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물 안 묻히게 해 줄게"라던 그 흔하디 흔한 말. 거짓말이나 다름없는 진부한 개수작.
설거지 한 번 관심 있게 도와주지 않는 사람이 그래도 자기가 뱉은 말의 씨를 기억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상하 함께 가전 교체를 라면서 남편은 로봇청소기를 들여주었다. 설거지 눈치 주지 말라며 식기세척기를 넣자고 해도 그간 내가 반대했었다. 그러다 이번엔 남편이 하자는 대로 했다. 식기세척기는 처음에 들여야지 안 그러면 주방 구조를 바꿔야 해서 중간에 들이기는 곤란하다는말에 못 이기는 척 넘어갔다.
청소에 대한 강박이 있던 친정아버지. 그 영향력은 내게 차라리 좀 지저분해도 맘 편히 살자는 길을 택하게 했다. 아래 여동생은 아빠처럼 지저분한 걸 못 견뎌하지만. 여하튼 나는 청소에 게으른 편이다. 오십이 다 된 주부가 깔끔하게 살림살이 정리며 집 청소가 매우 서툴다. 꼼꼼하지도 못하고. 로봇은 나 보다 낫다. 나름 '꼼꼼 청소'란 것도 할 줄 안다. 어떤 날은 같이 살림하는 사람으로 그 마음 알기에 특별히 '지그재그 청소'로 일을 줄여주는 아량을 베풀기도 한다.
설 명절 연휴를 마치고 새 한주를 시작하며 오늘도
청소기를 돌리는데 문득 20년 전의 남편의 말이 퍼뜩 떠올라 피식 웃었다.
남편은 얼마 전 집들이에서 친정 엄마한테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 봄이 막내인 저한테 시집간다고 걱정 많으셨죠? 저희 부모님이 워낙 열로 하시고 편찮으시고. 도와주실 형편도 못되고요. 그래도 이제는 봄이가 손에 물 안 묻히고 살 수 있어요. 제가 로봇 청소기에 식기세척기에 워시타워까지 다 넣어줬거든요. 이제 걱정 안 하셔도 돼요."
남편에게는 20년 전 내 친정엄마의 걱정 어린 시선이 마음의 빚처럼 남아있었던 모양이다. 안쓰러운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