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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꼭 먹어야 할 봄나물 5

[김효원의 어쩌다 농부]

by 김효원

올겨울은 유난히 길고 힘이 들었다. 주로 거리에서 찬 바닥에 앉아있느라 더욱 그랬을 것이다. 아스팔트 도로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있으면 땅에 닿는 발이 신발을 신었는데도 시렸다. 찬 기운이 두꺼운 신발도 뚫는다는 게 신기했다. 부랴부랴 양털이 듬뿍 들어간 어그부츠를 구입해 신었더니 냉기가 덜했다. 사는 김에 패딩바지도 샀더니 찬 바닥이 무섭지 않았다. 도무지 끝날 것 같지 않은 겨울이 조금씩 뒤통수를 보인다.


절기란 참으로 신비하고 놀랍다. 꽃샘추위가 막바지 기승을 부리고 있지만 계절은 일보 후퇴, 이보 전진하며 봄 쪽으로 걸어가고 있다.


오래 기다린 봄이니 만큼 봄나물을 잔뜩 뜯어 식탁에 차려놓고 봄맞이 의식을 치르고 싶다. 봄나물을 듬뿍 섭취하면 얼어붙은 몸과 마음에 푸른 생기가 돌 것 같다.

봄에 제일 먼저 돋아나는 나물이 원추리다. 이름도 예쁜 원추리는 뾰족한 잎사귀가 마치 병아리 부리같다. 사진=김효원

봄나물이 귀한 것은 그 연약한 생명들이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고 살아 돌아왔기 때문이다. 얼어붙은 딱딱한 땅을, 사람이 손톱으로 파기도 어려운데, 봄나물은 그 연약한 뿌리로 파고 내려간다. 손대면 톡 부러질 것 같은 뿌리로 얼어붙은 땅을 파내려 가는 모습을 떠올리면 비장한 마음까지 든다. 바늘에게 ‘조침문’을 지어 바친 유 씨 부인처럼 나 역시 ‘봄나물찬가’라도 만들어 불러주고 싶다.


달래, 냉이, 쑥, 원추리, 씀바귀, 고들빼기… 바야흐로 봄나물 시즌이다.

원추리는 조금만 억세져도 나물로 먹기 어렵기 때문에 새싹이 나온 직후 어린 싹을 뜯어야 한다. 사진=김효원

봄에 가장 먼저 땅밖으로 머리를 내미는 것은 원추리다. 원추리는 낙엽의 무채색을 뚫고 선명한 연두색으로 봄이 왔음을 알린다. 원추리는 독성이 있기 때문에 나물로 먹을 때는 가급적 어린 새순만 채취한 후 데쳤다가 찬물에 반나절 정도 우려낸 후 먹어야 한다. 원추리나물은 비타민, 미네랄이 듬뿍 들어있고 혈액순환, 면역력 증강, 염증 억제, 스트레스 해소 등에 도움을 준다. 특히 근심을 잊게 해 준대서 ‘망우초’라는 별명이 있다고 하니 지금 꼭 먹어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

원추리 된장무침. 사진=김효원

원추리나물은 간장과 들기름, 마늘, 참깨를 넣어 무치는 방법과 된장, 고추장, 마늘, 들기름을 넣어 무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취향 따라 기분에 따라 양념을 선택해 무치면 된다. 원추리를 넣고 된장국으로 끓이면 마치 시금칫국 같은 맛을 즐길 수 있다.

냉이는 땅에 포복해있는 방사형 잎이 특징이다. 사진=김효원

김태오 시인의 동요 ‘봄맞이 가자’에 ‘달래 냉이 씀바귀나물 캐오자’는 가사가 있다. 원작에서 달래, 냉이, 꽃다지였다가 후일에 달래, 냉이, 씀바귀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만큼 달래 냉이 씀바귀가 대중적인 봄나물 삼총사라고 할 수 있겠다.


냉이는 봄나물의 대명사라고 해도 무리가 없다. 냉이는 사실 일 년 내내 밭에서 찾아볼 수 있다. 봄의 전령사라고는 하지만 봄부터 여름, 가을, 겨울까지도 냉이는 늘 밭에 포복해 있다. 냉이를 봄나물의 최고로 치는 것은 봄기운을 듬뿍 담고 있는 기세 때문일 것이다.


