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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위 May 09. 2024

무턱대고, 가볼 수도 있는 거야.

때때로 삶은 폭주한다. 살아내기 위해서...

무턱대고

 - 잘 헤아려 보지도 아니하고 마구.


 그즈음 그녀는 삶이 허무했다. 미치도록 허무해서 지금까지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버리지 않고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냥 죽을래? 다시 살래? 극단적인 두 물음표를 양손에 쥐고서 그녀는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기어이 넘어가야만 하는 가혹한 운명의 허들 앞에 놓인 순간이다. 무언가에 홀린 듯 '무턱대고' 메일을 보냈다. 그곳엔 그녀를 구원해 줄 무언가가 반드시 있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녀는 응답을 받았다. 아니 받았다고 믿었다. 놀랍게도 그 수녀원은 자신이 다니던 중학교 바로 옆에 있었다. 긴 세월을 지나다니는 동안 어째서 그곳에 수녀원이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던 것일까?


 그 길을 걸어 다니던 중학생 시절의 자신을 떠올리자 그녀는 모든 게 애초부터 정해져 있던 운명인 것처럼 여겨졌다. 사람들은 진짜 사랑을 바로 옆에 두고도 깜깜하게 몰라보기도 하지 않던가? 사는 동안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그곳에 오래전부터  수녀회가 터를 잡고 있었다는 사실은 왠지 모르게 그녀의 가슴을 저릿하게 했다. 먼 길을 돌고 돌아 다시 만난 운명의 연인을 마주하기라 것처럼. 이제 그녀의 모든 삶은 오직 단 하나의 길로만 이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들리지 않았다. 그냥 죽을래? 다시 살래? 의 물음표 중 하나를 멀리 집어던져 버렸다. 그리고 그녀는 다시 살기 위해 수녀회로 통하는 그 문을 '무턱대고' 두드렸던 것이다. 서른두 살의 어느 초여름에.


 그녀가 '무턱대고' 수녀가 되겠다고 했을 때, 수녀님들은 환대했고 지인들은 당황했고 가족들은 절망했다. 그리고 그녀 자신은? 사실 미치도록 기뻤고 가슴이 벅차올랐다. 이따금 숨을 쉴 수도 없이 슬픔이 밀려오기도 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런 양가감정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그녀는 서른두 살까지의 삶을 벗어던지고 완벽히 새로 태어나려고 는 중이었으니까. 나비가 되기 위한 우화는 감당할 수 없는 고통과 인내를 수반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는 '무턱대고' 전진할 수 있었다. 

 

 무턱대고, 가볼 수도 있는 거야.

 때때로 삶은 폭주한다.

 그것이 잘못일까?




 출발선에서 박차고 뛰쳐나간 앞만 보고 내달릴 수밖에 없었다. 일사천리로 학교에 의원면직 신청을 했고 속세의 삶과 관련되어 있던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남김없이 정리해 나갔다. 내 길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부모님도 친구도 나 자신조차도. 그다지 두렵거나 힘들지 않았고 의심을 품지도 않았다. 몸뚱이 하나만 남기고 생의 흔적들을 모두 지워 없애 오히려 한없이 홀가분한 마음이 되었다. 어쩌면 가진 게 별로 없어서 내려놓기도 한결 쉬웠을지 모르겠다. 그때의 나는 '무턱대고' 폭주하는 굶주린 맹수였고, 뚜렷한 표적도 없이 '무턱대고' 쏘아 올려진 화살이었다.


 하지만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일은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는 법이다. 다시 시작하기 위해서는 모든 걸 원점으로 되돌려야만 하니까.  삶은 그다지 많은 기회를 주지 않으며 생각처럼 호락호락하지도 다. 돌이킬 수 없다는 말은 육신의 죽음에만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온 생을 통해 깨우칠 수밖에 없었다. 나에게 수도 성소가 있다고 믿었던 확신의 불길이 주변의 모든 것들을 활활 불태워 버리고 난 후, 잿더미 위에 서서 나는 불현듯 깨달았다. 가슴속에 더이상 아무런  온기도 남아 있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사라진 불씨와 함께  완전히 텅 비어버리고 말았다는 것을. 순간 나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이후로 나는 신과 나 자신 휘두르는 잔인한 회초리를 맞아가면서 '무턱대고'의 죗값을 치러야 했다.


 사람이 살면서 무턱대고 하는 일들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살고자 하는 마음이 큰 사람이라면 절대로 자기 인생을 그렇게 '무턱대고'의 궁지 속으로 밀어 넣지는 않을 것이다.  그때의 나는 내가 하는 모든 행동들이 제대로 살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믿었다. 하지만 실은 철저히 죽기 위한 광기 섞인 도발에 불과했던 것이. 육신을 차마 죽이지 못했기에 육신 이외의 모든 것들을 말살시키려 했었다. 그것은 기나긴 세월이 지난 후에야 조금씩  안에서 선명해진 깨달음이었다.


 그런데 절대로 후회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때의 '무턱대고'에 감사하면서 살았다. 나의 두려움이 혹은 비겁함이 그런 식으로라도 나 자신을 속여서 죽지 않고 살아남게 했다것에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했다.  '무턱대고'의 질주 통해 꿈꾸던 수녀가 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나는 '진짜 나'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무턱대고'인 순간들은 찾아올 것이다. 자신의 삶이 무언가를 향해 뚜렷한 이유도 없이 폭주하는 시기 말이다. 그게 어떤 모습으로 언제 어떻게 찾아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것은 지금까지의 삶을 완전히 뒤집을 정도의 충격적인 '무턱대고'일 수도 있고, 소소한 변화를 일으킬 정도의 별거 아닌 '무턱대고'일 수도 . 하지만 어떤 경우라도 잘못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삶을 무책임하게 유기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눈을 가리고 '무턱대고' 덤벼들어야 할 만큼 절박한 무언가가 내 앞에 있다면, 그것은 적어도 기 위한 최후의 선택이자 보루였을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무턱대고, 가볼 수도 있는 거야.

 때때로 삶은 폭주한다.

 살아내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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