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7일간의 모닝페이지

가벼워진 삶, 그리고 아침의 글쓰기

by 컴쟁이


요즘 나를 표현하는 가장 정확한 말은 ‘가벼워졌다’는 것이다. 몸무게도, 인간관계도, 욕심도 하나둘 내려놓고 나니 내가 내 삶을 조금 더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예전엔 뭐든 ‘쥐고 있어야 안심’이었는데, 지금은 ‘놓고 나면 보이는 것들’이 있다는 걸 안다. 그렇게 나는 아주 조금씩, 하지만 분명하게 가벼워지고 있다.


가벼워지기 위해 무언가를 해보자고 다짐했을 때, 나는 아침 글쓰기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출판사에서 진행하는 작은 이벤트가 계기였다. 모닝 페이지라고 불리는 방식인데, 일어나자마자 삼 페이지 분량의 글을 아무 주제 없이,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써 내려가는 것이다. 처음에는 반신반의였다. 무슨 말을 써야 하지? 무슨 생각을 이렇게 길게? 하지만 해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 기대 없이 시작했지만, 매일 아침 내 손끝에서 흘러나오는 문장들이 점점 나를 치유해주고 있었다.


사실 나는 오랫동안 글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쓴다, 써야지 하면서도 막상 노트를 펴거나 컴퓨터 앞에 앉으면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마음은 복잡한데, 글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면 괜히 하루 종일 찝찝했다. 꼭 숙제를 밀려둔 아이처럼.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미루는, 그 고약한 감정. 말로 설명하긴 어렵지만, 그런 날들이 꽤 오래 이어졌다. 그러다 보니 나는 점점 내가 어떤 사람인지조차 잊어버리는 기분이었다.


아침의 글쓰기는 그 답답함을 천천히 풀어주는 열쇠였다. 글이라는 것이 꼭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글을 잘 쓰는 것보다 중요한 건 ‘진짜 내 안의 말을 꺼내는 일’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처음엔 ‘이게 무슨 글인가?’ 싶을 정도로 정리가 안 된 문장이 가득했지만, 한 문장 두 문장 쌓이다 보니 어느새 내 마음의 구조가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왜 요즘 예민했는지, 무엇에 억울했는지, 어떤 감정은 도무지 이름 붙이기 어렵지만 분명히 나를 짓누르고 있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인간관계도, 욕심도, 해야만 한다고 믿었던 많은 것들이 사실은 내 것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는 시간이었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 어른스럽게 보이기 위해, 사랑받기 위해 쥐고 있었던 것들. 정작 나 자신은 점점 소외되고 있었다. 아침의 글쓰기를 통해 나는 조금씩 내 편이 되는 연습을 하고 있다. 내가 나에게 말을 걸고,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시간. 그 시간이 점점 늘어나자, 내가 무얼 좋아하는지, 무엇을 피하고 싶어 하는지, 어떤 상황에서 위축되는지를 더 명확히 알 수 있었다.


이제는 의식적으로 비워내고 정리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일정을 꽉 채우지 않고 여백을 남겨두는 것. 사람들과의 약속도, 일도, 해야 할 일도 무작정 채우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내 삶에 바람이 통하기 시작했다. 숨이 트이고, 머리도 가벼워졌다. 스스로를 괴롭히던 과거의 ‘해야만 하는 것들’이 이제는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 사이에서 조율되고 있다.


이런 변화 속에서 가장 감사한 것은, 나를 위한 시간에 인색하지 않게 된 것이다. 예전의 나는 늘 누군가의 시간을 먼저 생각했다. 누가 나를 기다릴까, 실망할까, 필요로 할까. 그래서 내 시간은 늘 뒤로 밀렸다. 하고 싶었던 것도 늘 ‘나중에’였다. 그런데 그런 나중은 영원히 오지 않는다. 나중은 언제나 더 바쁠 것이고, 더 지쳐 있을 것이며, 더 많은 핑계들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어쨌든 요즘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글을 쓴다. 노트를 펴고, 조용히 나에게 말을 건다. “오늘은 어떤 마음이야?”라고. 어떤 날은 기분이 가볍고, 어떤 날은 이유 없이 울적하다. 하지만 괜찮다. 이제는 그런 나를 괜찮다고 여길 수 있게 되었다. 무조건 밝을 필요도 없고, 무조건 쿨할 필요도 없다. 내 감정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건 당연한 일이고, 그걸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으면 된다고, 나에게 말해줄 수 있게 되었다.


가벼워진다는 것은 단순히 덜어내는 것이 아니다. 나에게 진짜 중요한 것만을 남기기 위한 선택이다. 글쓰기가 그 선택을 가능하게 했다. 아무도 보지 않아도 좋고, 누구에게 보여주지 않아도 좋다. 그저 내 안의 마음을 꺼내어 바라보고, 다정하게 감싸주는 그 행위만으로도 충분하다. 그게 나를 더 나답게 살아가게 해 주고, 내가 진짜 원하는 방향으로 걸어가게 한다.


앞으로도 나는 나에게 시간을 선물할 것이다. 가장 좋은 아침의 조각을 나를 위해 남겨두고, 하고 싶었던 것을 해보고, 실패도 해보고, 그 모든 것을 글로 남기고 싶다. 그렇게 내 인생의 페이지를 조금씩 채워가다 보면, 언젠가 내가 좋아하는 삶의 모양이 완성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 나는, 그런 삶을 살아가는 중이다.



keyword
금요일 연재
이전 18화건강검진 전날의 1+1 햄버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