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ize가 아닌 Squeeze
과거는 거짓말이고 미래는 환상이며 오직 현재만이 존재한다. 어디선가 주워들은 말은 그 무렵 보았던 영화의 명대사와 겹쳐들렸다. Seize the day(현재에 충실해라).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명대사였다. 나는 이 말에 완전히 꽂힌 적이 있다. 누군가는 지금을 즐기라는 말로 해석하지만 나는 소중한 현재를 꽉 쥐고 물고 늘어지라는 말로 들렸다. 이 말대로 살면 나의 꿈을 이룰 것만 같았다.
나의 꿈, 그리고 나의 목표. 결론적으로 나의 독배는 이것들이었다. 나는 성공하고 싶었다. 큰 성과를 바랬고 백점 만점 중 천점을 맞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 욕심과 포부를 위해서라면 나는 남들보다 백배 천배 노력해야만 했다. 그래서 오직 지금 존재하는 현재에 충실하기 위해 모든 순간에 최선을 다했다. 열심히, 후회 없이, 남김 없이 모든 걸 쏟아내며 잠을 줄이고 쉬지 않았다. 명언을 마음에 새겼지만 그렇다고 과거와 미래에 대한 집착이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건 또 그것대로 고통스러워했다.
과거는 거짓말이 아닌 나를 자책하는 재료였다. 불과 몇 시간 전 게으른 나, 로기가 그렇게 멋져질 동안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나, 헛짓거리만 한 것 같은 나의 인생. 나의 과거가 미웠다. 그리고 그 시간들로 이루어진 현재의 나는 너무 부족했다. 어리석고 게으르고 못난 나를 타박하기에 과거를 돌아보는 게 제격이었다. 거짓말이기엔 생시라 나를 회초리질 하기 딱이었다. 나는 죄를 지은 사람이 되어 그 벌을 달고 겸허하게 받기로 했다. 또다른 내가 엄격한 선생이 되어 내 입에 죗값을 물렸다. 선생이라기엔 칭찬은 주지 않고 원색적인 비난으로 나를 꽂아버리는 일을 일삼았지만.
미래는 환상이라기엔 멀쩡히 살아있는 두려움이었다. 몇 십년 뒤 어떤 우주 속 잔뜩 망해버린 내가 무지막지하게 큰 이빨을 가진 괴물이 되어 이빨을 딱딱 부딪히며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 이빨은 매우 첨예하게 날카로워 본능적인 공포로 다가왔다. 딱 딱 소리가 알림 종처럼 들렸다. 끽 잘못하면 한가득 망해버릴 거라고, 그럼 저 이빨에 베어질 것이라고, 구멍이 뚫릴 거라고, 상상도 못한 고통을 느끼고 말거라고 울리는 경고였다. 그래서 크게 두려웠다.
과거를 쫓고 미래에 쫓기며 찰나의 현재를 살아오니 당연히 번아웃이 올 수 밖에 없었다. 원하는 이상과 미천한 현실의 괴리에서 겪는 고통에 내 몸과 정신이 나에게 살려달라고 외친 게 불안이고 우울이었다. 그걸 한참 뒤에야 깨닫고 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