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딩동
그가 누르는 게 확실한 그 벨소리에 침대에 붙어있던 몸을 일으켜 현관 앞으로 나선다. 오늘따라 현관에 있는 자동등 센서가 왜 이렇게도 야속한지 모르겠다. 그냥 너무 부끄러워 불을 켜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왔어요?'
'응~ 차가 하나도 안 막히더라고요.
어머님댁에서 30분도 안 걸렸어요.'
'다행이다~‘
그러고 나서는 더 이상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부끄럽기도 하고 조금 머뭇거리고 있는 찰나에 준영씨가 먼저 입술을 뗀다.
'고마워요. 오라고 말해줘서.
너무 보고 싶었는데.'
모든 것이 너무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그와의 첫 키스.
다정하게 나를 바라봐주는 그의 얼굴과 그의 표정이 너무 사랑스럽다. 이렇게 따스한 눈길을 받아본 것이 얼마만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나를 이렇게 온몸으로 사랑해 주는 이 사람과 함께 있는 지금의 순간이 너무나 찬란하게 소중한 기분이다.
공기의 흐름이 느려진 느낌.
서로를 배려하고 아껴주는 마음이 가득한 지금.
언젠가 친구 중에 누군가 내게 말했었다. 침대에서는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는 그런 사람을 만나야 한다고 했다. 다정하고 야한 사람이 최고의 남친 덕목이라며 말하며 깔깔 웃었던 모습이 지금 어렴풋이 희미하게 기억이 나는 건 왜일까.
그런 사람 같다.
다정하고 나에게만 야한 사람.
준영씨와 함께 있는 시간이 너무 소중하지만 중간에 이현이가 깰 수도 있다. 아마 준영씨는 적어도 몇 시간 후에 다시 어머님댁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잠에서 깬 이현이가 항상 곁에 있던 아빠를 찾을 수 있으니 말이다. 물론 집에는 할머니가 계시겠지만 아빠가 없다는 건 그것과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초등학교 3학년은 아직은 많이 어린 나이다.
두렵고, 무서울 것이 참으로 많은 나이.
나는 종종 어릴 적 나를 떠올렸고 그럴 때마다 이현이에게 마음이 많이 쓰였다.
그 작고 작은 꼬마 아이에게 자연스레 감정이입이 되곤 했다.
나도 마찬가지로 참 무서움이 많은 소녀였다. 어둠이 내려오면 귀신과 저승사자 같은 것들이 내 방에 나타날 것만 같았고 이런 두려움에 종종 가위도 눌리고 했다.
어린 나는 가위에 눌린 그 느낌이 너무 끔찍하게도 싫었다. 항상 가위가 곧 눌리겠구나.. 하는 전조 증상 같은 것이 있다. 증상이 보일 때는 의식이 살짝 있으나 차오르는 졸음이 의식을 방해하여 결국 잠에 빠져 들고 만다. 가위에 눌리면 나는 항상 벌떡 일어나 방의 불을 켜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도무지 움직이지 않는 내 손과 발에 내 정신은 그대로 묶여있곤 했다.
어린 나는 그 밤 내내 귀신을 보지 않으려 눈을 감았고, 이상한 소리를 듣지 않으려 속으로 끊임없이 노래를 불렀다. 여린 나는 묶인 자리에서 안간힘을 쓰며 노력했다. 그렇게 한참의 사투를 벌이고 나면 손끝 발끝부터 천천히 가위가 풀렸다. 그제야 말초신경까지 제대로 피가 도는 것처럼.
나는 잠에서 깰 때마다 옆에서 곤히 자고 있는 언니의 손을 잡거나 잠에서 뒤척이는 척하며 발 끝을 언니에게 살짝 가져다 댔다.
내 옆에 언니가 있다. 나는 다시 잠을 잘 수 있다. 나는 무섭지 않다. 이런 말을 속으로 읊조리곤 했다.
상상하는 것을 좋아했던 어린 나는 어둠이 너무나도 무서웠다.
'세연씨, 계속 같이 있고 싶은데 이제 슬슬 가야겠어요.
이현이 깨기 전에 집에 도착해야 할 것 같아요.‘
잘 알고 있다. 우리는 앞으로도 짧은 시간의 공간 안에서 사랑해야 한다는 걸 말이다.
타임어택.
그와 나의 시간은 앞으로도 충분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