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원의 어쩌다 농부]
올겨울은 유난히 길고 힘이 들었다. 주로 거리에서 찬 바닥에 앉아있느라 더욱 그랬을 것이다. 아스팔트 도로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있으면 땅에 닿는 발이 신발을 신었는데도 시렸다. 찬 기운이 두꺼운 신발도 뚫는다는 게 신기했다. 부랴부랴 양털이 듬뿍 들어간 어그부츠를 구입해 신었더니 냉기가 덜했다. 사는 김에 패딩바지도 샀더니 찬 바닥이 무섭지 않았다. 도무지 끝날 것 같지 않은 겨울이 조금씩 뒤통수를 보인다.
절기란 참으로 신비하고 놀랍다. 꽃샘추위가 막바지 기승을 부리고 있지만 계절은 일보 후퇴, 이보 전진하며 봄 쪽으로 걸어가고 있다.
오래 기다린 봄이니 만큼 봄나물을 잔뜩 뜯어 식탁에 차려놓고 봄맞이 의식을 치르고 싶다. 봄나물을 듬뿍 섭취하면 얼어붙은 몸과 마음에 푸른 생기가 돌 것 같다.
봄나물이 귀한 것은 그 연약한 생명들이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고 살아 돌아왔기 때문이다. 얼어붙은 딱딱한 땅을, 사람이 손톱으로 파기도 어려운데, 봄나물은 그 연약한 뿌리로 파고 내려간다. 손대면 톡 부러질 것 같은 뿌리로 얼어붙은 땅을 파내려 가는 모습을 떠올리면 비장한 마음까지 든다. 바늘에게 ‘조침문’을 지어 바친 유 씨 부인처럼 나 역시 ‘봄나물찬가’라도 만들어 불러주고 싶다.
달래, 냉이, 쑥, 원추리, 씀바귀, 고들빼기… 바야흐로 봄나물 시즌이다.
봄에 가장 먼저 땅밖으로 머리를 내미는 것은 원추리다. 원추리는 낙엽의 무채색을 뚫고 선명한 연두색으로 봄이 왔음을 알린다. 원추리는 독성이 있기 때문에 나물로 먹을 때는 가급적 어린 새순만 채취한 후 데쳤다가 찬물에 반나절 정도 우려낸 후 먹어야 한다. 원추리나물은 비타민, 미네랄이 듬뿍 들어있고 혈액순환, 면역력 증강, 염증 억제, 스트레스 해소 등에 도움을 준다. 특히 근심을 잊게 해 준대서 ‘망우초’라는 별명이 있다고 하니 지금 꼭 먹어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
원추리나물은 간장과 들기름, 마늘, 참깨를 넣어 무치는 방법과 된장, 고추장, 마늘, 들기름을 넣어 무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취향 따라 기분에 따라 양념을 선택해 무치면 된다. 원추리를 넣고 된장국으로 끓이면 마치 시금칫국 같은 맛을 즐길 수 있다.
김태오 시인의 동요 ‘봄맞이 가자’에 ‘달래 냉이 씀바귀나물 캐오자’는 가사가 있다. 원작에서 달래, 냉이, 꽃다지였다가 후일에 달래, 냉이, 씀바귀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만큼 달래 냉이 씀바귀가 대중적인 봄나물 삼총사라고 할 수 있겠다.
냉이는 봄나물의 대명사라고 해도 무리가 없다. 냉이는 사실 일 년 내내 밭에서 찾아볼 수 있다. 봄의 전령사라고는 하지만 봄부터 여름, 가을, 겨울까지도 냉이는 늘 밭에 포복해 있다. 냉이를 봄나물의 최고로 치는 것은 봄기운을 듬뿍 담고 있는 기세 때문일 것이다.
냉이는 방사형 잎을 지니고 있는데 막 돋아난 것은 연두색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점차 진한 초록색으로 변한다. 진한 색은 뿌리가 억세기 때문에 연한 색을 캐는 것이 좋다.
냉이는 사실 손질이 힘들다. 시든 잎을 뜯어내고 뿌리를 다듬고 하다 보면 “내가 냉이를 왜 이리 많이 캤을까” 후회하게 된다. 그러나 잘 데친 후 물기를 꼭 짜고 간장, 들기름, 참깨, 마늘을 넣고 조물조물 무쳐놓으면 그 어떤 봄나물보다 향긋한 맛을 즐길 수 있다. 냉이된장국도 냉이의 향과 맛을 즐기는 훌륭한 요리법이다.
달래는 뿌리로, 씨앗으로 전방위로 번식하기 때문에 한 자리에 군집해서 자라는 특징이 있다. 잎만 잘라먹는 부추와 달리 동그란 뿌리까지 잘 캐내는 게 중요하다. 호미를 들고 한 뿌리씩 캐다가 아버지에게 지청구를 들은 적이 있다. 아버지는 삽으로 달래가 난 땅을 푹 퍼냈다. 달래가 흙과 함께 한 삽 가득 따라 올라왔다. 우리 고향 마을에서는 달래를 달롱이라고 부른다. 지금도 달롱이라고 해야 달래 같다.
달래는 쫑쫑 썰어 달래양념간장을 만들어 김에 얹어 먹으면 밥 한 공기 뚝딱 먹을 수 있다. 또 콩나물밥이나 무밥, 곤드레밥을 만들어 달래양념간장을 얹어 비벼 먹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소면을 삶아 찬물에 헹궈 건진 후 달래간장을 넣어 비빔국수로 먹어도 향긋한 달래의 맛을 음미할 수 있다. 간장, 고춧가루, 마늘, 매실진액, 들기름, 식초, 마늘을 넣고 버무려 삼겹살과 함께 먹어도 그만이다. 그래도 달래가 남았다면 간장식초 물을 만들어 달래장아찌를 담아놓으면 일 년 내내 맛있게 즐길 수 있다.
씀바귀는 맛이 쓰기 때문에 씀바귀일 텐데 쓴맛을 내는 비슷한 나물로 고들빼기가 있다. 씀바귀와 고들빼기는 모양이 매우 비슷해 구별이 쉽지 않다. 때문에 내가 캔 것이 씀바귀인지 고들빼기인지 자신 있게 말할 수가 없다. 씀바귀 혹은 고들빼기는 데친 후 물기를 꼭 짜고 초고추장에 버무리면 맛있다. 쓴맛을 참고 먹으면 어른스러워진 기분까지 느낄 수 있다.
달래, 냉이, 씀바귀가 캐는 나물이라면 쑥은 뜯는 나물이다. 쑥은 갓 돋아난 윗부분만 뜯어야 부드러운 식감으로 먹을 수 있다. 쑥을 넣은 생선국인 도다리쑥국은 봄에만 즐길 수 있는 맛이다. 도다리 구하기가 어려운 시골에서는 쑥 버무리가 제일 만만한 쑥 요리다. 쑥에 쌀가루를 훌훌 뿌려 솥에 찐다. 쌀가루가 없을 때는 아쉬운 대로 밀가루를 묻혀도 좋다. 소금만 살짝 넣고 찌면 향긋한 쑥향이 입안 가득 퍼진다.
된장을 푼 물에 쑥을 넣어 살짝만 끓이면 향긋한 쑥된장국이 된다. 쑥의 향으로 먹는 음식이니만큼 간을 슴슴하게 하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