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 그리고 희망
춘천에 캠퍼스가 있었다. 경춘선 기차를 타고 학교를 다녔다. 경춘선에는 언제나 여행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MT 가는 대학생들, 연인들, 친구들, 가족들로 경춘선은 언제나 설렘과 웃음이 넘쳤다. 경춘선을 타고 창밖을 바라보는 풍경은 참 아름답다. 대성리역, 가평역, 청평역, 남이섬, 강촌역, 김유정역, 남춘천역, 춘천역까지 남한강 물줄기를 따라서 여행자들의 잊지 못할 추억들로 채워지는 역들이 줄줄이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춘천 가는 길을 낭만과 애정이 가득하다.
1학년때는 학교를 잘 안 갔고 2학년, 3학년때는 자취를 했었고 중간중간 통학도 했었다. 대학 4학년 2학기때는 학교 전공실에서 살았다. 전공실에서 살았다는 게 이해하기 어려울 텐데, 예술대학은 가능하다. 왜냐면 디자인과 학생들은 허구한 날 전공실에서 밤을 세기 때문이다. 작품 과제 때문이다. 예술작품은 완성이라는 개념이 애매하다. 끝이 없기 때문이다. 작가의 주관적 결정으로 끝맺음을 한다. 엄밀히 말해서 디자인은 예술이 아니지만 디자인과 학생들도 예술가의 심장을 갖고 있다. 그래서 끝을 알 수 없는 작품 세계에 빠져들다 보면 낮과 밤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디자인과가 있었던 문화예술대학 건물에는 미술학과, 무용학과, 디자인과, 예술가들이 함께 모여 있었다. 그래서 밤이고 낮이고 언제나 불이 환하게 켜있었다.
최고 학년을 자랑하는 공업디자인 4학년 전공실 한쪽 구석에는 더블침대 매트리스가 있었고 중간에는 가정집 거실처럼 소파가 있었다. 칠판 왼쪽 모퉁이에는 텔레비전도 있었다. 밤 12시가 넘어도 내가 살던 전공실뿐만 아니라 다른 교실에도 학생들이 많았기 때문에 건물에 혼자 있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고 무섭지도 않았다. 전공실 매트리스에 누워 잠이 들고 아침에 일어나도 여전히 여기저기 학생들이 있었다. 소파에 누워서 자는 애들, 전공실 자기 책상에 엎드려 잠든 애들, 밤새도록 술 먹고 새벽에 전공실에 잠자러 온 애들이 전공을 채웠다.
아침에 일어나서는 화장실에서 샤워를 했다. 화장실 맨 왼쪽 칸은 변기가 없고 수도꼭지에 호스가 달려있어서 그걸로 몸에 물을 뿌려가면서 냉수샤워를 했다. 겨울에는 꽤 추웠다. 아마도 대학교 화장실에서 샤워를 하며 살았던 대학생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샤워를 하고 캐리어에 있는 옷으로 갈아입고 멀끔하고 산뜻하게 새로운 하루를 시작했다.
그러다 보면 아침 일찍 한 여자 후배가 전공실에 왔었다.
그 애는 밤에 편의점 알바를 하는 친구였는데 야간알바가 끝나고 나면 유통기한이 지난 삼각김밥을 몇 개 들고 전공실로 왔다. 그 후배와 함께 날짜가 지난 삼각김밥을 나눠 먹었었다. 생각해 보면 그 친구는 낮에는 학교 다니고 밤에는 편의점 알바를 했으니 잠은 언제 잤나 싶다. 한밤중에 편의점을 지키던 후배가 얼마나 졸렸을지 하품을 얼마나 많이 했을지 얼마나 힘들었을지 그때는 몰랐었다. 유통기한이 지난 삼각김밥을 먹고 배가 아플 것 같아서 안 먹고 버렸던 적도 있다. 내 삼각김밥까지 챙겨준 후배는 몰랐겠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미안하다.
그 후배는 똑순이처럼 야무진 돌멩이 같은 애였다. 똘똘한 친구라서 디자인을 잘했다. 성실하기까지 해서 디자인 퀄리티가 좋을 때는 나도 질투가 날 정도였다. 좋은 리더를 만나서 경험을 더 쌓으면 훌륭한 디자이너가 될 수 있는 장래가 촉망한 친구였다.
그 친구는 나보다 높은 학번의 선배와 사귀었었는데, 주말이 지나고 나면 입술이 빨갛게 부은 듯이 나타났다. 남자친구가 얼마나 뽀뽀를 많이 했는지, 마치 진공청소기로 한 시간은 빨아들인 듯 입술주위가 빨 개 보였다. 물론 내 추측이다. 얼마 후 그 친구는 남자친구를 피해 다니고 도망 다녔다. 남자친구를 그렇게 피해 다니는 사람을 처음 봤다. 헤어졌는데 남자친구가 집착을 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나와 학번은 4년 차이가 나는 친구였다.
경상남도 봉화에서 사과농장을 하는 과수원집의 딸내미였다. 같은 해에 졸업을 했고 졸업앨범에 함께 사진이 실린 졸업동기다. 그 친구는 졸업을 하고 디자인 전문회사에 들어가서 폐인처럼 밤새면서 일했었다. 중간중간 이직을 하고 결국 진로를 바꿨다.
