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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에 참깨 심던 날

[김효원의 어쩌다 농부]벌써 2년 차

by 김효원

이제 어엿한 2년 차 농부니까 지난해의 경험을 바탕으로 물 샐 틈 없는 농사 계획을 세웠다. 지난해 중구난방 농사를 통해 농사는 단일 종목을 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 결과 올해 텃밭에 심을 작물은 참깨로 선정했다.

참깨 모종. 사진=김효원

참깨는 엄마가 강력 주장한 작물이다. 엄마는 당신의 요리 비법으로 ‘들기름과 깨보숭이‘를 꼽으신다. 그 두 가지를 얻기 위해서는 들깨와 참깨가 필요한데 들깨가 아닌 참깨가 발탁된 이유는 바로 수확의 용이함 때문이다. 들깨는 꼬투리에 들어있는 깨를 털기가 매우 어렵다. 여간해서는 잘 나오지 않는다. 이에 비해 참깨는 손만 대면 후루룩 쏟아져 나온다.

기계의 힘을 빌려 로터리와 멀칭을 했다. 사진=김효원

6월 첫 주 참깨를 심기로 했다. 올해는 문명인답게 농기구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지난해 텃밭을 괭이와 삽으로 일구느라 동생과 고초를 겪었다. 올해는 동네분에게 부탁해 트랙터로 로터리를 치고 멀칭 해주는 기계로 멀칭까지 완벽하게 해결했다. 동생과 삽질을 했더라면 2~3일은 걸렸을 밭갈이와 멀칭일이 단 1시간 만에 끝났다. 역시 인간은 도구를 써야 한다. 호모 파베르 만세!


읍내에 나가 참깨 모종을 사 왔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주천 장날이었지만 한 눈 팔지 않고 참깨 모종만 사서 부리나케 돌아왔다. 참깨 모종 한 판에는 128 포기의 참깨가 들어있다. 3판을 샀으니 384개. 충분할 줄 알았건만 모자라서 읍내에 다시 가서 2판을 더 샀고 그것도 모자라 반 판을 더 샀으니 총 704개의 모종을 심었다.

비닐에 구멍이 뚫려있어 손쉽게 모종을 심을 수 있다. 사진=김효원

모종을 심는 일은 삽질에 비하면 식은 죽 먹기였다. 심지어 멀칭 비닐에 구멍이 뚫려있어 파종기로 구멍을 뚫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됐다. 전날 내린 비로 흙도 촉촉해 온 우주가 참깨 심는 날을 축복해 주는 것 같았다.

누군가 참깨 모종을 똑똑 끊어놓았다. 사진=김효원

모종을 심고 물까지 듬뿍 주고는 올해 농사의 대풍년을 기대하며 잠이 들었는데 다음날 놀라운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 아침에 물을 주러 텃밭에 나갔던 엄마가 “뭐가 참깨 모종을 똑똑 끊어 먹었다”라고 하셨다. 나가 보니 과연 몇 개의 참깨 모종이 똑똑 꺾여있는 게 아닌가. 도대체 누구의 소행일까?


동네분에게 여쭤보니 땅속에 사는 벌레라고 했다. “참깨 심기 전에 토양살충제를 쳤어야지. 지금이라도 토양살충제를 쳐야지 안 그러면 다 먹어.”

모종 옆에 토양살충제를 한 숟가락씩 넣어주었다. 사진=김효원

참깨를 지켜야 한다는 일념으로 토양살충제를 참깨 심은 구멍에 한 숟가락씩 떠 넣었다. 살충제는 매우 고약한 냄새가 났다. 마스크를 두 개 겹쳐 썼지만 냄새가 들어와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사람이 맡아도 이리 독한데 벌레에게는 얼마나 독할까.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참깨를 사수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살충제를 뿌린 후에는 이랑에 제초매트를 까는 작업을 했다. 곧 장맛비가 내리면 이랑은 온갖 풀이 가득 자라날 터였다. 뽑아도 뽑아도 또 자라나는 풀과의 전쟁에서 이기려면 제초제나 제초매트가 필수다. 제초제는 영 마음이 내키지 않아 지난해에는 미련하게도 풀을 뽑고 또 뽑았다. 올해는 제조매트를 미리 깔아 풀이 덜 자라도록 하자고 작정했다.

풀이 나지 말라고 이랑에 매트를 깔았다. 사진=김효원

텃밭에 제초매트를 다 깔려면 그 비용 또한 만만치 않아서 재활용을 선택했다. 마을 한편에 설치된 쓰레기장에는 농사에 쓰이고 버려진 비닐이며 제초매트 등 농사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그중에 비교적 멀쩡한 제초매트를 가져다가 텃밭에 꼼꼼히 깔았다. 엄밀히 말하자면 제초매트는 아니고 다른 용도인 것 같았으나 알 길이

없었다. 파란색 매트를 깔았더니 마치 텃밭에 바닷물이 들어온 것 같았다.


제초매트까지 깔고 “작업 끝”이라며 홀가분하게 서울로 돌아왔지만, 마음은 텃밭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바람이 조금이라도 불면 제초매트가 날아가지는 않았을까 걱정하게 된다. 아무래도 텃밭에 cctv를 설치해야겠다. 텃밭이 궁금해 일이 손에 안 잡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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