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공항에서 르완다 친구를 환송하며
평생 살면서 코리아에 와볼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아프리카사람 둘을 인천공항에서 다시 만났다. 자신의 재정으로는 왕복 비행기표를 살 형편이 안 되고 비자도 발급받기 어려운 한국땅에서, 르완다 사람을 만난 것이다. 한국에서의 연수 일정을 마치고 르완다로 돌아가는 길인데 이들을 또 언제 볼까 싶어 저녁이라도 함께 먹어야겠다는 마음으로 이들과 재회했다.
이노센트 선생님은 월드미션고등학교의 교장으로 30대 후반의 젊은 리더고 길버트는 야간에는 대학을 다니고 주간에는 고등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교사로 일하는 중이다. 작년에 르완다에서 함께 근무하며 정을 쌓았던 사이라 이들의 방문이 신기하고 기특할 따름이다. 운이 좋게, 우리 정부에서 주최하는 외국인 한국어교사연수와 교장연수에 참여하는 영광을 얻었다. 왕복 비행 편은 물론이고 서울 관광과 잔잔한 선물을 거머쥔 알찬 시간이었다. 일주일 가량의 연수기간엔 해외 각지에서 참여한 120여 명의 사람들과 어울리며 유익한 교육과 나들이를 즐겼다. 각자의 나라로 떠나는 날, 오전까지 이어진 일정을 마치고 밤비행기로 고국으로 돌아가기 전의 짤막한 자유시간이다.
나로서는 이번이 3일 연속으로 공항 픽업에 나선 셈이었다. 일이 겹치려고 그랬는지 들어오고 나가는 사람들이 하루 씩 차이를 두고 입국과 출국을 거듭했다. 부득이 맞이하지 않을 수 없는 관계와 입장이라 환대와 기쁨 의무감이 뒤섞인 감정으로 운전대를 잡았다. 길이 막히지만 않으면 80킬로의 거리를 1시간 내로 주파하기도 하지만 외곽도로를 고속으로 달릴 때나 혼잡할 때 모두 신경 쓰며 핸들을 잡아야 했다. 속도를 한껏 높였다가도 터미널 근처에서는 급속히 줄어드는 속도제한을 못 맞춰서 티켓을 끊었던 것을 생각하면 약간 긴장하게도 된다. 어쨌거나, 도착 시간과 출발시간 등을 고려하면 늘 서둘러서 움직이고 여유 있게 기다리는 것이 상책이라 공항마중에는 많은 시간이 소모된다.
이번 만남 역시 몸은 피곤하지만 그래도 정에 이끌려 나온 격이었다.
그런데 막상 3층 출국장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르완다 친구들을 만나자 반갑고 격한 포옹부터 하게 된다. 말끔한 옷으로 갈아입은 이노센트와 길버트 곁에는 한국 대학에서 3년째 유학 중인 길버트의 형도 나와 있었다. 우리 돈이 없던 차에 어떻게 저녁을 먹을까 고민하다 내가 나타났으니 구세주를 만난 격으로 기쁘고 즐겁게 식사를 즐길 수 있었다. 길버트는 이번 방문이 두 번째라 그 놀라움이 덜했지만 이노센트 교장은 많은 인사이트와 놀라움을 발견한 시간이었다고 말한다.
“인천공항”의 규모와 첨단 시설에 놀라고 지하철의 깨끗함과 편리함에 감탄했다. 미국도 가봤던 그가 본 지하철의 상태는 단연 우리나라가 최고라며 엄지를 올렸다. 다음으로 경이롭게 여긴 것은 한강의 넓이와 그 위에 건립된 다리가 많다는 점이었다. 튼튼하고도 긴 교량 위로 여러 차선의 도로가 나 있다는 것이 경이롭다고 했다. 높이 솟은 아파트가 많고 거기에 모여 산다는 점이 자신들과는 다르고 신기하다고 했다. 놀라는 김에 한술 더 떠서 한강 밑으로 연결해서 여의도에 이르는 지하철을 타봤냐고 물으니 눈이 휘둥그레졌다.
강 아래로 터널을 뚫고 지하공간을 잇는 기술력에 놀란 것이다.
아무튼 우리는 식사를 주문하고 30분이나 한 시간은 기다려야 음식이 나오는 아프리카 방식이 아닌, 키오스크로 주문해서 서빙기계가 5분 만에 전해주는 한식을 안주 삼아 문화의 다름과 기술력이 바꿔놓는 문명을 이야기하며 저녁을 즐겼다. 그들의 관점에서는 우리의 어떤 부분이 매력적인 것이고 나의 입장에서는 아프리카의 느림과 여유가 더 인간적으로 끌리는 지점이다.
찬양팀의 리더이며 k-pop에 능한 길버트는 이번 외국인대상 한국노래 부르기 대회에서 1등 하며 삼성패드를 포상으로 받았다. 르완다로 돌아가는 길에 얻은 최고의 선물이다. 이노센트 교장은 신줏단지 모시듯 자신의 가방을 크로스로 메어 몸에 딱 붙이고 있는데 자세히 보니 내가 사용하다가 나눔 하라고 아프리카에 두고 온 물건 중의 하나였다. 굳이 아는 체 하지는 않았지만 귀하게 사용되고 있으니 반가울 따름이다.
길버트의 형은 자신의 고국으로 돌아가는 동생을 몹시 부러워하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3년을 유학하면서 한 번도 르완다를 가지 못한 것은 왕복 비행기값이 만만치않기 때문이다. 그나마 후원교회의 도움과 대학장학금으로 한국에서의 유학을 버티는 중이다.
그래도 동생이 가져온 르완다의 전통음식이 고향의 향수를 잠시나마 잊게 만들 터다.
3층에서 저녁을 먹고 조용한 지하층의 카페로 옮기며 공항 구석구석을 보게 했다. 24시 자정에 타야 하는 비행기라 좀 쉬게 하며 음료를 나누며 대화한다. 이번에 카가메대통령이 명예박사학위를 받은 Y대학을 방문했는데, 월드미션에서 운영하는 대학이나 르완다의 대학이 그런 수준으로 발전했으면 좋겠다는 바람과 내가 다시 르완다에서 미디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으로 오면 좋겠다는 소망을 나누었다.
헤어지면서 그들의 손에 초콜릿을 쥐어 주었다. ‘가나초콜릿’이라 적혀있는 익숙한 아프리카 나라에 반가움을 표한 것인지 달콤한 초콜릿 선물에 감동한 것인지 모를 고마움을 표했다.
안녕히 돌아가시라.
다른 선생님들에게도 안부 전해주시고 한국에서 받은 인상이 강렬하더라도
아침 조회 때 너무 길게 훈시하지는 마시길……
누군가는 첨단 문명을 동경하지만 어떤 이는 자연 그대로를 흠모할 수 있으니
다시 보게 되면 그때 또 반가워합시다.
잘 가고 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