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내 마음속엔 얇은 여름 이불 같은 것이 하나 생겼다. 내면의 날카로운 표면을 살포시 덮고 있어 얼핏 본 내 마음은 아주 포근한 침대 같으니 그 위에서 누가 뛰어놀아도 다치지 않을 것만 같았다. 나는 이 이불을 세로토닌이 만들어 주었다고 생각했다. 달리기를 시작하면서부터 안정적으로 분비되기 시작한 이 호르몬이 한 겹이불을 지어 거친 나의 마음을 고요히 덮어주고 있다고.
처음부터 거기에 이불이 있다는 것을 알지는 못했다. 꾸준히, 절실히 해 온 내면을 비춰보는 작업을 통해 마침내 그 날카로움이 조금씩 다듬어지기 시작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그게 단지 무언가로 덮여 있을 뿐이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땐, 그럼 그렇지 하는 생각에 당연스레 좀 서글퍼졌다.
이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계기는 이랬다. 나는 엄마에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세상에 만만한 사람이라곤 엄마밖에 없다지만(내 목숨을 내어줄 수 있는 사람도 엄마뿐이고) 그 누구에게라도 이렇게 소리를 지르면 안 되지 않을까 싶을 만큼. 그러나 나는 그 순간 엄마에게 미안하지조차 않았다. 누군가에게 조금만 상처를 주어도 당연스레 날 잠식해 오던 죄책감마저 들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나는 나의 표정과 태도에서 고양된 무언가를 느끼기 시작했다. 조금만 즐거워도, 조금만 설레어도, 조금만 감동받아도 그 감정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애썼다. 언제부턴가 과거를 돌아보는 것도 미래를 상상하는 것도 너무 괴로워졌기에 나는 한 번도 해보지 못했던 현재에 머물기를 조금씩 연습하고 있었고, 현재가 전부라고 여기고 있는 한, 단 한순간의 무너짐도 내겐 치명적일 수 있었다. 그러나 한 순간 극단적으로 고양될 수 있다면 그 힘으로 나머지 현재를 위안삼을 수도 있었다. 그 순간 우연히 모든 것으로부터의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반대의 경우도 비슷했다. 조금만 빗나가도, 조그만 오해가 생겨 불안한 감정이 일어나도, 당장 죽는 것 외에는 이 상황을 벗어날 방법이 없다고 느꼈다. 그 느낌은 머리가 아닌 마음속 깊은 어딘가로부터 일던 것이었는데, 당장 이 순간에서 나를 구출해 내라고 온 힘을 다해 외치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나는 엄마에게 말했다. 나는 남긴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고. 나는 이미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고. 미친 듯이 소릴 지르다 이젠 그저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는 내게 당황한 엄마는 겁에 질린 눈으로 아니라며 날 안아주었다. 나는 구름처럼 자유롭게 떠다니는 나의 삶이 좋았지만 그와는 별개로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그저 산산이 흩어져 자취를 감추는 그 속성이 두려웠다. 나는 나무가 되어 한 곳에 정착하는 삶을 단 한 순간도 꿈꾸어 본 적이 없지만 그와는 별개로 뿌리를 깊게 내리고 나의 존재를 온전히 녹여내는 그 속성이 부러웠다. 구름처럼 살아도 존재를 온전히 하는 이들이 많지만 나는 그럴 위인이 되지 못했다(산만했고, 거만했고, 노력도 부족했다). 좌절은 때때로 극단적인 불안이 되어 아프게 피치를 올렸다.
그 순간이었다. 나는 사정없이 펄럭이며 젖혀진 내 마음속 이불을 발견했다. 날카롭고 거칠게 그대로 남아있었던 나의 마음을 다시 보았다.
서울로 방을 옮겼지만 본가에도 내가 쓰던 방에 나의 짐들이 거의 그대로 남아 있었는데, 엄마가 나의 서랍들을 나름대로 정리하고 곰팡이가 쓴 물건들을 버린 것이 사실 이 사단이 났던 이유였다. 나는 기억도 물건도 눈에 보이지 않으면 그런 게 있었는지 조차 잘 모르는 사람이라 여행하면서도 그게 나를 불안하게 했던 적이 많았다(중요한 무언가를 잃어버린지도 모르다 나중에 알곤 했다). 잃어버려도 잊어버려도, 잃었는지 잊었는지조차 잘 모르는 그런 나의 속성, 그게 그나마 있던 나의 가늘고 약한 뿌리조차 사정없이 흔든다고 종종 느끼곤 했다.
그런데 엄마가 서랍들을 뒤집어 버릴 것들을 버리고 깔끔한 것들만 남겨 분류해 정리해 두자, 나는 누군가 나의 존재를 흔들어 털어버리고 쓸모 있어 보이는 것들만 남겨놓은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러나 나의 정체성은, 기억들은 거기에 있지 않았다. 나는 그런 매 순간마다 희석되어 사라지고 있었다. 나는 그저 없는 게 더 완전할지도 몰랐다.
어쩌면 자연스러운 느낌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사기를 당하시고 오랫동안 힘들던 시절에 우리는 단칸방에 살며 이삿짐 보관료를 내지 못해 모든 짐과 추억을 잃었다. 어린 시절의 일기나 사진은 물론이고, 수많은 책들과 성인이 된 후의 틈틈한 기록들, 컴퓨터를 비롯해 나와 우리의 과거는 산산이, 무가치하게 흩어졌다. 소시지 하나를 못 사 먹고 아끼며 처절하게 번 돈을 무의미하게 잃던 것과는 또 다른 차원의 상실감이었는데, 일종의 수치심에 가깝기도 해서 우린 애써 그 기억을 잊고 살았다.
아프리카에서 지내며, 세계를 여행하면서는 강도를 여러 번, 숙소가 털린 적도 여러 번, 성추행은 일상, 납치를 당할 뻔한 적도, 무기를 들고 쫓아오는 이들을 길 하나를 두고 피해 달아난 적도 있었다. 익숙하게 계속 반복되는 얕고 깊은 위협들은 나도 모르게 나를 조금씩 주저앉혀왔다.
그러니 남긴 것이 없다는 익숙한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것도, 그렇게 모든 순간을 잡아두어야 한다는 강박에 지배당한 것도, 낯설고 예기치 못한 접근을 그 크기와는 상관없이 내 존재에 대한 공격이라 느끼는 것도, 그렇게 강박적인 불안을 주체하지 못하게 된 것도, 어쩌면 그저 자연스러운 것인지도 모른다.
내게 여름 이불이 나도 모른 새 생겨나 내 이 마음을 아무렇지 않게 덮어주고 있었던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