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구슬이 더는, 구르지 않아요.
사라진 대문 - 2
“아니 엄마, 나야. 사실, 비밀인데 나 이제 마법을 쓰게 됐거든.”
엄마 아빠의 표정은 몇 분간 멈춰있었어요.
마치 정전이 된 것처럼. 불이 켜질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처럼 말이에요.
“레나, 엄마가 미안해.”
엄마는 레나의 말을 듣고 울기 시작했어요. 엄마를 울리려고 한 말도 아니었는데 말이죠. 어른도 울 수 있다는 걸 그때 레나는 깨달아요. 아빠는 옆집 아주머니께 전화를 걸기 시작했어요. 집에 다녀갔는지 여쭤보려고 하나 봐요.
레나는 오롯이 서 있기 힘들었어요.
방금 레나가 한 말이 구겨진 신문지가 되었거든요.
지금, 엄마 아빠의 표정에는 많은 게 없어요. 레나가 무언가 해냈을 때 생기는 눈가에 주름도, 올라가는 입꼬리도. 엄마 아빠가 레나의 말에 잘 귀 기울일 때 눈동자에서 나오는 구슬이 있는데, 그것마저도 지금은 없어요. 손에 떨어지지 않고, 잡을 수도 없어서 레나가 아주 좋아했던 구슬이거든요. 그 구슬은 때때로 레나의 시선을 따라 허공을 유유히 굴러요. 그러나 없어요, 지금은.
레나는 다급한 마음에 어제 받은 책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려 엄마와 아빠에게 보여줬어요. 그리고 어제 일어난 일에 관해서 자초지종 설명을 했죠. 믿기지 않는 일에는 긴 설명이 필요하니까요. 여전히 구슬은 나오질 않네요. 아마도 레나가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했나 봐요.
이제 레나에게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어요.
보여주는 것.
그 순간 레나의 머릿속으로 그 아저씨의 손가락이 스쳐 갔어요. 어젯밤 레나에게 마법을 전해주고 간 그 아저씨 말이에요. 레나 역시 아저씨가 했던 그대로 아빠에게 마법을 사용했죠.
손가락을 휘두르는 것.
그러자 전화기를 붙든 아빠의 입이 착 달라붙어버렸어요.
수화기 너머론 아주머니가 여보세요, 여보세요? 계속 같은 말을 반복해요. 입이 딱 붙어버린 아빠 대신 엄마가 전화를 받았어요.
“안녕하세요, 우리 레나 자주 돌봐주셔서 감사하다고 연락드렸죠. 다음 달에 저녁 식사로 보답하고 싶어서요.”
그렇게 엄마와 아주머니의 전화는 십 분간 이어지다 마무리가 되었어요. 전화를 끊은 뒤 엄마는 레나를 빤히 쳐다봤어요.
“레나, 방금 그거 뭐야?”
엄마가 물어왔어요. 아빠는 옆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입을 오물거리기만 했죠.
“내가 마법 쓸 수 있다고 했잖아.”
그때부터 엄마와 아빠는 믿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레나는 이미 힘이 빠졌어요. 엄마와 아빠에게만큼은 보여주지 않아도 닿을 줄 알았거든요. 레나는 진심에 닿고 나서야 비로소 보게 되는 것들이 있다고 믿었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었어요. 순서가 바뀌었는걸요.
레나는 아직 어려서 마법을 제어하는 능력이 부족했어요. 물건을 끌어오는 마법을 사용하다 그만 접시를 깨뜨려버리고, 잠든 상태로 이불을 걷어차는 아빠에게 이불을 덮어주려다 그만 바지를 내려버리고 말아요.
유치원 선생님에게도 사고뭉치로 찍혔어요. 마법이 장착되고 생긴 많고 많은 사고 중에 가장 양호한 일화를 하나 알려드릴게요.
선생님은 피아노를 치며 동요를 부르고 있었어요. 피아노를 치며 아이들과 노래하는 선생님에게 레나는 의도치 않게 손가락을 휘둘러버렸어요. 노래하던 선생님의 입은 닫히고, 한 시간 동안 열리지 않았어요. 아이들은 선생님이 일부러 장난치는 줄 알고 하나둘씩 까르르 웃어댔어요.
선생님은 요즘 일어나는 몇 번의 사고들을 되감기 해보았어요. 항상 그때마다 레나가 있었다는 것을 깨달아요. 레나가 요즘 좀, 이상하다고 느껴요.
선생님은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상담을 시작했어요. 처음엔 모른 척하려 했으나, 결국은 털어놓게 돼요. 이후, 엄마는 선생님께 비밀을 유지해 달라고 간곡하게 부탁드려요. 선생님은 알겠다고 하셨어요.
그 뒤로 유치원에서 전화가 꽤 자주 왔어요. 엄마는 점점 지쳐가고, 계속해서 사고를 치는 레나를 보며 아빠도 깊은 한숨을 쉬게 되어요. 레나는 엄마와 아빠를 지치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저 두려움을 혼자 힘으로 없애기 위해 내린 선택이었을 뿐이에요.
어느 날 엄마와 아빠는 미안하다는 편지 한 장과 돈을 남기고 레나를 떠나요.
레나는 이렇게 엉엉 운 적은 처음인 것 같다 느껴요. 항상 두려워서 울곤 했는데 오늘은 슬퍼서 우는 거래요. 혼자서 이 큰 집을 지켜나가는 것은 두렵지 않다고 해요. 그러나 곁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은, 그 사실 만으로도 레나는 아프다고 해요.
그때 레나는 마법을 주고 떠난, 그때 그 아저씨가 했던 말을 떠올려요.
‘네가 가진 두려움 그리고 나눔.’
레나는 이제 낮은 대문이 두렵지 않아요. 하지만 깨달아요. 그 너머에 있는 것과 아무것도 나눌 수 없겠다는 것을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