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고등학생 때 언어영역이 가장 큰 약점이었다.
다른 과목들은 대부분 1등급에 무난히 들었는데, 언어영역만큼은 아무리 공부해도 항상 1등급 제일 밑과 2등급 윗부분을 왔다 갔다 했다.
가장 큰 불만은 항상 답이 두 개 이상으로 느껴졌다는 점이다.
기본적으로 문제풀이식 해설에 불만이 많았다. 답을 보고 해설을 들어도 납득이 가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는 말이다.
예컨대, 한용운 선생님의 님의 침묵을 놓고 사랑의 이야기인 듯 썼지만 사실 잃어버린 조국에 대한 이야기다, 라는 설명을 들을 때면 "누가 물어봤나?"라는 생각이 끊임없이 드는 타입이었다. "만약에 한용운 님이 하늘에서 보고 비웃고 있으면 어쩌지? '저거 그냥 사랑 노랜데 뭔 소리냐' 하면 어쩔 거지?" 뭐 이런 생각들...
아무튼, 그런 식으로 문제를 잘 못 푸는 걸 넘어서서 설명해주는 내용 자체에 불만이 많았던 타입인데, 큰 불만 중 하나였던 것이 피장파장의 오류에 대해서이다.
기억이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소설 봄봄에서 사위와 장인이 싸우는 대사에서 피장파장의 오류를 처음 배웠던 것 같다. 정확히 기억은 안나도 한 명이 다른 한 명을 지적하니 지적받는 사람이 "그럼 너는?" 뭐 이런 식의 대사에 대해서 밑줄 긋고 피장파장의 오류라고 배웠던 것 같다.
그래서 피장파장의 오류가 무엇인고 하니, 비록 내가 어제 사과를 훔치고 오늘 너에게 사과를 훔치지 말라고 말한다 하더라도, 네가 나한테 "너나 잘하세요"라고 말하는 것을 일컫는 것이다.
비록 말하는 내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고 할 지라도, 내가 하는 말의 내용이 논리적으로 틀린 것은 아니다. 죄인이 남의 죄를 나무란다고 '죄인 주제에 말은 잘하네'라고 말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는 이야기이다.
어렸을 때는 무슨 dog 소리인가 했다. 말하는 사람이 말할 자격이 있느냐 없느냐는 그 사람의 말을 판단하는데에 굉장히 중요한 기준인데 어째서 저게 논리적 오류라는거지? 저건 본능적인 반응 아닌가? 하는 식으로 아예 피장파장의 오류 자체를 인정을 못했던 것 같다. 어떻게 저렇게 당연한 것을 오류라고 할 수 있지? 말장난 아닌가?라는 류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제사 생각해보니, 논리라는 것과 설득력이라는 것을 동일시했기 때문에 생겼던 문제이지 않나 싶다. 논리적인 것이라고 해서 다 설득력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만 알았어도 논리는 논리고 dog소리는 dog소리다라고 쉽게 이해했을 텐데...
아무튼, 언젠가부터 인터넷 댓글에 "팩트"라느니, "논리"가 어쩌구, "증거"가 어쩌구 등등의 표현이 난무하게 되면서 논리적인 것 = 설득력이 있는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같다.
아니, 아마도 논리적인 것을 수용하지 않는 사람 = 잘못된 사람, 이라는 분위기가 팽배한 것 같다.
생각보다 논리성과 설득력 사이에 간극이 있다.
설득력이 있으려면 말하는 톤도 중요하고, 욕을 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고, 당연히 논리도 중요하다.
그렇지만 논리적인 표현이라고 해서 모두 설득력이 있지는 않다.
이 부분이 인터넷 세상에 좀 더 통용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