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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레네 Feb 19. 2024

이 맛에 선생님 하지

사람 같지 않은 놈들 사람 되어가는 거

우연히 예전에 가르쳤던 제자를 만나게 됐다. 군댈 다녀오고 얼마 전에 제대했단다. 반가워서 밥 한 끼 하자고 하고 식당엘 들어갔다.


무단결석에 담배에 학폭에 뭐 안 끼는 곳이 없었고, 그런 아이들 중에도 간혹 싹싹한 면이 조금이라도 있는 놈들이 있기 마련인데, 얘는 다정함이라곤 1도 없던 놈. 내가 연락하면 읽씹이 기본, 그나마 인심 쓴 날은 ‘네’ 한 글자가 전부였던 놈.


담임할 때 하도 내 속을 많이 썩였던 놈이라 남편도 몇 번 같이 만난 적이 있어서, 하늘나라에 있는 내 남편과 이 아이도 서로 대충 알던 사이다. 하지만 굳이 내가 먼저 남편 이야기를 꺼내고 싶진 않았다. 내가 아는 이 아이는 어떻게 반응할지 뻔하기에. 그 반응에 내가 또 상처받을 것 같아서 두려웠나 보다. 분명 누군가의 죽음에도 그저 무덤덤하게 반응할 아이였다.


나의 근황을 나누려면 사별 이야기를 꺼낼 수밖에 없기에, 그게 싫어서 나는 계속 그 아이의 근황만 묻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의 토픽은 군생활이 되었다. 한참 대화를 이어나가다 약간의 공백이 생겼을 무렵, 갑자기 그 아이의 입에서 튀어나온 뜻밖의 한 마디가 나를 놀라게 했다.  

선생님, 괜찮으세요?


갑자기 심장이 멎는 듯했다.

‘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고?’

학폭 피해자의 아픔에 한줄기 공감조차 내뱉지 못하던 아이였다. 그 아이의 입에서 공감의 언어가 나왔다는 게, 그저 놀라웠다.


“어떻게 알게 됐어?”

“00이 한테 들었어요.”

“고마워. 정말 고마워. 네가 나한테 안부를 다 묻다니, 내가 아는 네가 맞나 싶네. 나 눈물 날 거 같다 야.”

“전화로 소식을 들었는데, 제가 군대에 있어서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게... 좀 힘들더라고요.

어떻게 지내셨어요...? “

“죽고 싶을 만큼 힘든 시기도 있었는데, 그래도 어찌어찌 살아지더라고. 지금은 잘 지내고 있어. 너처럼 누가 이렇게 한 번씩 괜찮냐고 물어봐 주면 고맙더라.”

“...... 쌤 아들은 잘 있어요?”

“난 이제 나중에 새로운 사람 만나서 다 잊고 즐겁게 살아갈 건데, 아들이 늘 안쓰럽지 뭐. 한 번씩 울면 늘 아들 때문이야. 네가 나중에 크면 만나서 맛있는 것도 사주고 그래라. “


눈물 나게 고맙기도 했고, 여전히 어색하기도 했다. 이 아이와 이런 대화를 하게 되다니.


나이 먹는 게 대단한 건가,
군대가 대단한 건가,
아님 내가 겪은 사별이라는 이 사건이
이토록 대단한 건가.


사별 후 가장 크게 느꼈던 것 중 하나는, 상처가 인간관계를 더 가깝게 만들어 준다는 사실이다.


뜻밖의 위로 덕분에, 행복한 하루다.

문득 이 아이를 위해 눈물 흘리며 기도했던 나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그땐 그 기도들이 다 헛된 것만 같았다. 이 아이에게 쏟았던 내 마음이 다 무참히 짓밟힌 채 되돌아오는 것만 같아 비참했고 속이 쓰라렸다.


그러나 오늘 이 아이와의 만남으로, 다시 사랑할 힘을 주시는 것 같아 감사했다. 새 학기도 더 사랑해야지. 때려죽여도 변화될 것 같지 않은 아이들, 내 호의를 이용하고 짓밟아 내 가슴을 후벼 팔 아이들, 그런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그들을 품을 것이다. 그리고 돌려받지 못할 사랑을 계속 해 나갈 것이다. 왜냐면 주님이 그런 우리를 품으셨기에. 끝까지 사랑하셨기에. 그 사랑이 언젠가는 오늘 만난 이 아이처럼 조금이나마 변화의 씨앗이 되지 않을까 기대해 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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