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원의 어쩌다 농부]
"요즘 어떻게 지내?"
"요즘 고향으로 농사 지으러 다녀요."
"고향이 어딘데?"
"영월이요."
"오~영월! 가보고 싶다."
대화의 패턴은 대개 이렇게 진행된다. 보통은 대충 장단을 맞추다가 대화가 마무리되는데, 진지하게 진도를 확 잡아빼는 분들이 있다. 엄청난 추진력을 가진 00대학 xx대학원 최고위 과정 동기들과 내 고향 영월로 1박2일 팸투어를 다녀왔다.
늘 텃밭에서만 살았던 터라 사실 나 역시도 영월 관광지는 잘 알지 못한다. 1박2일 팸투어를 준비하면서 벼락치기로 공부한 끝에 영월의 명소와 맛집을 찾아낼 수 있었고, "내 고향 좋구나" 느끼며 팸투어를 잘 마칠 수 있었다.
팸투어의 시작은 영월역 앞 다슬기 해장국집 성호식당이었다. 영월 지형은 도마뱀처럼 동서로 길쭉하게 생겼다. 영월 읍내는 도마뱀 가운데쯤에 있다. 영월역 앞에는 해장국 집이 몇 개 모여있는데 유독 성호식당만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대기표를 받고는 식당 맞은편으로 건너가 한옥으로 만들어진 영월 역사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며 영월 팸투어를 자축했다.
차례가 되어 자리에 앉은 우리는 다슬기 해장국과 다슬기 전을 시켰다. 성호식당 다슬기 해장국은 시래기가 들어있는 된장국 스타일이었다. 시래기가 부드러워 아욱인가 할 정도로 매끈하게 넘어갔다. 다슬기 해장국 가격은 1만5000원. 군 단위 식당의 가격치곤 꽤 비싸다고 느껴지지만 다슬기가 국산이라고 하니 납득할 수 있다. 다슬기는 강에 허리를 숙이고 하나하나씩 잡아야 해서 쉽지 않고, 잡고 나서는 또 일일이 바늘로 까야 하는 난도 높은 작업이다.
다슬기 해장국을 먹고 영월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청령포로 갔다. 단종(1441년 8월 18일~1457년 11월 16일)은 영월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인물이다. 16세에 삼촌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강원도 심심산골 섬 아닌 섬 청령포에 유배 단종의 한이 느껴져 마음이 저릿했다. 단종이 걸터앉아 시름을 삼켰다는 600년 된 관음송 앞에서 권력이란 무엇일까, 인생이란 무엇일까 생각해봤다.
청령포를 나와 이동한 곳은 라디오스타 박물관이다. 일행분들과 영화 '라디오 스타'(2006년)의 추억을 이야기하다가 라디오 스타가 만들어진 지 벌써 20년 가까이 됐다는 사실에 새삼 깜짝 놀랐다. 시간은 이리도 정직하고 성실하게 흐르고 있었다. 라디오스타 박물관 마당에는 배우 유오성의 동상이 있다. 유오성이 영화 '라디오 스타'에 출연했었나 착각하기 쉬운데 영월 출신의 대표 배우라서 유오성 동상을 두었다고 한다. 안성기, 박중훈 동상이 없다는 점이 아쉬웠다.
점심 먹은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영월서부시장에 들러 메밀부치기를 먹어야 한다. 영월서부시장에는 메밀부치기와 메밀전병을 파는 집들이 모여있다. 지인에게 소개받은 속골집에 앉아 가볍게 세트(메밀전병2개+메밀부치기2개+수수부꾸미1개)를 시켜 먹었다. 아삭아삭 씹히는 맛이 일품인 메밀전병과 슴슴한 메밀부치기가 순식간에 없어졌다. 위장의 신비여!
다음 행선지는 미디어기자박물관이었다. 이곳은 한국일보 사진기자를 퇴직한 고명진 기자가 폐교를 얻어 꾸민 박물관이다. 사진기자와 관련된 수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공간이 낡아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공간을 운영해나가는 고명진 관장님의 열정적인 강의에 아쉬운 마음이 상쇄되고도 남는다.