냉이는 방사형 잎을 지니고 있는데 막 돋아난 것은 연두색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점차 진한 초록색으로 변한다. 진한 색은 뿌리가 억세기 때문에 연한 색을 캐는 것이 좋다.

냉이는 향을 즐기기 위해 가급적 양념을 슴슴하게 하는 것이 좋다. 사진=김효원

냉이는 사실 손질이 힘들다. 시든 잎을 뜯어내고 뿌리를 다듬고 하다 보면 “내가 냉이를 왜 이리 많이 캤을까” 후회하게 된다. 그러나 잘 데친 후 물기를 꼭 짜고 간장, 들기름, 참깨, 마늘을 넣고 조물조물 무쳐놓으면 그 어떤 봄나물보다 향긋한 맛을 즐길 수 있다. 냉이된장국도 냉이의 향과 맛을 즐기는 훌륭한 요리법이다.


달래는 뿌리로, 씨앗으로 전방위로 번식하기 때문에 한 자리에 군집해서 자라는 특징이 있다. 잎만 잘라먹는 부추와 달리 동그란 뿌리까지 잘 캐내는 게 중요하다. 호미를 들고 한 뿌리씩 캐다가 아버지에게 지청구를 들은 적이 있다. 아버지는 삽으로 달래가 난 땅을 푹 퍼냈다. 달래가 흙과 함께 한 삽 가득 따라 올라왔다. 우리 고향 마을에서는 달래를 달롱이라고 부른다. 지금도 달롱이라고 해야 달래 같다.

달래는 뿌리와 잎을 모두 먹는다. 사진=김효원

달래는 쫑쫑 썰어 달래양념간장을 만들어 김에 얹어 먹으면 밥 한 공기 뚝딱 먹을 수 있다. 또 콩나물밥이나 무밥, 곤드레밥을 만들어 달래양념간장을 얹어 비벼 먹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소면을 삶아 찬물에 헹궈 건진 후 달래간장을 넣어 비빔국수로 먹어도 향긋한 달래의 맛을 음미할 수 있다. 간장, 고춧가루, 마늘, 매실진액, 들기름, 식초, 마늘을 넣고 버무려 삼겹살과 함께 먹어도 그만이다. 그래도 달래가 남았다면 간장식초 물을 만들어 달래장아찌를 담아놓으면 일 년 내내 맛있게 즐길 수 있다.

달래간장무침은 파절이보다 한 수 위다. 사진=김효원

씀바귀는 맛이 쓰기 때문에 씀바귀일 텐데 쓴맛을 내는 비슷한 나물로 고들빼기가 있다. 씀바귀와 고들빼기는 모양이 매우 비슷해 구별이 쉽지 않다. 때문에 내가 캔 것이 씀바귀인지 고들빼기인지 자신 있게 말할 수가 없다. 씀바귀 혹은 고들빼기는 데친 후 물기를 꼭 짜고 초고추장에 버무리면 맛있다. 쓴맛을 참고 먹으면 어른스러워진 기분까지 느낄 수 있다.

씀바귀 혹은 고들빼기 무침. 사진=김효원

달래, 냉이, 씀바귀가 캐는 나물이라면 쑥은 뜯는 나물이다. 쑥은 갓 돋아난 윗부분만 뜯어야 부드러운 식감으로 먹을 수 있다. 쑥을 넣은 생선국인 도다리쑥국은 봄에만 즐길 수 있는 맛이다. 도다리 구하기가 어려운 시골에서는 쑥 버무리가 제일 만만한 쑥 요리다. 쑥에 쌀가루를 훌훌 뿌려 솥에 찐다. 쌀가루가 없을 때는 아쉬운 대로 밀가루를 묻혀도 좋다. 소금만 살짝 넣고 찌면 향긋한 쑥향이 입안 가득 퍼진다.

쑥을 듬뿍 넣어 향긋한 쑥된장국. 사진=김효원

된장을 푼 물에 쑥을 넣어 살짝만 끓이면 향긋한 쑥된장국이 된다. 쑥의 향으로 먹는 음식이니만큼 간을 슴슴하게 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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