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추천작은 올해 영화 베스트 10, 올해 넷플릭스 베스트 10으로 대체합니다 :)
2022년 올해 개봉작 베스트는 어렵지 않게 꼽았다. 극장에서 보았을 때 가장 의미 있는(모든 작품이 다 그렇긴 하겠지만) 작품을 위주로 꼽았고, 2022년의 베스트 영화를 뭘 꼽지, 하는 생각을 머릿속에서 떠올렸을 때 반사적으로 생각나는 영화들 목록을 추렸다. 올해 초에 개봉한 영화들부터 바로 지난달까지 개봉한 영화들이 고르게 포함되어 있고, 오랜만에 한국 영화가 상위권에 하나 있다는 게 괜히 뿌듯하고 좋기도 했다. 항상 연말 제일 마지막에 본 영화들은 거의 순위에 오르지 못한다는 나름의 연례(?)가 있는데 올해도 마찬가지였다.
작년에 비해 N차 관람은 줄어들었고 확실히 개봉작보다 OTT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늘었다. 다양한 블록버스터 한국 영화가 개봉한 해였지만 그중 마음에 남는 건 거의 없었다. 아마 올해 최초로 본 영화가 <특송>이었던 것 같은데, 이 영화는 한여름에 개봉한 다른 한국 영화들보다는 좋았지만 순위권에 들지는 못했다. 홍상수 감독의 신작 <소설가의 영화>와 <탑>도 마찬가지.
이 리스트는 2022년 1월부터 2022년 12월까지의 국내 개봉작 만을 기준으로 했다. 언제나 그렇듯 순위는 10위부터 1위 순서대로다.
10. <본즈 앤 올>
작년 개봉작 베스트 1위에 <듄>이 있었는데, 올해 개봉작 베스트에도 여전히 티모시 샬라메가 들어있다는 게 흥미롭다. 루카 구아다니노의 신작으로 티모시 샬라메와 테일러 러셀이 주연한 '식인' 영화다. 루카 구아다니노의 장점만을 뽑아 만들었다는 느낌이 강했는데, 개인적으로는 <본즈 앤 올>의 고어씬과 더불어 주인공들이 철저하게 '혼자' 살아가도록 만드는 영화의 처연한 지점들을 로맨스 장르의 화법을 부분적으로 활용하고 있어 흥미로웠다.
9. <썬다운>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본 후로 완전히 매료되어, 개봉을 기다려 한 번 더 보았던 영화다. 미셸 프랑코 감독의 신작으로, 팀 로스와 샤를로트 갱스부르의 열연이 돋보이는 영화. 멕시코 해안에 위치한 호화 리조트에서 바캉스를 즐기던 가족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달된 직후 분열되는 가족과 스스로 고립을 자처한 남자의 이야기가 골자다. 작열하는 '태양'의 이미지가 교차되고 클로즈업되는 장면들이 인상적이었고, 굉장히 충격적이었던 후반부와 결말 때문에 한동안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던 영화다. 부분부분 감독의 전작 <뉴 오더>가 떠올랐다.
8. <리코리쉬 피자>
폴 토머스 앤더슨(PTA)의 신작이었던 영화. 올해 상반기에 개봉했고, 극장에 오래 걸려있지 않아 아쉬웠던 영화이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폴 토머스 앤더슨의 필모 중 최고의 코미디 영화라고 생각한다. <매그놀리아>, <부기나이트>, <펀치 드렁크 러브> 등을 묘하게 섞어놓은 듯하면서도, 이 영화의 주인공들을 한데 때려 넣은 느낌의 기묘한 영화였다. <리코리쉬 피자>를 보면서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초기작들이 꽤 많이 떠올랐다. 폴 토머스 앤더슨의 영화 중 가장 대중적인(!) 작품.
7. <멘>
공포영화가 전반적으로 부진했던 한 해였기에 <멘>을 빼놓을 수 없다. 알렉스 가렌드 감독의 연출작으로, 제시 버클리의 명연기, 그리고 로리 키니어의 엄청난 희생(!) 속에 탄생한 작품이다. A24에서 제작을 시작했을 때부터 몹시 기대했던 작품이고, 뚜껑을 열고나서도 아주 만족스러웠다. '바디 호러'라는 장르에 국한하지 않아도, 충분히 즐거웠던 호러 영화인 동시에 후반부의 충격적인 15분간의 묘사가 아직도 눈에 선할 정도. 올해 '원 앤 온니'의 공포영화가 아닐지.
6. <엘비스>
올해 가장 안타까운 영화 베스트 1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엘비스>. 바즈 루어만 감독으로, 오스틴 버틀러가 엘비스를, 톰 행크스가 톰 파커 역을 맡았다.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보자마자 단번에 '이건 올해의 영화가 될 거야!'라고 생각했고 몇 번 관람을 더 하려고 했으나 가장 좋은 환경인 돌비시네마에서 정말로 빠르게 내려가는 바람에 비운의 영화(...)가 되어버렸다. 오스틴 버틀러의 '엘비스' 빙의야 말해 뭐해 싶고, 영화 전체가 롤러코스터 타며 퍼레이드를 바라보는 듯 빠르고 화려하고 자극적인 동시에 완벽한 비극으로 곤두박질 친다. 바즈 루어만이 쏟아낼 수 있는 모든 걸 갈아낸 듯한 느낌의 영화였다. 다시 극장에서 개봉한다면 꼭 놓치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5. <놉>
조던 필 감독의 신작이자, 올 한 해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영화. 개인적으로 조던 필 영화 중 베스트가 아닐까 싶었고(아직 삼 세 판이지만) 영화 전반이 코즈믹호러를 표방하고 있는 지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조던 필이 아이맥스 화면비를 허투루 쓰지 않는 현재의 유일한 감독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영화였고, 조던 필이 평소에 좋아하거나 좋아한다고 밝힌 것들에 대한 오마주가 상당히 짙게 깔려 있어 어느 정도 영화를 즐겨왔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에겐 정말 즐거운 경험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다음 도약이 기대되게 만들었던 영화.