세상풍파를 온몸으로 겪고 돌고 돌아 끝내 고향으로 돌아갔다. 말괄량이 같았던 그 친구는 돌멩이처럼 세상과 부딪히며 살았다. 경상도에서 강원도까지 혼자 학교에 와서 과사무실에서 일하고 편의점에서 일하면서 생활비를 벌면서 악착같이 대학을 다녔다. 졸업을 사회초년생이 돼서 사회조직에 이리저리 구르고 부딪히며 세상을 배웠을 테다. 돌멩이가 시간이 지나며 구르고 굴러 둥글둥글 조약돌이 되기도 하고 때론 견디기 힘든 일로 깨져버리기도 한다. 그 친구는 어느 순간 깨져버린 듯 보였다.
밝고 당차고 강했던 그 친구의 눈빛이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웃음기가 사라진 얼굴, 깊고 우울한 눈빛,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분위기는 고단하고 기나긴 터널을 겨우 빠져나온 사람처럼 느껴졌다. 이름도 바꿨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탄소가 높은 압력을 받으면 다이아몬드가 되기도 하지만 흑연이 되기도 한다. 세상에 살다 보면 수없이 밟히고 꺾이고 좌절하고 절망하게 된다. 태풍 속에서 살아남는 건 커다란 고목도 아닌 풑밭의 풀잎들인 것처럼, 강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먼저 꺾이고 부서지는 일들을 본다. 하지만 부서지고 깨진다고 슬퍼할 일은 아니다. 돌멩이가 깨지고 깨져 가루처럼 부서지면 그제야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도자기를 만들 수 있는 점성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아이는 흙처럼 부서지는 힘든 시간을 통과한 듯 보였다. 그리고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찾아 새롭게 빚어내고 있었다. 180도 달라진 모습이 다른 사람처럼 느껴지는 어색함이 있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더 여유 있어지고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자신이 다시 아름답게 빚어지도록 도와준 좋은 남자를 만난 듯하다. 이젠 예전의 돌멩이가 아닌 우아하고 분위기 있고 여성스러운 자기 작품이 되었다.
지금은 사랑하는 남편의 품에서 말랑말랑한 젤리처럼 살고 있다. 엄마가 되어 프로필에는 앙증맞은 아기사진들로 가득하다. 아버지와 함께 과수원을 하고 있다. 가끔 그 친구가 생각나서 사과를 주문하면 타이밍을 놓쳐 사과가 다 팔렸다는 말을 들었다. 사업이 잘 되나 보다. 사과 중에 처음 열린 사과와 햇사과가 그렇게 맛있다고 하는데 그 친구는 얼마나 좋은 사과를 많이 먹었을까? 첫 사과를 많이 먹어서 똑똑해진 것 같다.
"오빠는 금방 부서질 것 같아."
만나던 여자친구가 나에게 했던 말이다. 날 조금만 힘을 줘서 잡으면 부서져버릴 것 같은 사람이라고 했다. 그녀는 약대를 나온 영리한 친구였는데 아찔한 부분이 있었다. 예를 들면 학교에서 생쥐로 실험을 하는데 너무 겁이 나서 생쥐를 너무 세게 잡는 바람에 그만 죽여버렸다는 친구였다. 나도 그 친구를 만나면서 죽다 살아났다. 나를 완전히 부숴버릴 각오로 날 대했다. 의도적이든 아니든 그랬다.
그녀가 날 부서뜨리자 나는 산산조각 깨져버린 유리조각처럼 돼버렸다. 좌절, 절망, 분노의 시간들을 보냈다. 깨진 유리조각을 방치하면 더 금이 생기고 부서지는 상태를 막을 수 없다. 완전히 부서져야 한다. 돌멩이 같던 후배가 곱게 갈려 새롭게 빚어졌듯이, 깨진 유리 같은 나도 곱게 갈려 새로운 유리작품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적당히 깨지고 갈려서는 안 된다. 곱고 고운 가루로 만들어져야 더 좋은 작품의 재료가 될 수 있다. 인생의 고통과 절망으로 깨어질 때 희망이 사라지고 산산조각 난 것 같을 때, 오히려 그때가 새로운 소망과 희망을 품을 수 있는 최고의 기회란 것을 잊지 말자. 우린 언제든지 희망을 품을 수 있다. 새롭게 빚어지고 만들어질 수 있다.
늦은 밤 편의점을 생각하면 그 친구와 유통기한이 지난 삼각김밥이 생각난다. 이른 아침 조용한 전공실에 앉아서 삼각김밥을 나눠먹던 모습이 기억 속에 아스라이 남아있다. 삼각김밥을 내려다보는 나의 시선을 잊지 못할 것 같다. 인생의 교훈을 알려준 후배에게 추석인사도 하고 아기 선물을 하나 보내야겠다.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로마서 15:13]
May the God of hope fill you with all joy and peace as you trust in him, so that you may overflow with hope by the power of the Holy Spirit. [Romans 15:13, NIV]
https://youtu.be/qzQypLaz76w?si=gPYZSrW7MXphKv_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