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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내 풀밭에 농활대원이 왔다

[김효원의 어쩌다 농부]벌써 2년차

by 김효원

어쩌다 농부가 키우고 있는 풀밭에 농활대원들이 찾아왔다. 모르는 대원은 아니고, 같은 시기에 퇴사한 직장 후배들이다. 만나기만 하면 농사의 고단함을 얘기했더니 “선배 농사 도와드리러 한 번 갈게요”했다. 공짜 노동력을 놓칠세라 서둘러 날짜를 잡고 1박 2일 농활대원과 함께 시골집으로 내려갔다.

농활대원들이 풀밭을 개간한 후 환호하고 있다. 사진=김효원

mz세대들에게는 농활이라는 단어가 생소할 테다. 농활은 ‘농민학생연대활동’의 줄임말이다. 대학생들이 여름방학 때 농촌을 찾아가 부족한 일손을 돕던 활동으로 주로 1980~1990년대에 활발히 펼쳐졌다.


어쩌다 농부도 대학생 때 농활에 참가한 적이 있다. 해남의 어느 시골 마을로 농활을 갔는데 작업반장을 맡아 집집마다 농활대원을 배치해 주는 역할을 했다. 농활대원에게 어떤 일을 맡길까 궁리하다 보니 대학생 때 작업반장의 추억이 떠올라 웃음이 났다.


첫날은 비가 내려 일을 하려야 할 수가 없었다. 귀한 일손이 찾아왔는데 비가 내려 일을 못하게 되니 농부의 마음은 애가 탔다. 그렇다고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막을 힘은 없으니 마음을 내려놓고 놀기로 했다.


읍내 맛집에서 감자옹심이와 감자전을 먹고, 한옥카페에 가서 분위기 잡으며 커피를 마셨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혼옥카페에서 마침 기타 연주회가 열려 귀까지 호사를 했다.

아궁이에 장작을 때고 고구마를 구워먹었다. 사진=김효원

집으로 돌아와서는 아궁이에 불을 지펴 불멍을 했다. 아궁이를 향해 캠핑의자를 나란히 놓고 불멍을 하다가 고구마도 구워 먹으며 촌캉스의 낭만을 즐겼다.


신나게 불멍을 할 때는 미처 예측하지 못한 일이 있었다. 농활대원들이 장작을 얼마나 많이 땠는지 아궁이 방바닥이 까맣게 타고 말았다. 방바닥을 태운 벌로 농활대원들에게 ’종신 노역‘을 선포했다.

불을 너무 많이 때 장판이 탔다. 사진=김효원

저녁에는 아궁이에서 숯불을 꺼내 화로에 담아 고기를 구워 맥주, 막걸리를 곁들여먹었다.


새벽같이 일을 시작해야 한다고 엄포를 놓았더니 다음날 농활대원들은 6시에 기상해 부지런을 떨었다. 빵과 커피로 간단히 아침을 먹고는 일 옷으로 갈아입고 8시쯤 노동의 현장으로 출발했다.


망초가 허리까지 자란 밭은 차마 밭이라고 하기 민망한 지경이었다. 오늘의 미션은 풀밭을 갈아엎고 멀칭 한 다음 토종 팥 심기.

풀이 허리까지 자란 풀밭에서 농활대원들이 잡초를 뽑고 있다. 사진=김효원

풀이 울울창창한 풀밭에서 농활대원들은 망초를 뽑고 삽으로 흙을 뒤집고 이랑과 고랑을 만드느라 땀을 흘렸다. 처음에 조잘 재잘 하던 목소리가 차츰 사라지더니 곧 침묵에 빠져들었다. 뻐꾸기 소리만이 고요한 풀밭의 정적을 깼다.


밭일의 고갱이는 새참이다. 일하느라 힘들어 따로 음식을 준비할 여력이 없어 빵과 토마토가 전부였지만 노동 후 밭에 앉아 먹는 새참은 꿀맛이었다.

허리 펼 새 없이 노동 중인 대원들. 사진=김효원

드라마 ‘전원일기‘를 보면 새참을 먹는 장면이 무수히 많이 나온다. 새참은 즉시 에너지원으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먹는 시간만큼 일을 쉴 수 있다는 점이 더 큰 목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잠깐의 휴식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풀밭위의 새참. 사진=김효원

새참을 먹은 후 새참 먹은 기운으로 멀칭을 하고 파종기로 비닐에 구멍을 낸 후 팥 씨를 심었다. 물조리개에 물을 받아와 물까지 주고 나니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삽질이 제일 힘들다. 삽질한 후배는 “왜 소가 할 일을 내가 해고 있느냐”며 어리둥절해 했다. 사진=김효원

팔, 다리, 목, 허리가 아파 도무지 밥을 해 먹을 힘이 없었던 우리는 세계인의 간편식 라면으로 점심을 먹기로 했다. 라면을 먿으며 라면을 발명한 이름모를 분에게 감사를 보냈다.


수고한 농활대원에게 고마운 마음에 작약을 꺾어 선물로 안겨주었다. 마침 작약이 활짝 피어 듬뿍 잘라줄 수 있어 다행이었다. 이 작약으로 말씀드리자면 작년 농사를 시작하며 심사숙고 끝에 고른 종목으로, 해마다 심지 않아도 알아서 월동하고 봄에 나오니 5도2촌 농부에게는 최고의 농사 아이템이라 할 수 있다.

지난 해 심은 겹작약이 잘 자라 풍성한 꽃을 피웠다. 만개한 작약을 농활대원들에게 선물할 수 있어 기뻤다. 사진=김효원


짐을 싸서 서울로 돌아오는 길, 저마다 신체의 고통을 호소했다. 각자 아픈 부위가 다 달랐는데 누구는 손가락이 구부러지지 않는다, 누구는 손에 물집이 잡혔다, 누구는 허리가 펴지지 않는다, 누구는 목이 돌아가지 않는다고 했다.

풀밭에서 어엿한 밭으로 변신. 사진=김효원

동시에 “우리가 심은 씨앗이 어떻게 자라는지 계속 궁금할 것 같다”, “이렇게 힘들게 농사 지으니 농부님들께 감사해야겠다” 등 농활에서 얻은 교훈을 이야기했다.


“다음에 또 언제 오겠느냐”고 묻자 모두들 대답을 피했다. 이렇게 농활대원 풀밭방문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끝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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