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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레니 Aug 24. 2023

아기와 엄마 몸은 블록 같아

  살다 보면 잘 잊히지 않는 말들이 있다. 어딘가에서 읽었거나 들은 그 말들은 시간이 지나도 문득문득 생각이 나고, 어떤 상황을 만나면 그 말을 떠올리게 되기도 한다. 그런 말들 중에 요즘 종종 생각나는 말이 있다. "아기와 엄마 몸은 블록 같아." 출산 후 나를 도와주신 산후도우미 선생님의 말씀이었다.




  운이 좋게도 나는 좋은 분을 만나 첫째와 둘째의 출산 후 그 선생님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나는 이모님이라는 말보다는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좋았다. 이모님이 정겹기도 하지만 배우는 것이 많으니 선생님이라는 말이 더 맞는 것 같았다. 친정엄마께서도 틈나는 대로 이것저것 가르쳐주셨지만 직장을 다니시기에 시간이 많지 않으셨다. 신생아 돌보기 전문가인 선생님께서는 아기 재우기, 목욕시키기 등 초보 엄마에게 필요한 것들을 자세히 가르쳐주셨다.


  그중에서도 가장 고마운 부분은 선생님이 아기를 대하는 모습을 옆에서 보며 배운 것들이었다. 아기에게 진심으로 사랑을 준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것은 아기와의 대화에서 알 수 있었다. 평소 선생님께서 나와 함께 계실 때는 수다스러우신  아니었지만 아기에게만큼은 푸근하고 편안한 목소리로 끊임없이 말을 걸어주셨다.


  칭얼거리는 아기를 안아 올릴 때는  "~ 졸려? 안아줄게~"라고 먼저 말씀하신  안아주셨고, 목욕을 시킬 때도 끊임없이 아이에게 이야기를 하셨다. 처음에는 "이제 목욕할 거야. 여기 물소리 들리지?”라고 하시며 물의 찰랑거리는 소리부터 들려주셨다. 그러고는 목욕 내내 말씀을 멈추지 않으셨다. “머리부터 감자. 어이구~ 개운하지? 다했다! 이제 발부터 들어가 보자. 따뜻하지? 손도 씻고, 세수도 하고~ 좋지? 이제  끝났다! 춥지? 얼른 로션 바르고 옷입자~” 아기에게 건네는 선생님의 말은  때도 끊임이 없었다. 모유 수유를 했던 나는 수유 중에 TV 보곤 했는데 그러면 선생님께서는 하던 일을 마치시고 잠시 앉아 함께 TV 보셨다. 그리고 그때마다 아기를 보시며 말씀하셨다. " 먹네. 꿀떡꿀떡  넘어간다~"


  그때까지는 대답을 기대하기는커녕  말을 이해하는지조차   없는 아기에게 그렇게 말을 걸어줘야 한다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어느샌가 선생님께서 아기에게 하는 말들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것이 그저 혼잣말이 아니구나 싶었다. 그것은 아기에게  필요한 세상과의 대화. 이것은 세 아이를 키우며 늘 기억하려고 애썼던 것들  하나이다. 선생님은 정말 중요한 것을 가르쳐주신 것이다.


  시부모님께서는  손주를 안으신 기쁨과 함께 며느리가 건강하게 몸조리하기를 바라시는 마음으로 산후조리 비용을 넉넉히 지원해 주셨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감사하다.  덕분에 나는 첫째의  날까지 선생님과 함께   있었다. 그때는 지금과 달리 산후도우미 선생님들께서 토요일 오전까지 출근해 주시는 시기였는데 아기의 일이 토요일이었다. 선생님께서는 케이크는 사지 말라고 하시며, 직접 유명 배이커리에서 주문하여 시간에 맞게 배달시켜 주셨다. 그리고  달간 정든 아기와의 헤어짐에 서운한 마음을 드러내는 대신 평소처럼 아기를 대하셨다. 나와 남편이 일상을 준비하는 동안 아기에게 목욕을 꼼꼼하게 시켜주시고, 정성스럽게 옷도 입혀주시며 멋지다는 칭찬을 잊지 않으셨다. 아기에게 벌써 백일이 되었다는 말씀을 해주시며 바라보는 눈길은 평소와 같이 따뜻하셨지만 아쉬움이 가득했다. 그런 선생님께 조심스럽게 같이 점심이라도 드시고 가시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하지만 가족들이 좋은 시간 보내라며 눈물이 글썽거리는 눈을 보여주지 않으시려는  서둘러 현관문을 닫고 집을 나서셨다.


