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나라를 방문하게 되면, 그 나라에서 만나는 사람들로 인해 그 나라에 대한 이미지가 굳혀지곤 한다.
해외살이를 해도 직장과 직장 동료들이 있었고 혼자 자유롭게 다니던 나의 이전 해외살이와 비교한다면 이번 해외살이는 주부로서 아이 둘의 엄마가 되어 아이들과 동행하며 마주하는 상황이 대부분이다.
내가 만나는 이들은 아이 유치원에서 마주치는 학부모님이나 교직원을 제외하고는 길에서 스쳐 지나가는 이들이다.
사실 폴란드에서 살면서 폴란드인과 깊은 이야기를 나누어 본 적은 없다. 그저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같은 인사말이 전부이다. 나의 짧고 얕은 경험에 비추어 전체를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집 밖에 있을 때는 항상 아이 한 명 이상과 동행하고 있다. 영하의 날씨에 혼자 첫째는 손을 잡고, 둘째는 아기띠로 안고 길을 걷다 보면 폴란드 할머니들의 안쓰러운(?) 시선을 느낄 수 있다. 말이 통한다면 '애를 왜 이리 춥게 입혔냐' 등등의 참견의 말을 할 수도 있겠지만 우선 말이 안 통하니 눈빛을 교환하며 그들의 표정을 읽어본다. '아이고.. 혼자 애들 데리고 고생하네. 나 젊을 때 생각이 나네'. 딱 이 표정이다. 말하지 않아도 느끼는 폴란드 할머니들과의 공감대가 재미있다.
한겨울에 옷으로 꽁꽁 싸맨 아이들이 귀여운지 나에게 미소를 건네며 아이들에게 손짓하며 말을 건네는 할머니들을 자주 만났다. 지난 주말에는 갑자기 나타난 어떤 할머니 손이 우리 아이들을 쓰다듬고 계셨다. 그런 분들을 만나면 기분이 나쁘기보다는 이방인인 아이들을 이뻐해 주는 마음이 고맙다.
아이 둘을 데리고 유모차까지 가지고 트램을 타다 보면 두 개밖에 없는 내 손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퇴근시간과 겹치면 서서 가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자리를 양보해 주신다. 유모차를 트램으로 들고 내리는 것을 도와주는 분들도 종종 있다. 내가 둘째와 유모차를 챙기면서 트램에서 내리느라 첫째 손을 못 잡으면 어디선가 나타난 어머님들이 첫째 손을 대신 잡고 트램 계단을 내려가 주시는 경우도 몇 번 있었다. 아이들과 동행하는 외국인에게 친절을 베푸는데 관대한 폴란드 사람들이다.
어디든지 그렇지만 좋은 사람들이 있다면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다. 지금까지 길이나 쇼핑몰에서 칭챙총 소리를 두세 번 들었다. 아이들과 함께 있으니 아이들이 놀랄까 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는 못했지만 보통 어리거나 젊은 남자아이들이 그런 생각 없는 소리를 내더라. 내 앞에서 오징어게임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휘피람으로 부는 사람도 있었다. 그것은 기분이 나쁘기보다는 좀 신기했다. 한국사람인 것을 어떻게 알았지.
예전 20대 때 저기 머나먼 더운 나라에서 칭챙총 소리를 1분에 한 번씩 들으며 길을 다니던 때도 있었다. 40대가 되었는데도 그 상황이 닥치니 잠시 패닉에 빠지더라. 그 후로 그 상황에서 어떻게 반격할지 상시 이미지트레이닝 중이다.
아이의 유치원에서 마주치는 폴란드 학부모들도 아직 인사 이외에 깊은 이야기를 해보지 못했다. 시간이 더 지나고 아이들도 나도 조금 더 적응해 나가면서 폴란드 사람들에 대해 더 알아갈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