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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냐건 웃으려면 퇴비를 주자

[김효원의 어쩌다 농부]

by 김효원 Mar 24. 2025


남으로 창을 내겠소.

밭이 한참갈이

괭이로 파고

호미론 김을 매지요.


구름이 꼬인다 갈 리 있소.

새 노래는 공으로 들으랴오.

강냉이가 익걸랑

함께 와 자셔도 좋소.


왜 사냐건

웃지요.


김상용 시인(1902-1951)이 1936년에 쓴 시 ‘남으로 창을 내겠소’다.


가장 좋아하는 시이자, 눈 감고 외울 수 있는 몇 안 되는 시다. 원래도 좋아했지만 텃밭 농사를 시작하고 난 후에는 더 자주 읊조리고 있다.

마른 호박줄기나 고추대궁 등을 걷어내고 퇴비를 뿌리며 한 해 농사를 시작한다. 사진=김효원마른 호박줄기나 고추대궁 등을 걷어내고 퇴비를 뿌리며 한 해 농사를 시작한다. 사진=김효원

2024년 말부터 2025년 초는 국가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암울한 시기다. 국가에는 계엄과 내란사태가 발발했고, 개인적으로는 부당해고를 당해 직장을 잃었다. 믿었던 사람들의 배신은 덤. 커다란 사건들이 겹치면서 내상을 크게 입었다.


“지금까지 잘못 살아온 걸까” 싶을 때 ‘남으로 창을 내겠소’가 떠올랐다. 나에게는 이미 남으로 커다란 창이 난 시골집이 있다. 게다가 밭도, 괭이도, 호미도 있다. 이 얼마나 러키비키 한가.


‘구름이 꼬인다 갈리 있소’ 대목을 중얼거리며 그 어떤 구름이 꼬드긴다 해도 끄떡하지 않겠노라고 다짐하지만, 그 어떤 구름도 꼬드겨오지 않는 것은 어쩐 일인가. 구름에게 나를 한 번 꼬드겨보라고 꼬드겨봐야 하나.


‘강냉이가 익걸랑 함께 와 자셔도 좋소’라고 얘기하려면 강냉이 농사를 잘 지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지금 당장 해야 하는 일이 ‘밭 만들기’다.


본격적인 농사를 시작하는 시기는 5월이다. 그전에는 부지런히 밭을 만들어야 한다. 거름이 풍부하고 비옥한 밭이라야 한 해 농사가 풍성해진다.


농사를 지어보기 전에는 사실 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지 못했다. 그저 흙에 씨앗을 뿌려놓으면 알아서 자라는 줄 알았다. 흙에 영양분이 없으면 작물이 제대로 자라지 못한다는 걸 알지 못했다. 내 입에 비타민이며 영양제를 집어넣는 것처럼 밭에도 영양제를 뿌려주어야 한다는 것을 모르고 살았다.


날이 포근해지고 땅이 녹으면 농부들은 부지런히 밭으로 나가 퇴비를 뿌린다. 퇴비는 밭에 주는 영양제다. 농협에서 구입한 퇴비에는 가축분이라고 쓰여있다. 주 성분은 소똥이다. 닭똥으로 만든 퇴비는 계분이라는 이름으로 따로 분류해서 팔고 있다. 똥이 최고의 거름이라는 건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나 보다. 재래식 화장실을 쓰던 시절에는 인분이 중요한 퇴비였으니 말이다.

가축분은 가스가 나오기 때문에 식물을 심기 7~14일전 미리 뿌려놓아야 한다. 사진=김효원가축분은 가스가 나오기 때문에 식물을 심기 7~14일전 미리 뿌려놓아야 한다. 사진=김효원

똥으로 만들어진 까닭인지 퇴비를 뿌리면 꼬리꼬리한 냄새가 난다. 농촌마을을 유유히 드라이브할 때 나는 냄새가 바로 가축분 냄새다. 퇴비에서 가스가 나오기 때문에 뿌린 후 2주 정도 시간이 지난 후 파종해야 한다. 바로 파종하면 모종이 퇴비 가스에 질식할 수 있다.


퇴비를 뿌린 후에는 로터리를 치거나 쟁기질을 해 퇴비와 흙을 잘 섞어주면 농사 준비가 완료된다.


유박 비료도 농사를 짓기 전 미리 뿌려두면 좋다. 모종을 심기 보름 전쯤 뿌리면 효과가 좋다고 한다.


유박은 아주까리기름을 짜고 남은 찌꺼기다. 기름기가 풍부해 식물의 성장에 도움을 준다. 유박은 고소하고 맛있는 냄새가 나기 때문에 강아지가 사료인 줄 알고 먹고 죽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유박에 들어있는 리신이라는 독성은 동물이 먹으면 생명을 잃을 만큼 심각한 위해를 가한다. 독성이 청산가리의 6000배라니 얼마나 맹독인지 알 수 있다. 강아지를 키우는 집이나 강아지 산책길 인근에는 절대 뿌려서는 안 된다. 그러나 공원에는 유박 비료가 여전히 뿌려진다.


나는 혹시라도 강아지나 고양이가 유박 비료를 먹을까 싶어 유박 비료를 뿌린 후 흙으로 덮어준다. 일은 더디지만 그렇게 하는 편이 마음이 편하다.


밭에 뿌려야 하는 것 중에서 토양살충제라는 것도 있다. 토양살충제는 흙속에 숨어있는 벌레를 미리 죽이는 역할을 한다. 퇴비나 토양살충제는 뿌리고 나서 밭을 갈아 흙과 섞어주는 것이 좋다.


퇴비를 뿌렸으니 이제 5월을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강냉이가 익는 계절에 누군가 “왜 사냐”라고 물어봐주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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