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적 노출 (selective exposure)

미디어 리터러시/ 미디어교육 3

by 준구


심리학자 크리스토퍼 차브리스와 대니얼 사이먼즈가 행했던 ”보이지 않는 고릴라 실험“은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실험에서 흰옷을 입은 사람과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농구공으로 몇 회의 패스를 하는지 세보라고 합니다. 영상을 본 사람들은 공을 주고받는 횟수를 기억해서 말합니다. 정확한 숫자를 맞춘 사람은 대략 절반쯤 됩니다. 다음엔 영상에서 등장했던 고릴라를 본 사람이 있느냐고 물어봅니다. 이것 역시 절반쯤은 고릴라를 보았다고 하는데, 나머지는 고릴라를 보지 못합니다.

마지막으로 뒤쪽 배경 커튼의 색상이 변한 것을 감지한 사람이 있었는지를 묻습니다. 이를 알아챈 사람은 절반 이하로 떨어집니다. 이 영상을 수업 때 함께 볼 때면, 대략 비슷한 결과치가 나오고, 참여자들은 자신이 미처 인식하지 못한 숨겨짐에 놀라워합니다.


보이지 않는 고릴라


모두가 눈을 똑바로 뜨고 영상을 주시하는데 왜 이렇게 정답률이 떨어지는 것일까 의아합니다. 심리학자는 ‘선택적 인지’ 또는 '선택적 인식' selective perception ( 사람이 환경을 인지할 때, 자신에게 영향을 주거나 자신이 기대하는 것 과 일치하는 것만을 인식하는 경향)으로 인한 시야의 맹점을 들었습니다.

한 가지에 집중하면, 명백히 존재하는 다른 것을 보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뻔히 보이지만 볼 수 없는 상황이 생긴 것입니다.

제시어를 ‘고릴라가 등장하느냐?’로 물었다면 정답률은 아마 더 높았을 것입니다.


성경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고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한다 “

왜 눈뜬 소경이 되는 것인지, 의아해하면서도 인간의 한계인 것 같아서 겸손해지게 됩니다.


반면 군사정권하에서 언론탄압과 통제가 심했던 시절, 사람들은 방송과 신문의 행간을 읽으려고 무진 애를 썼습니다. 감시와 사찰로 인해 미처 표현하지 못한 의미나 뉘앙스를 찾느라 눈과 귀를 부릅떴습니다.

어떤 메시지는 보이는 데 시청자가 알아차리지 못하고, 어떤 경우는 보여주지 않는 데도 읽어냅니다. 비판적이고 창조적인 수용자들만이 갖는 이해능력이며 혜안이었을 거라 생각됩니다.


이기적 진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잘 볼 수 있을까요?

파하드 만주의 저서 <이기적 진실 True enough>에는 1951년 다트머스와 프린스턴 대학의 풋볼 결승전을 예로 듭니다. 아이비리그의 명문인 두 대학은 최종 결승에 올라 치열한 경기를 펼쳤습니다. 그렇지만 경기는 너무 치열하게 흘러 반칙과 파울 부상이 속출하는 더티한 게임이 되었습니다. 두 학교의 학생들과 해당 학교를 졸업한 동문들은 현저하게 상대팀이 비신사적이었다고 답했습니다.

그래서, 녹화된 영상을 다트머스와 프린스턴의 학생과 동문들에게 보여주고 설문 조사했습니다. 결과는 양측 모두 자신이 소속된 학교 선수들의 파울은 현저히 적게 기록하고 상대방 학교 선수의 파울은 몇 배나 더 많이 잡아냈습니다. 미국 사회에서 수준 높은 지성을 소유했다는 사람들에게서도 편향을 넘어 편파적으로 기우는 시각이 발견됩니다.

자기 학교 선수들의 파울보다는 상대방의 파울이 더 민감하게 눈에 들어오는 것은 자신이 지닌 신념이나 체계에 위배되는 정보를 거부하고 부합하는 정보만 취하는 ‘선택적 노출( selective exposure)'의

반증입니다.


이러한 경향성은 우리 주변에서도 존재합니다.

부산이 고향이어서 나면서부터 롯데 팬이고, 광주서 자라서 기아의 팬인 야구 마니아를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심판이 자신의 팀에 불리하게 편파적이라고 느낍니다. 국가 간 대항전에서는 온갖 애국심과 여러 요인들이 더 많은 자극을 주어 객관적이고 냉정한 눈으로 경기를 보기가 힘듭니다.

그 대학의 일원으로서, 그 지역의 사람으로서,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집단적 연대의식으로 편향성을 갖고 경기를 보게 됩니다. 이러한 학연, 지연, 혈연, 종족, 남녀, 종교, 기득권, 대기업 및 국가적 편향의 안경은 공정과 공평을 눈멀게 합니다. 진실과 진리의 접근에 장애가 될 수 있습니다.


인식하든 못 하든, 인정하든 안 하든 우리 사회에는 우리 몸으로 체화된 독특한 편향성이 존재합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지양되고 극복될 때 우리는 더욱 살만한 세상에서 정의와 공의를 누릴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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