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한다. 내가 회사에 있던 무엇을 하던 그런 건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그저 본인이 무슨 할 말이 있는데 그걸 지금 바로 말해야 하는데 상대방이 전화를 안 받으면 전전긍긍한다. 막상 받아보면 중요한 말이 아니고 별 사소하고 쓸데없는 이야기다.
어쩌다 안 받으면 부재중이 한통 두통 세 통 네 통..
쌓여있는 부재중 목록을 보고 놀라서 전화하면 역시나 별 잡스런 이야기다. 물론 문자도 수십 개가 와있다.
그중 대부분이 힘들고 아프단 이야기.
엄마의 입에서 나오는 대화의 주제는 거의 신세한탄이고 주변 사람들 욕이다.
그리고 아빠가 늙어서 걱정이라는 이야기..
여기에 더해서 우리 애들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하는 선 넘는 말까지.. 모든 대화의 흐름이 본인 위주이다.
그런 것도 모르고 한동안은 엄마한테 속 얘기를 하기도 했는데 엄마는 내 이야기로 끙끙거리며 며칠을 힘이 들어했다. 내가 시댁이야기를 하면 무조건 질투가 따라왔고 우리 애들 이야기를 하면 본인의 어릴 때 이야기로 끝이 났다. 그러면서 깨닫게 된 게 엄마에게는 이제 무조건 말을 아끼자는 거였다. 더 이상 나의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되었다. 내가 무심코 한 말은 엄마의 머릿속에서 상상거리를 더하고 더해서 이상하게 변질되었다.
그렇게 몇 년을 참다가 드디어 내가 폭발했다. 이제는 핸드폰에 엄마라는 글자가 뜨면 몸속 어딘가에서부터 분노가 치밀었다. 엄마한테 전화 좀 그만해 이제 전화하지 마라고 화를 냈다.
엄마는 어떤 날은 이제 전화 안 하겠다고 소리를 지르며 끊었고 어떤 날은 문자로 미안하다고.. 자기가 다 잘못했다고 사과했다. 어떤 날은 또 전화로 선을 넘는 말을 했고 어떤 날은 나를 비난했고 그 모든 게 안 통하니 본인한테는 그래도 되는 데 아빠한테는 그러면 안 된다면서.. 불쌍한 아빠를 방패로 삼았다.
그런 엄마와 연락문제로 실랑이를 벌이고 나면 내 마음은 만신창이가 되어버렸다. 내 핸드폰은 몇 년째 진동모드이다. 벨소리만 들어도 노이로제가 오듯이 기분이 나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핸드폰을 마냥 꺼놓을 수도 없는 게 아이들 유치원이나 학원에서 언제든 연락이 올 수 있었고, 일할 때 거래처와도 핸드폰으로 소통할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일로써 핸드폰으로 연락 오는 것도 지쳐있는데 엄마의 전화까지 나를 괴롭히니 핸드폰이 점점 무서워졌다. 끔찍하고 부숴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내가 엄마와의 전화를 끊고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굳은 표정을 하고 있으면 아이들이 묻는다. 엄마 왜 그래? 기분이 안 좋아? 화났어? 외할머니 때문에 그래?
더는 이렇게 못 산다. 내가 왜 엄마 때문에 이렇게 고통을 받고 엄마 전화 때문에 하루를 망치고 우리 아이들에게 그 감정을 전달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