  그 후로 나와 아기는 둘이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지만 어떤 일들을 할 때마다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리고 함께 나눈 대화들이 떠올랐다. 나와 그리고 아기와 헤어지는 날이 다가올 때쯤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었다.

  "아기와 엄마 몸은 블록 같아. 이렇게 품에 안으면 블록 끼워지듯이 딱 맞춰지잖아."

  "그러네요."

  "그러니까 아기 낮잠 잘 때 엄마 옆에 딱 끼고 같이 자요. 그러면 아기도 오래 자고 그래야 엄마도 쉴 수 있지."

  "네."

  선생님께서 계시지 않으면 혼자서 아기와 씨름할 내가 걱정스러운 마음에 하신 말씀이었다. 그리고 그 대화는 오래도록 아기와 낮잠을 잘 때마다 생각났다. 아기를 내 옆에 붙여두고 팔베개를 해주며 같이 잠을 청할 때마다 우리 두 사람이 딱 들어맞는 느낌이 사랑스러웠다.




  막내도  돌이 훌쩍 넘은 시기인데 요즘따라  말이 부쩍 생각나는 것은  느낌이 그리워서일 것이다. 초등학교에 들어가 제법 길쭉해진 첫째와 둘째는 이제  품에 감싸 안기에는 많이 크다. 팔베개를 해주면 발이  발보다 아래에  있거나 나란히 있는  아이를 보며 생각한다. ' 아이들이 자라면  품을 떠나는 날이 오겠지. 그래도 멋있게 아이들의 독립을 축하해 주는 엄마가 되어주어야 .' 어쩌면 이것은 생각이라기보다는 다짐에 가깝다고  수도 있겠다. 아직 어리게만 느껴지는 지금도 아이들은 함께 맞추는 사랑스러운 모양을 벗어나 자신만의 모양을 만들어보려 시도하는데 시간이 지나면  그렇겠지 싶다. 벌써부터 아쉽고 서운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아직까지는 나와 합쳐져 수월하게 모양을 맞추는 막내를 보듬는다.  가슴에  안기고,  달라붙듯이  목에 팔을 두르는 아이를  안아본다. 하지만 쑥쑥 자라나는 아이의 키를 재며, 다양한 표정과 단어들로 자신을 표현하는 모습을 발견하며, 점점  깊고 풍부해지는 아이의 세계를 느낀다. 빨리 자라는 아이들의 모습에 조금은 쓸쓸한 마음도 든다. 하지만 동시에 느껴지는 놀라움과 대견함도 크다.


  시간이 지나 우리 서로 안아보자 하면 뚝딱거리게 되고 어색해지는 시기가  수도 있다.  맞는 블록 조각들처럼, 아기 때처럼 언제까지나  아이들을  품에  끼울 수는 없게  것이다. 엄마의 욕심으로  시기를 조금  늦추고 싶어 아이들이 안아달라고 하면 최대한 많이 안아주고 사랑한다고 말해주지만 결국은  품을 떠나 자신만의 멋진 삶을 완성할 아이들이라는 것을 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기와 엄마의 관계를 블록에 비유한 선생님의 말씀이 가슴에 와닿는다. 서로에게 딱 맞던 블록들 그리고 그중 하나가 새로운 자리를 찾아 떠나면 남겨질 빈칸.

   세상에 태어나고 얼마  되었을 때는 나에게만  맞는 블록 같던 아기가 자라면서 점점  자신에게  맞고,  어울리는 블록들을 찾아낼 것이다. 그리고 자신만의 작품들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 내가 그런 것처럼. 러면 나도   곳을 채우기 위한 노력을 나름대로 해나가야 함을, 그 시기가 조금씩 다가오고 있음을 안다. 그때가 오면 그동안 잊고 있던 블록들을 다시 살펴보거나, 새로운 블록들을  찾아내야  것이다. 글을 쓰다 보니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다른 블록들도 소중히 품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중에 아이들이 있던 자리가 비어도 다시 나만의 작품을 멋지게 완성할  있도록  블록들 차곡차곡 쌓아두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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