4. <스펜서>
올해 3월에 극장에서 관람한 이래 몇 개월 동안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던 영화. <재키>와 애플TV+ 오리지널 드라마 <리시 이야기>의 연출자인 파블로 라라인 감독이 영화의 연출을 맡았다. 다이애나 스펜서 왕세자비를 주인공으로 한 실화 소재의 영화로 가히 크리스틴 스튜어트를 위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의 모든 부분이 좋았는데 특히 조니 그린우드의 OST가 정말로 압도적. <셰이프 오브 워터>로 호평을 받은 샐리 호킨스가 다이애나의 의상 담당자로 등장해 반가웠다.
3.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마블이 아무리 노력해도 구현하지 못하는 '진정한' 멀티버스 영화이자, 양자경의 모든 것이 들어있는 영화. 총 3부로 구성되어 각자 다른 이야기를 하며 하나로 합쳐지는데, 보기 드물게 N차 관람을 추천하고 싶은 영화였고 단 하나도 허투루 지나가는 장면이 없이 고르고 유려하게 퍼져 있는 서사와 연출이 인상적이었다. 울고 웃고를 반복하며 정신없이 빨려 들어갔던 영화. '멀티버스'의 장점을 확연하고 확고하게 연출해 관객들에게 이렇게 보여주는 영화는 없지 않았나 싶다.
2. <탑건: 매버릭>
아마도 올해 영화관에서 가장 많이 본 영화가 아닐까 싶다. 4DX관람을 극혐하는 나에게 정말 오랜만에 4DX 예매를 하게 만들었던 영화. 최근 이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뻔한 스토리에 뻔한 전개에 어떻게 결말이 지어질지를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정석으로 공 들여 만든 상업영화이자 속편을 본 적이 있었나 생각해본다. 무려 36년 만에 나온 후속편이지만, 전작의 장점을 고스란히 가져와 '톰 크루즈'라는 배우가 이를 또다시 발화시켰을 때의 쾌감. 전작을 능가하는 속편의 좋은 예라고 할 수 있겠다. 전작인 <탑건>의 몇 이야기를 끌어와 후속편이 만들어지긴 했지만, 전작을 몰라도 충분히 공감할 이야기인 동시에 기승전결 뚜렷한, 후반부에서 몰아치는 하이라이트 장면들로 인해 기립박수가 나오고도 남을 법한 영화는 오랜만이다. 아마도 이런 지점들이 이 영화의 흥행 스코어를 대변하지 않을까 싶다.
1. <헤어질 결심>
1위와 2위는 고민을 많이 했지만, 극장 안에서뿐만 아니라 극장 밖까지 나와 잔상이 오래도록 남는 영화를 기준으로 보자면 <헤어질 결심>이 다른 모든 영화들보다 압도적이었다. 정말 많은 고전 감독들이 떠올랐고, 그를 대변하듯 정동적인 고전 범죄 영화의 기법과 연출을 밟은 이 영화는 너무도 매력적이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때문에 영화가 끝났을 때 그대로 다시 극장에 들어가 한번 영화를 더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해준이 바로 발 아래 서래를 두고, 사라진 서래를 미친 듯 찾아 헤매는 장면을 보면서 '안개'의 가사를 되짚어보는 건 무척 즐거웠다. 정말 오래도록 '안개'를 흥얼거리고 해준과 서래를 생각하며 이 영화의 많은 장면을 되짚고 곱씹고 있다.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스틸컷과 포스터와 OST까지 너무 완벽했다. 개인적인 박찬욱 감독의 필모그래피 베스트에 있어 단숨에 2위를 차지한 영화.
순위에 들지 못했지만 따로 언급하고 싶은 영화는 리들리 스콧의 <하우스 오브 구찌>와 코고나다의 <애프터 양>, 그리고 프랜 크랜즈의 <매스>와 오세연 감독의 <성덕>이다. <하우스 오브 구찌>는 논란이 많았던 영화였지만 리들리 스콧이 레이디 가가를 운용하는 능력과 그걸 그대로 맞받아쳐준 레이디 가가의 연기에 혀를 내두르며 봤다. 코고나다의 <애프터 양> 역시 인상적이었고 따듯하고 애틋한 감정을 그대로 미래 기술에 입히는 지점이 즐겁고 신선했다.
프랜 크랜즈의 <매스>는 올해 여름에 잠시 개봉했다 사라진 영화다. 나는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보고 영화제 최고의 영화라 생각해 개봉을 기다렸고, 개봉 후에 한 번 더 보았다. 오세연 감독의 <성덕> 또한 그런데, 두 영화 모두 영화제에서 반응이 좋고 호응을 많이 얻어 개봉하게 되었다. <매스>는 흥행하지 못했지만 <성덕>은 여전히 여기저기서 상영을 이어가며 흥행 행진 중이다. 이중 특히나 <매스>는 넷플릭스나 왓챠 같은 OTT에 어서 올라와 많은 사람이 보았으면 좋겠다. 너무 빨리 개봉하고 내려 이 영화에 대한 많은 말들이 오가지 못한 게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