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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위 Mar 24. 2023

함께 침묵하는 친구

친구를 잃다

니체는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에서 진정한 우정을 나누는 모습에 대해 이렇게 썼다.


함께 침묵하는 것은 멋진 일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멋진 일은 함께 웃는 것이다.

두 사람 이상이 함께 똑같은 일을 경험하고 감동하며,

울고 웃으면서 같은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너무도 멋진 일이다.


당신은 함께 침묵하고 함께 웃을 수 있는 친구가 있는가?

그런 친구를 얻을 수 없다면 무소의 뿔처럼 혼자 살아갈 수 있는가?

니체가 권하듯이, 당신이 먼저 누군가의 진정한 친구가 되어 그의 삶을 함께 밝히는 동반자로 걸어갈 수 있겠는가?

니체의 충고를 읽으며 진정한 친구의 의미에 대해 성찰해 보기 바란다.


출처   곁에 두고 읽는 니체, 사이토 다카시



원작  Boyana Petkova,  모작 무아





우리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친구'라는 이름으로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나왔다. 그런데 니체의 말처럼

'함께 침묵하고 함께 웃고 함께 울 수 있는 친구'는 몇이나 될까? 40년이 넘는 세월을 살았건만 이런 친구가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이 왠지 씁쓸하다.


내겐 찬란한 태양처럼 눈부시게 빛나던 친구 하나가 있다. 교실 한가득 오후의 햇살이 환하게 비쳐들던 어느 날, 친구는 은빛 플루트 하나를 가방에서 꺼내더니 우리에게 연주해 주었다. 나는 햇빛이 플루트에 부딪힐 때마다 눈부시게 반짝이며 흩어지는 빛의 포말을 그저 넋 놓고 바라보기만 했었다. 그때의 장면은 영원히 내 머릿속에 한 장의 사진으로 찍혀 절대로 잊히질 않는다.


'은으로 된 플루트를 부는 아이'


그것 하나만으로도 그 친구는 모든 아이들의 동경의 대상이었다. 지금이야 플루트를 부는 여고생이 특별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30년 전 플루트는 쉽게 구경하기도 힘든 악기였다. 가난한 집안의 평범한 여고생이었던 나는 그 친구에게 질투심조차 느끼지 않았다. 그저 나와는 다른 세계에서 온 특별한 존재로만 보였으니까.


그 친구는 태생부터 남달랐다. 부모님 두 분이 해외 유학을 하던 시절에 낳은 아이라고 했다. 어린 시절을 미국인가 캐나다에서 살다 와서 영어를 모국어처럼 듣고 말할 수 있었다. 영어 듣기 평가 시험을 보는 날이면 모든 아이들이 그 친구 책상으로 모여들었다. 답을 맞혀 보기 위해서. 우리에겐 답안지가 필요 없었다. 그 친구가 쓴 답이 정답일 테니까...


외모도 평범하지 않았다. 수영이 취미여서 어깨가 많이 벌어진 데다가 남자처럼 짧은 커트 머리를 하고 다녔다. 요즘으로 치자면 중성적인 느낌의 아이돌 같다고 해야 할까? 얼굴은 예쁘장했지만 전체적인 이미지는 남성적이어서 여자애들한테 인기가 어마어마했다. 게다가 히피처럼 머리에 두건을 쓰고 다녔다. 당시 학교의 머리 규정에는 머리카락 길이 제한만 있었지 두건을 쓰면 안 된다는 것은 없었다.

공부도 잘하고 집안도 좋은 학생의 독특한 패션이라 그랬는지 그 친구 스타일에 제동을 거는 교사들은 아무도 없었다. 그야말로 독보적인 존재감을 지닌 친구였던 것이다. 이렇다 보니 수많은 여자애들의 선물과 편지 공세를 받았는데, 정작 당사자는 많이 괴로워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적어도 내 기억 속의 친구는 외모와 달리 무척 여성스럽고 여린 아이였기 때문에 자기를 좋아하는 여자애들의 고백을 불편해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친구와 내가 절친이었다. 어떻게 해서 둘이 친구가 되었는지 기억조차 잘 나지 않는다. 모든 외적 배경을 걷어내고 만난 순수한 학창 시절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이 아닐까 싶다. 고등학교 3년 내내 친구로 지내면서 고교 시절의 모든 것을 함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우리는 미래에 대해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좋아하는 영화, 음악, 책을 공유하는 영혼의 단짝이었다. 자율학습 시간에 선생님께 거짓말을 하고 도망쳐서는  '패왕별희'를 보러 간 것도 이 친구와 단둘이었다. 감동적인 영화를 보면 몇 날 며칠을 후유증으로 가슴 앓이 하는 것도 둘이 똑같았다.


그런 우리 둘이 종종 하던 놀이가 있었는데 그게 바로 '침묵 놀이'였다. 뭘 알고 그랬는지 어디서 들은 걸 흉내 낸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우리는 진짜 친구라는 증명을 하기 위해 일종의 의식을 치르듯 침묵 놀이를 했었다. 아무 말 없이 오랜 시간 한 공간에 둘이 함께 있는 게 바로 침묵 놀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말했다.


"너랑은 아무 말 없이 함께 있어도 참 편안하고 좋아.

이런 게 진짜 친구 같아."


하지만 그 친구는 역시나 나와는 다른 세계의 존재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곧장 캐나다로 유학을 갔고, 그 이후엔 미국에서 두 번째 대학을 다니고 학위를 받는다고 했다. 캐나다에 정착해 결혼했다는 소식을 들었던 것을 마지막으로 우리의 연락은 끊겼다. 지금처럼 외국에 사는 사람과의 연락이 자유롭지 못하던 시절이라 더 그랬을 것이다. 아니다. 그건 핑계다. 실은 나와는 너무 다른 세계에 속해 있는 친구에게서 더 이상 교집합을 찾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수년 후 학생이라는 옷을 벗고 다시 만난 우리 둘은 이미 너무나 낯선 사람들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이 친구를 떠올리면 가슴 한 쪽이 아려온다. 내게 짙은 그리움이 된 친구. 빨강 머리 앤을 닮고 싶어 하던 순수하고 꿈 많던 시절, 나를 기꺼이 '앤'이라고 불러주며 고운 손 편지를 써주던 그 친구의 환한 미소가 눈물 나게 보고 싶다.



나는 그 친구를 여전히 사랑한다. 내 인생의 한 부분을 진정한 우정으로 가득 채워 준 그 친구에게 진심으로 고맙다. 남은 삶에서 그 친구의 얼굴을 한 번이라도 볼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함께 침묵하고 함께 웃고 함께 감동하고 함께 울었던 수많은 추억들은 죽을 때까지 잊지 않을 것이다.


영원한 친구는 없다. 하지만 추억은 영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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