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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쓸 만한 조과장 Jan 30. 2022

구이년생  조대리에서
쓸 만한 조과장으로

필명을 2년 만에 바꿔봤다. 이것은 내가 회사에서 승진했다는 것을 어딘가에 기록하고 싶은 마음과 모두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 그 중간에서 비롯된 행동일 것이다. 애당초 브런치 필명이 "구이년생 조대리" 로 해놔서 그런지, 이 필명을 그대로 두면 계속 조대리로 머물러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승진을 했으니 "구이년생 조과장"으로 바꿔야 하나...? 


아으 이건 스스로도 부르기 민망한 필명이다. 마치 나라는 사람은 지난 2년간 대리에서 과장으로 진급한 거 외에는 달라진 게 없다는 느낌이랄까. 도대체 나를 나타낼 수 있는 단어는 직위밖에 없는 건가? 아니 나는 창의적인 필명 짓기를 못하나? 구이년생을 그리 강조하고 싶느냐..? 이런 생각을 하니 약간의 현타가 왔다.


그래서 나름 꽤 오랜 시간 곰곰이 생각을 해봤다.. 필명도 찾아보고 브런치에 있는 작가님들은 어떤 필명을 쓰나. 어떤 필명이 멋있나 검색도 해봤다. 


"영어 닉네임도 멋있어 보이는데 나도 영어로 써볼까? JO.. DJ?", 

"아니 애당초 내 본명도 괜찮지 않나?",

"친구들이 부른 별명 중 조금 산뜻한 별명이 없었나?..오리ㅅㄲ...이건 아닌데..."


이런 생각들을 하다가 문뜩 남들이 어떤 필명을 하는 게 뭐 중요한가 생각이 들었다. 아니 필명이 어찌 되었든 간에 내가 부끄럽지 않은 필명으로 해야 떳떳한 거 아닌가? 내가 부끄럽지 않은 필명이 뭐가 있을까. 그러다 내가 최근에 읽고 있는 박정민 배우의 "쓸 만한 인간"이라는 책이 눈에 들어왔다. 


2년 전 브런치를 처음 시작할 때도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책을 보다가 "구이년생 조대리" 라는 브런치 필명을 지었었다.  어떤 색도 입히지 않은 채 그냥 나라는 사람을 그대로 표현할 수 있는 필명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2년 후 난 또다시 유명 작가의 책 제목을 베껴쓰기로 한다...


"쓸 만한 조과장"


그냥 가끔 글 쓰고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 이제 조금은 사회에서 사람 구실도 하는 사람. 애쓰며 살지만 아직도 끊임없는 성장 지옥에서 만족을 찾지 못한 사람. 살고 싶은 이상과 눈앞에 현실 속에서 방황하고 있는 직장인. 나는 그런 사람이다. 그래도 좀 더 성장을 했으니 필명은 이렇게 바꿔보기로 한다.




설 연휴 전 승진 소식을 듣게 되었다. 사실 승진 소식을 알게 되었을 때는 기쁨보다는 안도감이 컸다. 물론 연차에 비해 빨리 승진 하기는 했지만 작년에는 승진하겠다는 마음을 가지며 회사를 출근했던 거 같다. 그러한 기대감으로 회사생활도 열심히 했을 터이니 기대감이 무너지는 것이 두려웠을 것이다.


승진을 하고 나서 좋은 점을 무엇보다 주변 사람들이 많이 기뻐해 준다는 것이다. 취업소식도 그렇지만 승진 소식도 당사자가 먼저 자랑하며 좋아하기는 어렵다. 모두가 같이 승진을 하는 구조도 아니고, 승진을 못한 동료들도 있기에, 조금은 마음을 누그러트리고 평소보다 좀 더 겸손하게 행동하는 게 좋다.


그래도 승진 소식을 듣고는 나와 함께 팀을 했던 동료들, 팀장님, 부장님들이 축하인사를 전해주었다. 앞으로 힘들겠지만 잘할 거라는 말과 역시 잘될 줄 알았다고 기뻐해 주는 말들을 받으며 내가 승진했구나 라는 걸 점차 실감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부모님과 여자 친구가 제일 많이 기뻐해 줘서 좋았다.


과거 한 선배들과 술을 마시며, "과거에 비해 젊은 세대들에게 승진이라는 요소가 직장생활에서 최우선 되지는 않아요"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는 윗 선배들과 나는 직장생활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였다. 내가 회사생활을 열심히 하는 건 "승진"만을 바라보며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말을 많은 회사 선배들 앞에서 안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이라고 해서 나와 정말 생각이 달랐을까?.. 선배들이라고 해서 승진만을 보고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이었을까.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그 상황에서 열심히 노력했을 뿐. 오히려 승진에 많은 가치를 부여하는 건 나이지 않았나 싶다.


승진도 했다고 많은 것이 달라지지는 않을 거라 생각한다. 이런 기대감을 버리는 것이 내 정신건강에도 좋을 거 같다는 생각이 크다. 여전히 어떻게 이런 생각을 가지며 회사를 다니지 하는 신인류(?)와 직장에서 하루 전투를 벌이고 야근하는 날도 있을 것이며... 순간순간 오는 퇴사 충동은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은 달라지지 않겠지만 스스로 마음가짐은 다르게 가져야 하지 않나 싶다.  승진하게 되면 직장에서 나에게 기대되는 모습도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승진하고 나서 오는 주변 직장동료들의 축하인사에 


"어휴 운이 좋았어요. 제가 벌써 과장이라니.. 낯설어요" 


라는 말을 전했었다. 어느 정도 겸손함을 갖춰야 한다는 의미와 정말 운도 작용했으니 쓰는 말이었는데, 그 내면에는 변화에 대한 불안감과 떠맡아야 하는 책임감에 대한 방어기제도 담겨있었던 거 같다. 그렇게 답변들을 하다 한 직장 동료로부터 들었던 말이 가슴속에 박혔다.


"ㅇㅇ씨 너무 부끄러워하지 마요. ㅇㅇ씨는 할만했어. 실력과 운 둘 다 갖추니까 된 거야."


부끄러워하지 말라는 얘기. 어쩌면 내게 필요했던 마음가짐이 아닌가 싶다. 


어차피 가야 할 곳이 가시덩굴이라면 잘 헤쳐나가면 된다. 안되면 안 되는 대로 또 길이 있고, 그 속에서 다시금 부딪치며 헤쳐나갈 역량을 갖추면 된다. 그렇게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직장인으로 조직에 기여하는 것이 승진한 사람이 가져야 할 마인드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렇게 조직이 부여한 직위에 호들갑 떨지 말고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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