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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눈' 실화인가요?

[김효원의 어쩌다 농부]

by 김효원

4월 중순에 때 아닌 눈이 펄펄 내렸다. 3월의 눈도 귀한데 4월의 눈이라니. 4월의 눈은 기상 관측을 시작한 1907년 이래 118년 만에 처음이라고 한다. 고로 현재 살아있는 사람들 중에서 4월에 내리는 눈을 본 사람은 우리가 처음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엄청난 증인이 된 것 같은 비장한 마음까지 든다.

비 바람과 추위에 피자 마자 떨어져버린 벚꽃잎. 사진=김효원

만화방창 호시절에 아니 노지는 못하리라 차차차 하려던 목련, 개나리, 벚꽃이 눈을 맞아 기가 죽었다. 봄이 왔다고 신나게 재잘대며 머리를 내밀었을 봄꽃들이 “아아앗! 세상 참 차갑네”라며 몸을 움츠리는 게 보이는 듯했다.


‘패딩 세탁은 식목일에!‘라는 패딩요정의 슬로건도 올해는 틀렸다. 참고 참고 또 참았다가 식목일에 세탁해 넣은 패딩을 다시 꺼내 입어야 할 만큼 쌀쌀한 날씨다. 앞으로는 ‘패딩 세탁은 어린이날에!‘로 바뀌어야 할지도 모른다.


꽃이나 패딩은 애교다. 날씨의 조화로 봄 농사가 걱정이다. 4월이 되면서 부지런히 봄 농사를 시작한 텃밭러들은 4월의 눈에 상추, 가지, 고추가 얼어 죽지나 않을지 노심초사하는 모습이었다. sns에는 눈발과 함께 바들바들 떨고 있는 상추며 가지 모종을 담은 영상들이 쏟아졌다.


일찍 모종을 심은 텃밭러들이 물가에 어머니를 묻은 개구리처럼 울어재낄 때 나는 아무것도 안 심은 자의 여유를 만끽할 수 있었다. 지난해 처음 농사를 시작했을 때 나 역시 부지런히 4월에 모종을 심어댔었다. 그 모습을 본 친척 아재께서 모종은 5월부터 심어야 한다고, 강원도는 4월에 서리가 내린다고 알려주셨기에 올해는 같은 실수를 하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겨울이 너무 길다. 11월부터 겨울이니 12월, 1월, 2월, 3월, 4월까지 6개월이 겨울이다. 봄, 여름, 가을, 겨어어어어어어울이다.


기후학자들은 올해 더위가 더욱 극성을 부릴 것이라고 일찌감치 전망을 내놓은 바 있다. 특히 폭염이 심해져서 4월부터 11월까지 여름이 지속될 것이라고 자신 있게 전망했는데, 기후학자님들, 올해 4월은 빼주셔야겠어요.


이토록 갈팡질팡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날씨가 계속된다면 농사는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이미 사과 생육 한계선이 점점 북상해 강원도에서 사과가 잘 자라고 있다. 온난화 때문이다. 그러다가 갑자기 한파가 몰아닥치면 온난화에 맞춰야 할지, 한랭화에 맞춰야 할지 갈팡질팡 하게 된다.


지인이 최근 자신의 SNS에 살구꽃, 배꽃이 서리를 맞아 하얗게 얼어붙어있는 사진을 올렸다. 꽃이 한창 피는 시기에 강추위가 들이닥쳤으니 꽃이 얼 수밖에. 과일나무는 똧이 피었을 때 추위로 저온피해를 입으면 그 꽃은 열매로 이어지지 못하기 때문에 생산량이 확 떨어진다. 한창 꽃 피는 시기에 강타한 꽃샘추위로, 가뜩이나 금값이 된 과일이 올해 더 비싸질 것같아 슬프다.

씨앗을 뿌린지 2주가 넘었지만 싹이 나오지 않고 있다. 올해 농사 시작할 수 있을까? 사진=김효원

이상기온은 알량한 나의 농사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5월에 내다 심으려고 씨앗을 심어놓은 모종들이 추위 탓인지 거의 나오지 않았다. 씨앗을 뿌린지 벌써 2주가 지났는데, 상추만 발아하고 나머지는 함흥차사다. 매일 들여다 봐도 씨앗들은 꼼짝도 하지 않는다. 추워서 나오지 않는 것이라고 혼자 지레짐작한다. 올해 텃밭을 호화롭게 가꿔보겠다는 포부가 점점 더 작아져간다.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알량한 농사지만, 올해 역시 고난의 여정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예감한다. 날씨의 요정께서 부디 잘 도와주시기를.


‘어쩌다 농부 시즌2‘를 마무리합니다.

이제 2년 차 농부이니까 더 전문적인 알찬 내용으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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