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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티제 Aug 14. 2024

망령처럼 아직도 내 곁에 남아있는 기억

03

처음으로 심리상담을 받다가 도중에 울어버렸다. 눈물이 그냥 쪼-록 하고 흘린 것이 아니라 수도꼭지가 고장 난 듯 괄괄 틀어져 나왔다. 예열도 없이 갑작스럽게 모든 감각기관들이 작동해 버려 내면에서 또 다른 나와의 수습 싸움이 시작됐다. 참.. 다른 사람 앞에서 우는 것은 너무 어색하고 이상한 일이다.



아픔이 가득한 상자

선생님은 문장완성검사지 숙제를 보시고 이 아픔이 가득한 상자에 대해 물어볼까 말까 고민을 하시면서 주변을 기웃거리셨다. 결국 나는 정말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던 그 상자를 열어버렸다. 상자 뚜껑을 열자마자, 마치 그동안 안에서 꽉 끼어있어 힘들었던 작은 아이들이 폭발하며 아우성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심장이 미친 듯이 쿵쾅거렸다. 내면의 나와 끊임없이 충돌하며 귀가 점점 뜨거워졌다. 마치 작은 아이들이 말하는 들렸다.

그만 좀 눌러! 안 그래도 네가 너 스스로 죽였잖아 그게 가려지고 덮는다고 해서 없던 일이 되는 것도 아니야 그건 앞으로도 절대 변하지 않아
그동안 갇혀있느라 힘들었던 거 다 알아
꺼내는 나도 엄청난 용기라고, 무섭단 말이야



처절하고 가엾고 안 됐어요

하나씩 꺼낼 때마다 충격에 휩쓸린 선생님과 그걸 말하다 목이 메고 멈췄다 말하기를 반복하는 나. 일반적인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겪어왔을 아픔들을 마주하려니 감당이 되지 않았다. 힘들었다. 한꺼번에 다 꺼내지 않아도 되고, 천천히 얘기해 보자며  마음속의 커다란 불을 잠시 꺼주셨다. 한번 상자를 오픈 한 이상 진정이 되지 않았고, 어린아이들의 불만과  아우성은 여전히 빗발치고  있었다.



어떻게 견디며 살았어요..?

라는 질문에 파노라마가 쭉 틀어졌다. 한 챕터마다의 삶이 안타까웠고 다양한 NP과적 다이아그노시스가 유추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현재의 나를 보며 정말 잘 컸다고 다독임을 받았다. 답은 하나다. 이건 신이 하신 것이다. 고등학생 때 내가 만약 그 존재를 만나지  못했다면 과연 나는 어떤 어른으로 컸을까?



선생님,, 저는 매우 두려워요. 이 트라우마를 잊으며 덮고 지냈는데 그럴 수가 없음을 요즘 자주 느껴요.  언젠가는 마주해야 하기에 분리를 시켜야 하는데 제가 그 과정에서 정말 공들여 만들어왔던 나 자신, 나를 잃어버릴까 겁나요. 지금의 나를 잃고 그 트라우마 속에 빠져 돌아 나올 수 없을까 봐 겁이 나요. 이 세상이 무너진다? 건물이 무너질 것 같다? 세상과 건물의 주체가 나라면 비유가 적절할 것 같아요



이와 비슷한 상자의 끝은 어떤가요?


그 사람은
해피엔딩인가요?



새드엔딩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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