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선명하면 조금 더 멋져질 줄 알았어요.

사라진 대문 - 1

by 이은수

“레나, 색채가 너무 선명해. 살짝 희미해도 좋을 것 같아.”

“선명하면 조금 더 멋져질 줄 알았어요, 아빠. 그런데 아닌 것 같아요.”


이건 레나가 엘리만큼 아주 어릴 적 있었던 일이에요.


레나의 집 현관문에는 도어록도, 자물쇠도 없었어요. 걸쇠가 떨어져 나간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오면 바로 거실이 나왔어요. 레나와 엄마, 아빠를 지키고 있는 것은 키가 작은 대문뿐이었죠.

언제든, 누구든 낮은 대문을 타 넘어 들어올까 레나는 늘 불안했어요. 하지만 엄마도, 아빠도 레나에게 괜찮다, 아무 일도 없을 거다. 그렇게만 이야기하고 아무 대책도 세우지 않았어요.


그날도 밤은 아주 희미하게 찾아왔어요. 그렇게 희미해지다가 영원한 희미함으로 남을 것만 같던 하늘도 점점 어둠으로 짙어져 갔어요.


엄마도, 아빠도 잠든 시간에 레나는 침대에 누워 잠을 뒤척이고 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작은 불빛이 허공에 나타났고 레나는 그 불빛에 홀려 거실로 걸어 나왔어요. 그때, 문밖에서 발소리가 들려왔어요. 그 소리는 점점 가까워졌죠. 그리고 이내 문 앞에서 멈췄어요. 레나는 숨죽이며 문을 주시했어요. 한참이 지나도 열리지 않는 문을 보며 레나는 안도했어요. 그러나 긴장을 놓은 바로 그때, 문이 스르륵 열렸어요. 바깥엔 모자를 푹 눌러쓴 키 큰 아저씨가 서있었어요.

“엄마, 아빠!”


그 순간 레나는 깨어났어요. 다행히 꿈이었군요. 이런 꿈을 자주 꿔왔지만, 누군가의 형체를 본 것은 처음이었어요. 왠지 오늘은 무슨 일이든 일어날 것만 같은 날이에요. 여전히 밤이 짙어요. 그럼에도 레나는 용기 내어 거실로 나갔어요. 그리고 현관 앞에서 기다려요. 그래놓고 막상 바깥에서 소리가 날 때마다 흠칫 놀라곤 했어요.

그렇게 한 시간 정도 지났을 즈음, 레나는 다시 방으로 들어가고자 일어났어요.


그런데 그때, 바깥에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어요. 소리는 방금 꿨던 꿈의 전개처럼 점점 가까워져 왔죠. 뚜벅뚜벅.

잠시 후. 스르르 문이 열렸어요. 꿈에서 나타난 그 아저씨였어요. 결국 그를 마주하고 말았어요. 키가 아주 크고 모자를 푹 눌러쓴 그 아저씨 말이에요.

그 순간 레나는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고, 정신을 차린 뒤 소리 지르려 하자 그는 손가락을 휘둘렀어요. 그러자 레나의 입은 떨어지지 않고 달라붙어버렸어요.


“한 시간 후면 입을 벌릴 수 있을 테고, 말도 가능할 거야.”

레나는 뒤돌아 재빠르게 엄마 아빠에게 가려했으나 아저씨는 레나를 붙잡았어요. 그리고 이렇게 말했어요.

“두려움 탐지기가 이 집을 가리켰어. 난 널 해치지 않아, 제안하러 온 거야.”

그의 목소리는 눈밭을 걸을 때 나는 서걱서걱 소리와 닮아 있었고, 얼굴은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것 같이 위태위태해 보였어요.

“너에게 내 마법 능력을 줄게. 사는 동안 누구든 널 해치지 못하게 강해질 거야. 고개를 끄덕이면 이 제안을 수락한다는 의미로 받을게.”

레나는 단 한 번도 엄마, 아빠의 허락 없이 무언갈 결정해 본 적이 없어요. 고개를 돌려 엄마, 아빠가 잠들어 있는 방을 하염없이 쳐다만 봤어요. 레나는 깊은 고민에 빠졌어요.

밤마다 찾아오는 악몽, 그로 인해 두려움에 떠는 레나를 아무렇지 않은 듯 여기는 엄마, 아빠. 레나는 그들에게 지친 지 오래였거든요. 그때 고요 속에서 레나의 속마음이 외쳤어요.


‘내가 지키자. 누구든.’


마법을 가지면 강해질 수 있다는 아저씨의 제안에 레나는 고개를 끄덕임으로 수락했어요. 이후, 아저씨는 레나에게 벅차오르는 표정으로 사탕을 건넸어요. 그리고 레나는 그 사탕을 삼켰죠. 사탕이 레나의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순간, 레나의 눈과 귀에서 짙은 어둠과 함께 선명한 빛이 새어 나왔어요. 그것은 이내 아저씨의 온몸을 휘감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점점 스며들었죠.


“고마워.”


아저씨는 고맙다는 인사말과 함께 두꺼운 책 한 권을 건넸어요. 그 책의 표지에는 ‘알렉스의 마법 레시피’라고 쓰여 있었어요. 그런데 몇 초가 지나고 '알렉스'라는 글자는 서서히 지워지고 '레나'라는 글자가 새겨졌어요. 레나는 돌아서서 떠나려는 그를 붙잡아요. 그리고 이리 와 보라고 손짓해요. 그리고는 자신의 방으로 가서 돈을 차곡차곡 모아뒀던 저금통을 꺼내어 내밀어요.


“괜찮아, 난 이미, 대가를 두 개나 받았어. 네가 가진 두려움 그리고 나눔.”

그때 레나는 그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어요. 그렇게 그는 알 수 없는 문장을 남기고 사라졌어요.

한 시간이 지나고, 레나는 입을 벌릴 수 있게 되었고 다시 말할 수 있게 되었어요. 그가 사라져도 밤은 여전했답니다. 그러나 온 세상이 짙고 어두운 색채임에도 레나는 더 이상 두렵지 않았어요. 그렇게 레나에게 있던 두려움은 아저씨와 함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사라졌어요.

다음 날, 엄마와 아빠가 아침 일찍 눈을 뜨고 거실로 나왔어요. 말도 안 되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죠. 식탁 위에 밥과 반찬이 차려져 있었어요. 그리고 레나가 방 안에서 달려 나와 웃으며 얘기했어요.

“내가 했어. 잘했지?”

그러자 엄마와 아빠는 눈이 휘둥그레졌어요. 레나는 아직 어리고, 요리를 배워본 적이 없거든요. 놀란 엄마는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혹시 집에 누가 다녀갔냐고 물었어요. 그러자 레나는 대답했어요.

“아니 엄마, 나야. 사실, 비밀인데 나 이제 마법을 쓰게 됐거든.”

keyword
이전 03화3화. 귀여운 세상을 잔뜩 보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