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과 1970년의 공존
멀리서 바라만 보던 현지인의 마을로 성큼 들어섰다.
혼자 집을 나선 터라 잠시 머뭇거렸지만 이내 용기를 내서 깊이 들어가 보기로 했다.
내가 사는 곳이 아스팔트로 포장된 매인 도로가에 위치한 상대적으로 부유하고 안전한 지역이라면
현지인의 마을은 두어 블록 아래에 자리 잡고 있다.
진입로에서부터 도로포장이 안 된 시뻘건 황톳길이 펼쳐져 있어 군데군데 파이고 울통 불퉁하다.
길을 따라 마을로 접어들면 우리나라의 70년대를 연상케 하는 달동네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판자로 얼키설키 좌판을 만들어 채소를 파는 사람들과 누추하고 지저분해 보이는 이발소와 식품점들이 보인다. 도로 가 주택지의 분위기가 2023년의 유럽이라면 이백여 미터 안쪽으로 이동한 이 지점은 1960~70년의 서울 변두리의 달동네를 연상시킨다. 타임머신을 타고 순간 이동한 것처럼 무대와 세트가 순식간에 바뀌었다.
어린아이와 어른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시선이 내게로 모아진다.
간혹 "헬로 무중구"라고 외치며 인사를 건네는 사람도 있지만, 대체로 이곳에 왜 왔을까 하는 의구심 어린 눈초리다. 내게 쏟아지는 시선이 부담스럽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 담담한 보폭으로 앞을 향해 걸었다.
이 내밀한 골목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보고 싶다는 유혹에 빠지지만, 나의 촬영이 그들의 가난한 삶에 대한 모독으로 비칠까 봐 함부로 행동할 수가 없다. 셔터를 누르지 않는 대신에 나의 눈으로
기억하는 수밖에 없다. 허름한 집과 노점상, 리어카 좌판에서 채소를 파는 사람들의 모습과 아이들의 시끌벅적 길에서 노는 일상이 1970년에 경험했던 우리의 분위기와 너무도 흡사했다.
한참을 들어가니 아래로는 드 넓은 밭이 펼쳐졌고 그 위로는 언덕 같은 산이 자리하고 있다.
윗동네와는 비교가 안되게 허름하고 가난한 집의 벽에는 낙서인지, 한껏 뽐낸 예술 그림인지 모를
페인팅이 현란하게 덧칠되어 있다. 언덕 위가 성 안의 사람이 사는 장소라면 이곳은 성 밖에서 사는 사람들의 마을이다. 수도꼭지를 돌리면 상수도에서 물이 나오고, 가스레인지로 밥을 지어먹으며 수세식 화장실의 청결이 갖춰진 곳의 삶을 상상할 수 없는 공간이다. 물을 길어 와야 하고, 숯불로 인내하며 음식을 만들어야 하고 푸세식 변소와 하수시설을 갖추지 못한 채 살아간다. 팽창하는 키갈리의 확장 세로 본다면 이곳의 거주민은 조만간 강제 이주의 절차를 밟게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황톳길을 걸으며 깊은 향수와 친근함에 휩싸였다.
높게 솟은 나무와 황토로 담을 싸아 올린 벽체, 소박한 텃밭에서 사람 사는 냄새가 풍겼다.
주변만을 겉돌다 이제야 현지인들의 내밀한 삶 속으로 들어온 느낌이었다.
사람들이 보이지 않을 때에야 겨우 몇 장의 사진을 찍었다.
직업의식에 입각했다면 단 한 장의 사진으로도 그들의 노곤함을 상징할 이미지를 포착하려 애썼겠지만 그렇게 무례할 수는 없었다. 여전히 이런 고단한 일상을 살아간다는 것이 애달팠다.
더 으슥한 길을 따라 넓게 펼쳐진 밭을 지나 높은 언덕 위까지 걸어가 보고 싶었다.
그렇지만 오늘 혼자의 산책은 이 정도에서 마치기로 한다. 몇몇 어른의 눈동자는 풀어지고 초점을 잃어서 술에 쩐 것인지 마약에 취한 것인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였다.
현지인 친구와 동행한 길이 아니어서 더 이상의 진입엔 안전을 담보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한 두 블록을 사이에 두고 현재와 과거가 공존한다는 사실이 믿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2023년의 서울과 1970년대 달동네가 동시에 펼쳐지고 있는 공간에서 나의 거쳐로 돌아왔다.
그들이 사는 마을에서 부유한 자들이 사는 동네로 바로 연결된 길은 없다.
이상하리만큼 기형적으로 만나지 못하도록 길을 이어놓지 않았다. 통하는 길에는 부유한 자들이 가로막아 놓은 바리케이드가 놓여있다. 버젓이 길을 폐쇄해서 진입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하늘은 파랗고 구름은 두둥실 떠서 손에 잡힐 것 같은 풍경화다.
진 황토색 흙은 비옥하고 기름져서 푸르른 초록과 나무 잎새를 더욱 영롱하게 만들었다.
우기철의 비가 갑자기 내리쳤다.
하늘은 가난한 지역과 부유한 지역을 가르지 않고 고르게 비를 뿌렸다.
성 밖의 사람들도 성 안의 삶을 누릴 수 있다면 좋으련만……
교육이 그런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지……
그럴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하늘을 올려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