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회사는 그만두라고 있는 것이다.

퇴사가 무지막지하게 마려웠습니다.

by 에밀리H

처음 입사했던 회사를 약 2년 8개월 동안 다니고 그만뒀다.


그것도 한국 나이 서른 살이 되던 해에 말이다.

남들은 그때까지 모아둔 돈으로 결혼을 하거나 미래를 위한 금융투자를 하는 중이었는데 나는 그것들을 철저하게 등지고 무작정 떠나기로 했다.


혼자 낯선 나라에 가보기.


무모하게 퇴사를 지르고 유럽을 간다고 해도 말릴 사람 하나 없는 자유의 몸이었다. 그래서 3개월 동안 멀리 떠나 있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사실 나조차도 한국나이 서른에 이런 일을 저지를 줄은 몰랐다.


서른이 되면 뭐라도 하고 있을 줄 알았기 때문이었을까?


어릴 적 상상하는 서른이란 나이에는 일찍 결혼을 해서 살림을 차린 상태이거나 아니면 일에 푹 빠져서 남들이 알만한 업적을 남겼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직접 겪은 나의 인생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부터 쉽지 않았고 대학을 졸업해서 일을 시작하기까지 엄청난 인내의 시간들을 거쳐야만 했다.


누구는 안 그럴까.


남들과 마찬가지로 나의 첫 입사와 퇴사에는 지긋지긋한 스토리가 담겨 있다.


내가 공식적으로 처음 입사 절차를 밟은 곳은 바이오 회사였다. 입사했던 시기에 B2B에 집중되어 있던 바이오 원료를 화장품에 접목하여 대중화시키는 초기 단계를 다지고 있는 중이었다. 회사 내부 사정이 어떠하든 화장품 회사에 취업하고 싶었던 나에게는 원료 연구와 화장품 제조를 겸하는 회사에 운 좋게 입사하게 된 거였지만, 한편으로는 바이오 원료와 관련된 전문 지식을 억지로 받아들여야 해서 부담이 점점 늘어났다.


취뽀의 기쁨은 하루천하다.


스스로가 만들어놓은 감옥에 갇혀서 허우적거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를 왜 뽑았는지, 그리고 내가 여기서 뭐 하고 있는 짓인지 모를 일이었다. 그냥 그런가 보다 하면서 때에 따라서 생기는 단순한 일들을 처리하고 있었는데 뭔가 보람차지 못했다. 매일 택배 포장 업무와 매출입 장부 기입하는 단순하지만 체계적이지 못한 일에 시달렸고, 월말이 되면 재고조사에 신경을 곤두 세우는 날이 많았다. 점차 사회초년생이 가질만한 활기참과 열정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영혼 없는 김 빠진 겉가죽만이 출근해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한 번은 나에게 업무 포지션에 대한 의사를 묻기 위해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말해보라 했다.


하지만 나는 쉽게 말하지 못했다.


내가 말하는 대로 그 포지션을 줄까 봐 행복한 고민을 했던 것이 아니었다.


당시의 고민은 이미 각 포지션마다 사람이 채워져 있었기 때문에 어디에 나의 영역을 뿌리내려야 할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괜한 욕심에 작은 틈을 비집고 들어가 박힌 돌을 빼내는 뻐꾸기 같은 존재가 되기 싫어서 주저했던 거였다. (물론 그럴만한 능력 또한 없었지만...)


결국 나를 뽑긴 했지만 어디다 써먹어야 할지 몰랐던 회사는 이일 저일 여기저기 나를 굴리기 시작했다.


이러한 현실을 직시하기까지 엄청 허황된 꿈만 갖고 있었던 건 아니었다. 신입사원이 입사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고, 내 한 몸 받쳐 일한다고 한들 엄청난 업적을 남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또 그런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란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어차피 회사도 나에게 큰 기대가 없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페이에 대한 필요 이상의 욕심은 부리지 않았다. 그래서 이 회사가 나에게 줄 수 있는 최저 금액에 맞춰 일만 했을 뿐이다.(받은 만큼만 일할 거라는 다짐이 있었다.)


