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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장지와 결과지

[김효원의 어쩌다 농부]

by 김효원 Mar 10. 2025

봄이 시작됐다고는 하지만 찬바람이 불고 땅은 얼어붙어있고 때로는 눈까지 푹푹 내리는 3월이다. 오랜만에 도착한 시골집에는 지난주 내린 폭설이 드문드문 남아있었다.


본격적으로 밭을 갈고 파종하는 5월이 되기 전 해야 할 일은 바로 가지치기다. 감나무와 복숭아나무, 사과나무, 배나무, 자두나무 등 유실수 가지치기는 열매와 연결되기에 매우 중요하다. 나무가 겨울잠을 자고 있을 때 가지치기를 하면 좋다고 하니 미뤄둔 숙제를 하듯 전지가위를 들고 나섰다.

잔가지가 수없이 자란 감나무. 사진=김효원잔가지가 수없이 자란 감나무. 사진=김효원

유튜브 영상을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가지치기는 어렵다. 어느 가지를 쳐야 할지, 어느 가지를 남겨야 할지 알쏭달쏭하다. 그나마 머리에 남아있는 가지치기 법칙을 읊조리며 가지를 쳤다.


먼저 Y자 수형 만들기가 중요하다. 유실수는 과일을 수확해야 하기 때문에 가지가 하늘로 뻗어 오르면 사람의 손으로 따기 어렵다. 수형을 Y자 형태로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수형이 두 팔을 벌린 듯 옆으로 뻗어나가야 햇빛을 잘 받아 열매가 고루 익고, 사람 입장에서 손을 내밀어 따기 편하다.


Y자 수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하늘로 솟아오른 가지를 잘라야 한다. 한 해에도 수없이 많은 곁가지들이 삐져나온다. 메인 가지를 남겨놓고 곁가지는 자른다. 중심을 향하는 가지, 아래를 향하는 가지도 잘라야 한다.


나는 가지치기를 잘 못하는 사람이다. 이 가지도 소중하고 저 가지도 소중해 어느 가지 하나 버리지 못하겠는 것이다. 잘라야 하는 가지라고 분명히 알고 있지만, 이 가지에서 곧 꽃이 필텐데 놔두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며 미적댄다.


드라마 <전원일기>를 좋아한다. <전원일기>는 1980년 10월 13일 시작해 2002년 12월 29일 종영한 MBC 드라마다. 농촌 마을을 배경으로 농사를 짓고 살아가는 김 회장(최불암 분)네, 일용 엄니(김수미 분)네 등 농민들의 삶을 다루며 20년 동안 1088회가 방송됐다.

김 회장이 과수원에서 가지치기를 하고 있는 장면. 사진=MBC on 캡처김 회장이 과수원에서 가지치기를 하고 있는 장면. 사진=MBC on 캡처

MBC on에서 매일 <전원일기> 재방송을 2~4회 보여주는데, 소파에 누워 <전원일기>를 보는 것이 하루의 소소한 즐거움이다. <전원일기>에는 지금은 잃어버린 농촌 풍습과 풍속이 고스란히 박제돼 있다.


언젠가 <전원일기> 2회 <주례> 편을 본 적이 있다. 2회는 가지치기에 관한 내용이었다. 과수원집 둘째 아들 용식(유인촌 분)이 아버지 김 회장과 함께 과수원에서 가지치기를 하면서 대화를 한다.


김 회장은 내레이션으로 "보다 많은 열매를 맺게 하려면 식물 생장점인 순을 잘라야 한다. 그게 결과지를 기르는 거다. 그런데 난데없는 곳에서 곁눈이 나와 곁가지를 형성한다. 도장지다. 도장지는 꽃도 열매도 맺지 않는다. 그런데 거름과 수분이 풍부한 좋은 환경에서 도장지가 많이 나온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환경이 좋아서만이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알려준다.


김 회장님 덕분에 결과지, 도장지라는 새로운 단어를 알게 됐다. 결과지는 '과실나무에서 꽃눈이 달려 이듬해에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가지'다. 도장지는 '오랫동안 자는 눈으로 있다가 어떤 영향으로 나무가 잘 자라지 아니할 때에 터서 세차게 뻗어 나가는 가지. 몹시 연약하여 열매를 맺지 못한다.(국어사전)


가지치기를 하던 용식은 아버지인 김 회장에게 "아버지 저는 어느 쪽일까요. 도장지인지 결과지인지 모르겠어요"라고 질문한다.


가지치기하는 김 회장과 용식이의 대화를 보면서 가지치기의 중요함을 다시금 되새겼다. 도장지에 더욱 단호해지자고 결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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