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혼자 주절주절 !@#$&?
주절주절!@#$%?
잠이 잘 오지 않습니다. 열대야(?) 늦게 자는 버릇이 습관이 되어서 그런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내가 겪고 있는 불면은 다릅니다. 남들과 뭐가 어떻게 다른지 모르기에 다르다고 확신합니다.
종종 그런 순간이 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막말하는 그런 순간!
너나 나나 우리 서로 앓고 있는 스트레스에 관하여 구체적으로 형상화하지 못할 때 종종 가십으로 치부되어버리곤 하는 순간!
‘나는 또 오늘 밤 일찍 잠자리에 들긴 글렀구나.’라고 말하곤 의식적으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벌컥벌컥 마셔버리는 일종의 미필적 고의의 순간순간들 말입니다.
한밤 온도가 30도 웃도는 지독한 열대야의 기세를 꺾으려 얼마나 노력을 기울였는지 잊을 수 없는 밤들이 내 안에 쌓이고 있습니다. 에어컨 파워 냉방과 동시에 집이 밖과 통하는 모든 틈을 찾아 막아내며, 빠르게 원하는 온도에 도달하도록, 컴퓨터와 충전 중인 전자제품 코드를 모두 빼놓고, 물론 TV조차 켜지 않은 채 넋 놓아 기다립니다. 이번 달 전기세에 대한 두려움은 에어컨 리모컨에서 손을 떼지 못하게 했습니다. 파워 냉방과 무풍 냉방을 번갈아 가며 적절한 실내 온도를 찾아 떠나는 모험은 여러 난관에 봉착하며 잠 못 드는 이 밤, 침묵을 쌓아 올렸습니다.
침묵은 온몸을 타고 흘러내렸습니다. 정말 손 하나 까딱하고 싶지 않은 귀찮음이 시공간을 지배하기 시작했고, 나는 속수무책으로 점령되었습니다. 야식 따위도 떠올리지 못한 귀차니즘은 몇 가지 잡념을 내 머릿속에 섞어 넣었습니다. 귀찮음이 귀차니즘으로 어떻게 이데올로기로 번지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형체가 뚜렷하지도 명확하지도 않은 불안이 밤새 나를 짓눌렀습니다. 골몰히 생각해보면 나는 불안의 정체에 대해 분명하게 알아낼 수 있을 테지만, 왠지 그러기 싫었습니다. 자꾸 외면하고픈 마음이 일었습니다. 나는 무엇을 불안해하고 있는지 마주하게 된다면, 죄책감이나 무책임함에 사로잡힐 것 같은 예감이 들었습니다. 나는 또 그 예감마저 과감하게 외면했습니다. 찜찜하고 찝찝함이 자꾸 현실을 자각시키려 하고 있었습니다. 이만한 능동도 없다는 것처럼 불안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천천히 떠오르며 점점 뚜렷해지는 기분을 느껴야 했습니다.
좀 시원해졌다 싶어 TV를 켰습니다. ‘김제동의 톡투유’가 재방송하고 있었는데, 문득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지금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고 해서 우리가 아무것도 아닌 사람인 것이냐?” “경제적 수단이 될 만한 것만 내가 무언가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아니면 그렇게만 믿고 싶은 것인가.” 물음이 이 밤을 울리기 시작했습니다.
무엇보다 이 질문의 방향은 내가 아닌 내 옆에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향해 있습니다. 마치 나를 대변하는 것처럼 너무나 감성적이고 합리적으로 말입니다.
그러나 끊임없이 무언가 할 일을 찾아가는 사람에게는 ‘김제동의 톡투유’에서 나온 질문은 자신들의 노력에 대한 가치를 폄하하는 것처럼 모욕으로 느낄까? 아니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기에 대한 간절과 부러움인 동시에 그 뒤에 숨은 타인에 대한 우월일까?
아주 잠깐 시원해진 것 같다가도 금세 열대야처럼 눅눅하고 텁텁함이 차오릅니다. 그런 밤은 순환버스처럼 돌고 돌아 내 앞에 서곤 합니다. 나는 가끔 버스 기사의 눈을 피해 딴청을 피우며 버스를 그냥 보냅니다. "가끔"은 어김없이 불면으로 이어지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