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을 닦다
그 손톱만 한 구름 같은 게 아픔의 시작이었다.
갑자기 아내가 얼굴을 찌푸리며 팔목을 부여잡았다. 살펴보니 잡은 곳이 벌겋게 성이 났다. 의사가 사진을 이리저리 돌려 보더니 아내의 손목에 석회가 생겼다고 한다. 눈에 겨우 보일만큼 작아도 생기거나 없어질 때 염증을 동반해 통증이 심하다고도 했다.
미안했다. 피아노를 많이 쳐서, 성경 쓰기를 무리해서 그런 거라며 아내의 취미생활을 원인으로 몰았지만 그건 내 마음 편하자고 찾은 핑계였다. 많이 써서 그런 거라면 당연히 빨래 설거지 청소 칼질 같은 집안일이 원흉이겠지. 두 아이 먹이고 입히고 재운 결과겠지. 남편 뒷바라지로 인한 상처겠지. 붕대 칭칭 감긴 아내의 손목에 속이 상했다.
어릴 적 할머니는 부엌에 남자가 들어오면 고추를 잃는다고 하셨다. 집안에 여자가 몇인데 남자가 손에 걸레를 쥐냐며 한숨을 쉬셨다. 그런 할머니와 어린 시절을 보낸 탓일까. 마음 좋은 아내의 배려 덕일까. 살면서 나는 집안일에 거의 손을 대지 않았다. 그래도 보고 듣는 건 있으니 아주 안 한 건 아니다. 청소기도 잡고 바닥도 닦았다. 하지만 아내의 분량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오빠가 집안일을 돕는다고 생각하니까 짜증이 나는 거야. 집안일은 돕는 게 아니라 그냥 함께 하는 건데..."
예전에 아내가 청소를 하면서 불평하는 내게 한 말이다. 그렇다 나는 가끔 청소를 하거나 더 가끔 설거지를 할 때면 꼭 내가 할 일이 아닌 일을 억지로 하는 것 같아 짜증이 났다. 아내의 손목이 저렇게 되고 보니 이제는 이일 저일 가릴 처지가 아니라는 때늦은 조바심이 밀려왔다.
하지만 아무리 마음을 잡아도 설거지통을 볼 때마다 짜증이 났다. 물기까지 말끔히 비웠는데 돌아 서면 쌓이고 돌아보면 수북해진 싱크대가 미웠다. 계란 구운 숟가락을 쓰지 않고 새 숟가락을 꺼내는 딸의 모습에 울화가 밀었지만 꾹 참았다. 아내는 이십 년, 아니 결혼하기 전부터 따지면 삼십 년 넘게 한 일을 겨우 일주일 하면서 불평을 표하는 좀생이가 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토요일, 반성의 의미로 대청소를 했다. 외출 후 돌아온 아내와 아이들이 집안이 깨끗해졌다며 놀란다. 기분이 좋았다. 아이들의 오오 하는 추임새와 추켜올린 엄지손가락에 뿌듯했다. 그런데 저녁을 먹으며 아주 사소한 아내의 말 때문에 기분이 상했다.
그렇지 않아도 아내를 아프게 만든 무능력한 자책감이 나를 괴롭혔고, 온종일 집안일, 그 하찮은 일에 하루를 빼앗긴 것 같아 파티에 초대받지 못한 콩쥐가 된 듯 서글펐다. 게다가 이 모두를 일상으로 받아들여야 하기에 남은 생에 안고 가야 할 지병을 얻은 것 같이 씁쓸했다. 거기에 아내의 별 의미도 뜻도 없는 말이 트리거가 됐다. 저녁 설거지를 하는데 우울함이 몰려왔다. 내 의견을 무시하는 아내가 미웠다. 섭섭하고 속상했다. 설거지, 청소나 하는 남편이라 무시하나 싶어 더 우울했다. 쌓인 우울이 터질 것 같았을 때 행주를 빨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아내는 이 많은 우울의 반복을 어떻게 이겨냈을까' '얼마나 많은 짜증을 넘기고 삭혔을까.'
가슴이 울리며 눈앞이 먹먹했다. 이제는 미안함을 넘어 오랜 시간 설거지통에 손 담그며 그릇 한 번 집어던지지 않은 아내가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그리고 주부 우울증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이 땅의 할머니 엄마 아주머니 누나 그리고 아내, 그 모든 여성들이 존경스럽다. 이제부터 나는 그릇을 닦는 일이 슬플 것 같지만은 않다. 아내의 우울을 아주 조금이라도 덜어내는 일이니까. 좀팽이 꼰대라 가끔 짜증은 나겠지만 극복해 보련다. 늦었지만 이제부터 요리도 배워야겠다. 할 수 있을까. 정말 자신이 없지만 양파 까는 일부터 시작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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