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원의 어쩌다 농부]2년차
쿠바식 틀밭을 아시나요?
언제부터인가 여기서 저기서 ‘쿠바식 틀밭’이라는 단어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쿠바식 틀밭으로 텃밭을 꾸몄다는 실제 사례와 증언도 속속 이어졌다.
쿠바식 틀밭이란 나무로 틀을 짠 다음 흙을 채우고 그 안에 채소를 심는 쿠바 사람들의 농법에서 유래됐다. 화분과 쿠바식 틀밭의 차이는 바닥이 막혀 있느냐, 뚫려 있느냐 여부다. 쿠바식 틀밭은 바닥이 뚫려있어 땅과 연결되는 것이 특징이다.
쿠바는 구 소련의 식량 원조가 사라진 후 극심한 물자 부족에 시달려 먹거리를 구하려야 구할 수가 없는 상태가 됐다고 한다. 이에 국민들이 도시에서 농사를 지어서 자급자족하기 시작했는데 농기계도 없으므로 손으로 짓는 틀밭이 활성화됐다. 이렇게 틀을 짜서 농사를 지으면 잡초 관리에 효과적이고 친환경 농법도 실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쿠바식 틀밭은 상자를 짜는 것뿐 아니라 비료나 농약도 쓰지 않는 유기농법을 의미한다. 틀밭 바닥에 나뭇가지와 나뭇잎, 잡초 등을 깔아 퇴비 역할을 하도록 한다. 또 음식물 찌꺼기를 수시로 묻어 작물에 영양을 제공한다.
상자 안에 흙을 채워놓으니 마치 우리가 농사를 지을 때 밭고랑과 이랑을 만들어 두둑을 높이 올리는 것과 같은 효과가 나타난다. 텃밭상자는 배수가 잘 되므로 장마에 비가 많이 내리는 한국의 장마철에 효과적이다. 물을 자주 줘야 할 것 같지만 의외로 그냥 땅 보다 물을 더 잘 보유하고 있어 물을 자주 주지 않아도 된다는 점도 장점이다. 또 공기가 잘 스며들어 식물 뿌리가 발달하는데 도움을 준다.
장점은 또 있다. 한번 만들어둔 상자는 해체하지 않고 매년 사용하기 때문에 해마다 밭을 갈아엎는, 이른바 ‘로터리를 칠‘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뽑아낸 잡초와 낙엽으로 멀칭을 해 풀 관리를 하니까 검정 비닐 멀칭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친환경적이다. 고랑에는 제초 매트나 벽돌 등을 깔아 풀이 나지 않도록 한다.
‘노동은 적게, 성과는 크게‘가 모토가 된 5도 2촌 2년 차에게 이처럼 좋은 점 투성이인 틀밭이 혜성처럼 나타났으니, 당장 도입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먼저 어떤 재료로 틀밭을 만들까 연구에 돌입했다.
가장 대중적으로 사용되는 소재는 나무다. 나무는 원하는 크기대로 틀을 짜기 손쉽고 틀밭을 만들어놓았을 때 분위기도 근사하다. 마치 프로방스 시골풍의 이국적인 느낌을 물씬 낼 수 있다. 그러나 단점도 있다. 나무가 습기에 꾸준히 노출되면 결국 썩는다는 점이다. 나무가 썩으면 교체해야 하는데 사용자들의 증언을 종합해 보면 약 3년 정도면 나무틀을 교체해야 한다.
나무가 썩는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대안으로 등장한 소재가 벽돌과 시멘트 블록이다. 벽돌이나 시멘트 블록은 한 장씩 쌓아 시멘트로 고정시키면서 영구적인 틀밭을 만들 수 있다. 단점이라면 벽돌과 시멘트 블록을 구입하는 재료비가 나무에 비해 더 든다는 점이다. 또 설치하는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서 직접 시공하려면 어느 정도 손기술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오와 열을 맞추고 높이를 잘 맞춰 벽돌이나 시멘트 블록 틀밭을 만드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다.
시멘트로 고정시키지 않고 벽돌이나 시멘트 블록을 그냥 쌓아서 틀밭을 만들면 어떨까 잔꾀를 생각해 보았다. 그렇게 할 경우 겨울에 흙이 얼어 부피가 팽창하게 되면 벽돌이나 시멘트 블록이 밀려 나온다는 증언이 있었다.
이럴까 저럴까 고민고민하던 중 틀밭용으로 생산된 기성 제품을 판매하는 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온라인 쇼핑몰에는 알루미늄 패널을 연결해 틀밭을 만들 수 있게 한 기성 제품을 판매하고 있었다. 벽돌로 영구 틀밭을 만들기 전 알루미늄 패널 틀밭을 먼저 시도해 틀밭의 장단점을 체험해 보기로 했다.
주문하고 일주일 정도 지나자 알루미늄 패널이 시골집으로 안전하게 배송됐다. 상자에는 둥근 패널과 평면 패널, 그리고 볼트와 너트가 들어있었다. 둥근 패널 3장 연결하고 일자형 패널을 5장 연결한 후 다시 둥근 패널 3장을 연결해 약 150센티미터 길이의 틀밭을 완성했다.
알루미늄 패널을 볼트와 너트로 조여 연결하는 과정은 수련 과정 같은 기분이었다. 중노동도 이런 중노동이 없었다. 끝없는 볼트, 너트와 싸운 끝에 틀밭 6개를 완성할 수 있었다. 틀밭 사이즈를 내 맘대로 결정한 결과 틀밭 6개의 크기가 제각각으로 나온 것은 비밀로 하고 싶다.
완성된 틀밭을 마당 한 켠에 가져다 놓고 흙을 채우기 시작했다. 밭에서 흙을 퍼다 틀밭에 가져다 넣는데 아무리 퍼다 넣어도 끝이 없이 들어가는 게 ’흙 먹는 하마’가 따로 없다. 흙을 퍼다 넣으면서 동생2와 의견충돌로 다툴 만큼 힘이 들었다. “이걸 왜 하겠다고 해서 이 고생인가” 후회가 들 즈음 겨우 흙을 다 채울 수 있었다.
틀밭에는 읍내에서 사 온 고추, 상추, 토마토, 양배추 모종을 심었다.
눈이 부시게 번쩍번쩍 빛나는 알루미늄 틀밭은 마치 우주에서 불시착한 우주선 같다. 비바람에 씻겨 번쩍임이 씻겨나가기를 기도하면서 모종 심은 틀밭에 물을 듬뿍 뿌려주었다.
가을쯤에는 알루미늄 틀밭에 대해 어떤 후기를 쓰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