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골이들은 평상시 생활에서도 다른 사람들보다 예민한 반응을 갖고 있다. 다 같이 먹었는데 나만배가 아프고, 옷을 툭툭 털었을 뿐인데 재채기를 한다. 그나마 친구들이나 가족들과의 상황이면 좀 낫다. 직장생활에선 더없이 곤혹스럽다.
여름이 막 시작될 무렵, 난 클라이언트와의 미팅에 갔다. 상대방 대표님과 우리 대표님까지 참석한 회의실에서 바로 내 머리 위로 강한 에어컨 바람이 쏟아졌다. 자리를 옮길 수도 없는 상황을 버티며 2시간을 있다 나왔다. 그날로 냉방병에 걸려 버렸고, 두 달 내내 장염-감기-소화불량이 저글링을 했다. 패딩을 입은 채로 혹서기를 보내는 나를 보며 회사 사람들도 에어컨을 마음껏 틀지 못했다.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여러 상황을 피하기도 힘들지만 나로 인한 동료들의 직, 간접 피해는 물론 나에게 쏟아지는 비난과 따가운 시선까지 감내해야 한다. ‘쟤 때문에 피곤하다’. 나도 내가 참 피곤하다. 그런데 내가 아프고 싶어 아프냐고.
옆에서 보내는 눈총을 받고 한 번쯤 해봤을 생각, 난 왜 이렇게 예민할까.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면 어떨까. 예민해서 큰 탈이 없는 거라고. 강이람 작가의 <아무튼 반려병>을 보면 1:29:300이라는 하인리히 법칙을 이야기하고 있다. 1번의 큰 병이 발생하기 전에 29번의 잔병이 생기고 300번의 사소한 징후가 있다고.
내 생각도 이와 비슷하다. 본인이 아주 건강하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느닷없이 중병에 걸리는 걸 자주 목격하곤 한다. 이들은 건강하기 때문에 300번 내외의 사소한 징후를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허약인들은 타고난 예민센서가 그걸 감지하고 큰 사고를 막아준다.
내 경우에는 어느 날, 눈에 이상한 감각이 느껴졌다. 정확히 표현하기 힘든 증상이었는데 오른쪽 눈이 좀 뻐근하면서 뿌옇게 흐려지는 느낌. 한나절이 지나도 나아지지 않아 병원을 찾았다. 동네 안과에서 기본 검진을 하더니 지금 빨리 큰 병원을 가보란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대학병원을 갔다. 결과는 녹내장 초기. 그런데 나의 빠른 발견으로 시신경이 거의 다치지 않은 상태였다. 녹내장은 아무 증상이 없어 알아차리기 힘들어 시신경이 많이 손상된 후에야 알게 되는데 어떻게 안 거냐며 의사 선생님이 신기해하셨다.
그렇다. 우리 허약인의 예민센서는 심각한 문제로 발전되는 위험을 미리 차단해 준다. 1년을 누워있어야 할 일을 열흘쯤으로 줄여준다고 할까. 적어도 병원에서 ‘어떻게 이렇게 될 때까지 놔뒀냐’는 소리를 듣진 않는다.
폐렴으로 갈 수 있는 걸 편도선이 부어 미연에 막아주고, 항생제 처방을 비타민으로 해결할 수도 있다. 그러니 내 예민함은 내 건강을 지켜주는 고마운 센서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