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복 터진 사람의 숙명
2018년 2월 9일
퇴사일이 확정됐다.
이때의 기분은 마치 날짜 받은 사형수처럼 마음이 무거우면서도 한편으론 홀가분했다.
퇴사를 결심할 때 어떠한 계획도 없이 무조건 '퇴사'라는 걸 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대학 동기 드니가 '한국 갭이어'에서 일하고 있는 것이 떠올랐다.
'갭이어'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아니라 타국 또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공간에서 생활하면서 배움의 범위를 넓혀나간다는 취지의 활동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렇게 익숙한 콘셉트가 아니지만 해외 몇몇 나라에서는 갭이어가 매우 익숙한 활동이었다.
사실 한국 나이 서른에 갭이어 같은 쉬는 시간은 불필요하고, 큰 깨달음을 얻지 못할 수 있기 때문에 남들처럼 이직하는 편이 나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때 당시에 내가 갭이어 시간을 갖기에는 나이가 많았지만, 갭이어를 통해서 서른 살까지 스스로 묶어놨던 굴레에서 벗어나 새롭게 거듭나고 싶었다.
드니가 일하고 있는 한국 갭이어에 연락해서 심도 있는 상담을 나누고 나니 나만의 3개월 여정이 뚝딱 만들어졌다. 그 계획은 이전까지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나만을 위한, 나 혼자 떠나는 여행이었다.
내가 상담을 통해 얘기했던 작은 목표는 이러했다. 1. 단기간이라도 어학연수를 받아보고 싶었고, 2. 원 없이 향수를 탐닉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몰타에서 어학연수 2달 + 파리에서 한 달 살아보기] 프로그램을 추천받은 거였다.
갑자기 뜬금없이 '웬 향수?'라고 생각할 수 있다.
향수는 내가 화장품 회사를 목표로 했던 궁극적인 목표이자 어떠한 형태로라도 옆에 끼고 살고 싶은 나의 열정의 한 부분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때를 돌이켜 생각해 본다면 도시락을 싸들고 다니면서 말렸어야 했다.
정확하게는 화장품 회사 입사를 목표로 했던 대학교 2학년 때로 다시 돌아가서 싸대기를 때려서라도 말리고 싶은 게 지금의 심정이다.
잦은 퀴즈와 발표과제로 시달릴 수밖에 없는 경영학도여서 대학 시절에 도서관이나 PC 열람실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았다. 그러다가 즐겨 앉았던 도서관 자리가 자연과학과 기술과학으로 분류되는 400-500번 대 책들이 꽂혀있는 곳이었는데...
거기서 우연히 발견한 책 한 권!
마치 '나를 읽어 주세요' 하고 빛이 나는 것만 같았던 그 책.
당신의 향수, 찾으셨나요?
이 책은 나에게 휘향 찬란한 향수 세계에 눈을 번쩍 뜨게 하는 심봉사의 공양미 삼백석과도 같은 존재였다. 이 길이 곧 내 길이라고 느낀(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착각한') 나는 한참 뒤에 이 책의 저자가 운영하는 블로그에 가서 긴 안부글을 남겼다.
요약하면 이렇다.
향수에 관심이 많으나 (이때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향수로 벌어먹고 살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공부하거나 일을 시작해야 하는지 알려주세요!
조향사님한테 무언가를 맡겨 놓은 사람처럼 그냥 무작정 찾아가 해답을 내놓으라 하는데, 이 당돌하고 얼빠진 학생이 얼마나 웃겨 보였을까.
답변 내용을 요약하면 이러했다.
이때 당시(2010년)에는 국내에 이렇다 할만한 향수회사나 브랜드가 없었다. 대부분 향수를 공부하기 위해서 프랑스나 미국에 유학을 가거나, 우리나라에서는 대기업 화장품 회사에 들어가 일을 시작하는 것이 방법이라 말씀해 주셨다. 더욱이 나는 화학을 전공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향료 연구 쪽보다 향수 브랜드 마케팅에 대한 커리어를 쌓기 위해 외국어 공부 열심히 하라고 일러 주셨다.
