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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농사를 위한 빅픽처

[김효원의 어쩌다 농부]

by 김효원 Feb 24. 2025

받아놓은 날은 어김없이 온다. 도무지 올 것 같지 않지만, 쌀쌀한 바람 속에서도 한 발 한 발 봄은 다가오고 있다. 이 말은 곧 달콤했던 나의 농한기가 끝나가고 있다는 의미다.


개학을 앞두고 벼락치기 방학숙제를 하는 아이처럼, 공책을 펼쳐놓고 봄 농사를 위한 밑그림을 그리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올해는 꽃 농사에 매진해보기로 하고 다양한 꽃씨를 모아놓았다. 사진=김효원올해는 꽃 농사에 매진해보기로 하고 다양한 꽃씨를 모아놓았다. 사진=김효원

큰 그림은 정치인들만 그리는 것이 아니다. 5도 2촌 어쩌다 농부라도 농사를 위한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올해 나의 빅픽처는 꽃 농사다.


우리 집 뒷동산에는 동네 어르신이 가져다 놓은 벌통이 두어 개 있다. 이 벌들에게 풍부하게 먹을 먹이를 제공한다는 것이 나의 빅픽처다. 꽃의 색깔과 꽃의 크기, 꽃의 키 등을 고려해 심을 위치를 그렸다 지웠다 반복한다.


마당과 뒤란에 심기 위해 모아놓은 꽃씨는 백일홍, 천일홍, 금화규, 미니 자하라, 층층이 꽃, 해바라기, 백합, 악마의 나팔꽃, 장미 봉숭아, 유채꽃, 꽃양귀비 등이다. 벌들의 식성에 맞는 꽃이면 좋겠다는 작은 소망을 품고 있다.

꽃은 색깔과 키 등을 고려해 심어야 한다. 사진=김효원꽃은 색깔과 키 등을 고려해 심어야 한다. 사진=김효원

농사를 앞두고 꽃씨를 꺼내 공책에 올려놓고 살펴보았다. 작은 것, 큰 것, 동그란 것, 납작한 것, 뾰족한 것, 둥근 것, 까만 것, 누런 것, 단단한 것, 푸슬푸슬한 것… 씨앗 하나에는 온 우주가 담겨있다.


씨앗을 들여다보며 이들이 피워낼 각양각색의 아름다움을 느낀다.

몸에도 좋고 환경에도 좋은 식물 씨앗도 다양하게 모았다. 사진=김효원몸에도 좋고 환경에도 좋은 식물 씨앗도 다양하게 모았다. 사진=김효원

지난해 농사를 반추해 비교적 작은 노력으로도 훌륭한 수확을 거뒀던 품목을 엄선해 목록을 만들고 있다. 게으른 농부에게도 아낌없이 결실을 내준 성격 좋은 아이들을 주 종목으로 키우겠다는 야심 찬 계획이다.


가장 믿음직한 채소는 부추다. 부추는 한번 심어두면 계속 자라고, 잘라먹어도 또 나온다. 특별히 거름을 할 필요도 농약을 칠 필요도 없으니 부추야 말로 게으른 농부에게는 더없이 알맞은 채소다.


다음으로 키우기 무던한 채소는 호박이다. 호박 역시 제 멋대로 잘 자라고 호박도 잘 달린다. 문제는 호박의 세력 확장이 대단해 자리를 많이 차지한다는 점이다. 올해는 밭의 가운데가 아니라 담벼락 쪽으로 심기로 마음먹는다.


더 많은 양을 심겠다고 작정한 채소는 시금치다. 시금치 역시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기 않아도 심어만 두면 알아서 잘 자란다. 한 가지 몰랐던 점은 시금치는 더위를 싫어한다는 사실이었다. 시금치는 봄가을에 심어놓으면 잘 자란다.

팥, 벌꿀장호박, 서리태, 동부콩도 올해 심을 품목이다. 사진=김효원팥, 벌꿀장호박, 서리태, 동부콩도 올해 심을 품목이다. 사진=김효원

곡식으로는 서리태, 팥, 동부콩, 깨를 골라놓았다. 이 곡식들 역시 비교적 손이 덜 가고 농사짓기가 수월한 품목이다.


올해 농사는 지난해보다 수월하기를, 더 재미있기를.  


봄이여 어서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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