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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김치 파먹고 나니 봄이 왔네요

[김효원의 어쩌다 농부]

by 김효원

지난해 11월 중순 담가서 12월부터 먹기 시작한 김장김치가 4월 초 바닥을 보였다. 지져먹고 볶아먹고 부쳐먹고...김장김치를 파먹다 보니 겨울이 끝났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풍으로 표현하자면 "김장김치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봄의 고장이었다."

지난해 11월 16일 담근 김장김치를 겨우내 먹었다. 사진=김효원

김치통을 씻은 후 물을 가득 담아 김치 냄새를 빼면서, 아무 학계에도 발표할 일 없는 '내 멋대로 나의 김치 소비 분석'을 해봤다. 지난해 11월 16일에 김장을 담가 12월부터 먹기 시작했으니 4개월을 먹은 셈이다. 40 포기 가량으로 김치를 담갔고 내 몫으로 가져온 김장김치는 큰 김치통 한 통이었다. 한 통에 세 포기의 배추가 들어갔고 체중계에 달아본 결과 무게는 12kg 안팎이었다. 12kg의 김치를 네 달에 걸쳐 먹었으니 한 달에 3kg을 먹은 셈이다.

콩나물을 넣어 시원한 김치콩나물국.

한국식품커뮤니케이션포럼 세계김치연구소가 2019년 조사한 한국인 평균 연간 김치소비량은 20~25kg이다. 내 경우 한 달에 3kg을 먹으니까 연간으로는 36kg이다. 한국인 평균을 크게 웃도는 수치라는 데서 큰 자부심을 느끼게 된다.


지금까지는 내 재산이 평균 이상이기를 바라마지 않았으나 문형배 헌법재판소 재판관님의 2019년 청문회 당시 영상을 최근 보고 감동받아 그 마음을 내려놓았다.


문 재판관님은 헌법재판관 평균 재산이 20억 일 때 4억 원의 재산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27년 재판관을 하셨는데 재산이 적다. 이유가 있냐"는 의원의 질문에 문 재판관은 "결혼할 때 다짐한 게 있다. 평균인의 삶에서 벗어나지 않아야겠다고. 평균 재산이 가구당 3억 남짓이다. 제 재산은 4억 조금 못된다. 평균 재산을 조금 넘어선 것 같아서 반성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앞으로는 평균 재산에 대한 열망은 내려놓고 김치 소비량에서 평균을 웃도는 데 만족하며, 쌀 소비량에도 도전해 볼까 궁리해 본다.

김치를 쭉쭉 찢어넣은 메밀부치기. 사진=김효원

김장은 겨울을 나기 위한 준비이면서 동시에 공동체라는 결속력을 다지게 하는 행위다. 그렇기에 2013년 김장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록됐고, 2017년 ‘김치 담그기’가 국가무형유산에 지정돼 그 의미를 알리고 있다.


올해 김장은 직접 모종을 내 내 손으로 키운 배추로 만들어서인지 유난히 더 맛있게 느껴졌다. 돼지고기를 넣은 김치찌개, 바삭하게 부친 김치전, 반죽을 뚝뚝 떼 넣은 김치수제비, 날 밀가루를 넣은 붕글국, 콩나물 듬뿍 넣은 김치콩나물국, 바특하게 지진 김치돼지등갈비찜, 김치를 쭉쭉 찢어 넣은 메밀 부치기, 엄마가 두부 한 날에는 두부김치, 돼지고기와 숙주 넣은 김치만두, 찬밥에 슥슥 볶은 김치볶음밥... 김장김치로 할 수 있는 수많은 음식을 해 먹었다.

김치를 넣어 더 시원한 김치 수제비. 사진=김효원
날 밀가루를 넣은 붕글국. 사진=김효원
바삭하게 부친 김치전. 사진=김효원

김치통을 비우고 나니 봄이 왔다. 그리고 이제, 봄김치를 담글 시간이다. 묵은 김치가 주는 깊고 진한 맛도 귀하지만, 봄에 담근 햇김치의 맛은 묵은 김치에서는 맛볼 수 없는 상큼함이 있다.

잘 익은 김장김치로 만든 김치만두. 사진=김효원

수박을 겨울에 먹으면 전혀 맛이 느껴지지 않듯, 모든 음식은 제철이 있다. 겨울에는 김장김치를 먹어야 한다면 봄에는 봄김치를 먹어야 제격이다. 갓 나온 봄배추나 파, 미나리, 부추, 오이, 돌나물 등으로 담근 겉절이나 물김치는 그 자체로 계절이다. 가볍고 상큼한 맛은 아지랑이처럼 부드럽게 입맛을 깨운다.

배추와 미나리를 넣은 시원한 물김치는 느끼한 음식을 먹을 때 요긴하다. 사진=김효원

오늘은 집으로 들어가는 길, 시장에 들러 배추 한 포기와 미나리 한 단을 사 오려고 한다. 시원한 물김치 한 통 담가놓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물김치 나눠 먹으며 씩씩하게 봄에서 여름으로 건너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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