숙소는 주천 읍내에 있는 한옥 스테이 조견당으로 잡았다. 조견당은 350년 된 한옥이 보존돼있는 곳으로 MBC 기자를 은퇴한 김주태 기자와 부인, 딸이 운영한다. 조견당에서 태어나 자란 김주태 기자는 서울 생활을 마치고 은퇴한 후 고향집으로 돌아와 고택에 온기를 불어넣고 있다.
조견당이 자리한 주천 읍내는 쇠고기 정육 식당이 포진해있다. 이중 다하누 정육식당에서 쇠고기로 회식을 하며 영월 관광 1일 차를 마무리했다. 저녁을 먹은 후 조견당 카페에서 대추차를 마시고 있는데 주인장께서 350년 된 돌배나무에서 딴 돌배로 만들었다는 돌배주 한 병을 내려놓았다. 붉은빛을 띄는 돌배주는 은은한 풍미가 대단했다. 돌배주를 몇 잔 얻어 마시고 마당으로 나오니 이러진 하현 달이 환하다. 농부일 때는 초저녁잠이 쏟아져 저녁 9시만 돼도 쓰러져 잠들기 바빴는데 여행객이 되니 밤 11시도 끄떡없었다.
다음 날 아침, 조견당 카페에서 드립커피를 마시는데 강원도 찰옥수수를 서비스로 주셨다. 쫀득쫀득한 찰옥수수와 드립커피의 조합이 환상적이었다.
조견당에서 체크아웃을 한 후 주천 읍내에 있는 미술관 젊은달Y파크로 갔다. 조각가 최옥영 박신정 부부가 일군 이 미술관은 각종 미술품에 설치 작업들이 있어 인스타용 사진찍기 명소다. 인생샷을 찍을 수 있는 포인트가 많아 의외로 시간을 많이 쓰게 되는 곳이다.
미술관을 나와서 도착한 곳은 법흥사.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인 법흥사는 좋은 기운이 있는 절로 유명하다. 부처님의 사리는 대웅전 뒤 사자산 자락에 모셔져 있다고 한다. 법흥사 적멸보궁 뒤란이 가장 기운이 좋다는 기(氣) 선생님의 말씀을 들었던 터라 일행을 이끌고 대웅전 뒤란에 서서 기를 받았다.
법흥사까지 돌고 나니 오후 1시가 훌쩍 넘었다. 주천에서 가장 유명한 식당인 주천묵집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주천묵집은 맛집으로 소문난 후로는 대기 손님이 많아 한 시간 대기는 예사다. 식당에 가기 전 휴대폰을 이용해 테이블링 예약을 할 수 있어 미리 예약하면 기다림 없이 입장할 수 있다. 주천묵집에서 산초두부구이, 묵밥, 감자전, 감자옹심이를 시켰다. 슴슴 담백한 강원도 음식의 매력에 빠진 일행분들이 “맛있다”를 연발해 내가 만든 것도 아닌데 괜히 어깨가 으쓱해졌다.
식후 커피를 위해 찾은 곳은 주천의 다방. 주천에 카페가 네다섯 군데 있지만 이날은 왠지 다방에 가보자고 의견이 모였다. 다방에 앉아 커피를 시켰는데 다방과 카페의 차이점은 커피의 양이라는 걸 알았다. 다방 커피는 카페 커피의 3분의 1 정도로 양이 매우 적었다. 커피양이 적어 놀라워하고 있는데 사장님이 강원도 찰옥수수를 서비스로 내밀었다. 찰옥수수 맛에 커피 양 적은 건 싹 잊었다.
영월 지도의 가운데서 시작해 서쪽으로 이동한 1박 2일 영월 여행이 끝나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 일행들은 짧은 여행을 아쉬워하며 또 오자고 성화였다. "자연 풍광이 좋고 문화 시설이 많고 음식도 맛있다"고 흡족해 하셔서 내고향 팸투어를 진행한 보람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