시고 들어오는 것은 가능하다고 했는데 굳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여기까지 오는 동안 구경은 실컷 했다 싶어 마음 편히 따뜻한 안쪽으로 자리를 잡았다.


멋진 요리를 위해 고민하는 가파른 절벽 꼭대기 식당의 요리사에게서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집필한 철학가 니체의 모습이 보인다면 너무 과장된 표현일까? 어차피 세상 모든 것은 예술의 한 부분이며 예술에는 결국 철학이 깃들어있다.


어찌됐든 샤또 에자에서 멋진 전망과 함께 접시 위의 예술을 만나고 싶다면 반드시 미리 예약하시길.


이전 03화 나의 이름이 붙은 색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