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부작사부작 뭉길뭉길

일상의 글귀를 기록합니다:)

by 에원
사부작사부작 뭉길뭉길
by친구 김치찌개



가을이 한창 깊어져만 가던 하루.

가을 햇볕을 찬란히 음미하는 그 붉은빛 중학교는 그토록 아름다웠다.



"자, 우리 지금부터 한 교시 동안 밖에 나갈 거다."


정년퇴직을 앞두신 한 과학선생님께서 선언한다.

캘리그래피를 꾸미기 위한 단풍을 주으며, 가을을 감상하란다.


기말고사가 끝난 후 무료한 수업을 위해 모인 징글징글한 학생들은 반쯤 투덜대면서도 밖으로 향한다.


천명 넘는 사람이 있는 학교일지라도, 수업시간만은 고요한 복도를 지나, 친한 무리대로 하나 둘 계단을 내려간다.

적막에 눌려 침묵한 채 실내화를 직직 끌며 걸어가던 아이들은, 어느새 수군수군 이야기꽃을 피운다.

수업으로부터, 교실로부터 해방됨을 뒤늦게 깨닫는다.


밖은 생각보다 춥다.

가을의 정점이다.

선선한 바람이 불고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그 어느 때보다 푸르르고 깊다.


후문 바로 앞 단풍나무에 매달린 아이들을 지나,

두 여자아이는 천천히, 단둘이, 선선한 바람을 맞아가며 체육관으로 향한다.


본교에서 체육관으로 향하는 길은 샛노란 은행잎이 양탄자처럼 깔려있다.

사뿐사뿐, 그 위를 걷는다.


상쾌한 바람과 푸르른 하늘과 고소한 가을 냄새.

찬란한 가을 햇살이 그 둘에게 내려앉는다.


둘 중 하나는 추위에 떨고 있고 나머지 한 명은 기분 좋은 미소를 띠고 주위를 바라본다.

뭔가, 남들보다 깊이 받아들인다.




예쁜 잎사귀를 구하기 위해 학교 울타리 밑을 훑다가, 그 흔한 덤불의 나뭇잎도 변한다는 걸 깨닫는다.

우리가 매일 등하교하는 그 길을 묵묵히 장식하던 수풀마저, 잎사귀가 붉게 물들었다.

아무도 보지 않더라도 모두가 색깔을 입고 빛나더라, 그때 알아차린다.




두 아이는 체육관 앞으로 걸어간다.

잔뜩 쌓인 낙엽을 밟은 그때,




"사부작사부작 뭉길뭉길."


"어?"


둘은 웃음을 터트린다.

역시나 넓고 고요한 운동장에 웃음소리마저 부서지듯 울려 퍼진다.


"무슨 소리야ㅎ"

"몰라? 그냥 낙엽 밟을 때 사부작사부작 뭉길뭉길한 느낌이 들었어."






사부작사부작 뭉길뭉길.


이렇게 훌륭한 표현이, 엄청난 단어가.

멋진 말이, 신박한 느낌이.


그날 가을바람맞으며 친구와 걸었던 학교에서의 오후를 완벽하게 표현할 수 있는 말이었다.


그래, 그때는 참 사부작사부작 뭉길뭉길했다.

좋았다, 재밌었다, 즐거웠다.

사부작사부작 뭉길뭉길했다.




오늘도 간절함 속에서 피어난 뜨거운 글쓰기를 이어나가는 에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