어차피 나는 화장품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소비자에게 유통되는 다양한 흐름을 읽을 줄 알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요즘 애들은 열정이 없어. 조금 뭐라 하면 빽빽거리기나 하고 금방 포기해.

난 이 말이 여전히, 그리고 너무도 싫다.


과거보다 더 많은 스펙을 요구하는데도 불구하고 과거보다 근무 환경이나 처우 수준은 현저히 떨어진다. 열정이 없는 것이 아니라 짓눌려 있는 거고 금방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순간의 잘못된 선택을 바로잡기 위해 과감히 떠나는 것이다.


여러 군데 지원해서 면접 보러 다니고 겨우 입사한 회사였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너무 보글보글 끓고 있어서 쉽게 먹을 수 없는 것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래도 월급이라는 것을 받고 있으니 몸과 마음이 데어서라도 일에 뛰어들어야 했고 살아남기 위해 뭐라도 건져 입에 넣고 꿀꺽 삼켜야 했다.


도대체 네가 여기서 하는 일이 뭐냐는 구박을 들어가며 몇 개월을 버텼더니 어렵사리 제품 기획 보조 일이 주어졌다. 화장품 광고 문구에 매일같이 치이면서 쓸 수 있는 표현들을 수집해 짜깁기를 했고 여러 용기 샘플을 비교해 가며 디테일까지 챙겨야 했다.


2년 8개월 전부가 힘들었던 건 아니다.

약 11개월을 버틸 때쯤에 조직개편이 됐다. 새롭게 팀이 꾸려졌고 거기에 새 부장님이 오셨다.


그 어렵다는 화장품 회사에서 존귀한 '존버 정신'을 발휘하기로 마음먹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그때 오신 부장님 덕분이었다.


일이 많아져도 보람차고 즐거웠다. 그때 부장님은 나의 불안한 포지션에 대한 걱정에도 풋내기가 하는 푸념이라 여기지 않고 끝까지 들어주셨고, 같이 고민하고 방안을 마련해 주셨다. 이전까지는 다른 길을 알아보겠다며 떠날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그때 부장님 덕분에 1년을 더 배우고 더 버틸 힘이 생겼다.


하지만 인생 불변의 법칙 중 하나인 '인생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의 시간이 찾아왔다.


조직이 몇 번을 거듭해서 새 단장해도 나는 늘 같은 그룹에 속해 있었다. 존버 정신에 입각해서 잘 버티고 있는 거라 생각했지만 현실은 전혀 달랐다. 어느 순간 나는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몸집만 늘어난 사원'이 되어 있었다.


때에 따라서 직급에 상관하지 않고 새로운 분들이 입사하면 제품 교육은 거의 내가 도맡아서 해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몸서리가 쳐졌다.


많이 안다는 건 썩 유쾌한 일이 아니다.


많이 아는 만큼 회사가 지향하는 목표와 방향성에 따라 해야 하는 일만 늘어날 뿐이다. 회사가 인원을 축소하면 그들이 했던 일이 나에게로 다시 돌아온다는 걸 경험한 것과 더불어 회사의 목표가 바뀌면 나는 언제든 변화에 맞서 싸울 준비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결국 서로 같은 목표를 향해 으쌰 으쌰 했던 팀이 해체됐고 다들 하나둘씩 제 살길 찾아 떠났다.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 머리를 최대한 사용해서 핵심 원료 교육을 듣고 B2B 영업을 위한 준비를 충실히 하고 싶었지만 애초에 회사에 입사하면서 가졌던 목표와 너무 멀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의 정신적 지주인 부장님이 그만두시면서 더 이상은 초반에 가졌던 목표를 이뤄나갈 수 없게 됐다.


마음 깊숙이 묻어 둔 돌아이 기질이 다시 기어 올라오기 시작했을 때였던가.


또 다른 핑곗거리가 필요했다.


이렇게 일하고 돈을 모았다고 한들, 내가 무수히 노력했던 이십 대가 잿빛으로 변해버릴까 봐 덜컥 겁이 났다.


서른 살에 다시 찾아온 사춘기 그리고 방황...


'도망'이라는 매력적인 두 글자에 꽂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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