이렇게 달린 답변 덕분에 '화장품 회사 입사'가 나의 목표가 되었던 거였다.
향수로 IFF나 프랑스에 있는 ISIPCA 향수 전문 교육기관을 목표로 두고 공부할 수 있지만 한 학기 학비가 너무 비싸서 빠르게 포기했다. 대신 국내 화장품 회사 어디든 취업을 목표로 삼아 열심히 노력했다. 타과 전공 수업인 기초 프랑스어를 재수강하기로 결정했고, 남들 다 가는 유학 갈 형편은 안 됐지만 어떻게 해서라도 워킹홀리데이를 가서 어중간한 영어실력을 때려잡아 오고 싶었다.
하지만 뜻하지 않게 집에 일이 생기는 바람에 방향을 틀어서 국내에서 할 수 있는 대외활동인 화장품 브랜드 서포터즈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그때 당시 취준생의 요건 중 하나는 '나만의 경험을 토대로 한 스토리텔링을 갖춰야 한다'는 거였다. 그래서 스스로 나만의 스토리를 만들어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화장품 브랜드사에서 주관하는 서포터즈 활동도 해보고, 마케팅 기획 발표 프로젝트에 참가해서 순위 안에 들기도 했다. 그러다가 국내에도 조향 교육 기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그 조향 학원의 원장님이시자 조향사님이 만든 향수 브랜드 론칭 파티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인맥을 쌓아갔다.
하지만 늘 불안하고 만족이 되질 않았다.
이것만으로는 나만의 스토리텔링을 하기에는 역부족이라 생각한 나머지 마케팅의 일부분인 리서치 회사에 인턴으로 들어가 8개월 동안 회사생활의 전반을 배우고 어렵사리 바이오 화장품 회사에 들어가게 된 거였다.
회사를 다니면서도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입사하고 반년 동안 개인 용돈을 아껴가며 돈을 모아 다음 해에 조향 학원을 등록해 주말마다 수업을 들으러 다녔다. 남들은 왜 비싼 돈 들여가며 조향 학원을 다니냐며 의아해했지만 회사일 이외에 한눈팔 곳이 생겨서 너무도 즐겁고 행복했다.
주말에는 배웠고 평일에는 회사에서 열심히 뛰어다녔다.
그렇게 목표를 향한 의지와 열정이 있으면 몸이 힘들어도 행복할 줄 알았다.
하지만 사회초년생이 가장 많이 하는 착각이 바로 이거였다.
이와 같은 공식만 잘 지켜내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현실은 시궁창이었다.
매일같이 변하는 트렌드와 정보를 빠르게 캐치해서 수시로 수정해야 했고, 맨 땅에 헤딩하는 일이 많았다. 방금 전까지 많은 시간을 쏟아부었던 것들을 갑자기 엎어버리는 일이 수도 없이 반복됐고, 실시간으로 터지는 여러 사건사고로 감당이 안 된 적도 많았다. 매일같이 하기 싫은 일 70과 맞서 싸워야만 했다.
그중에서 가장 최악은 국내에 있는 화장품 대기업 몇 개를 제외하면 중소기업의 연봉 수준은 낮았다. 점차 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일한 만큼의 성과가 나오지 않는 것을 작고 소소한 월급 탓으로 돌렸다. 일은 누구보다 많이 하는데 운이 따라주지 않으면 이렇다 할만한 성과는 기대하기 힘들었고, 쥐꼬리만 한 월급이 통장에 스쳐갈 때마다 회의감마저 들었다.
더불어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은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화장품이 지긋지긋 해졌다.
기획의도에 맞게 썰을 잘 풀어서 설명을 해야 했지만 그때마다 "그냥 싼 거 아무거나 사서 듬뿍 쳐! 발! 쳐! 발! 하세요!"라고 고레 고레 소리 지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목표를 향해 달려 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게 맞는지를 틈틈이 체크하지 못했다. 나랑 맞지 않는 거 같은데 억지로 잡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억지로 힘을 내려하는 내가 너무도 초라했고 비참했다. 그리고 회사에서 점차 B2C 영역을 줄이고 B2B 원료 사업을 확장시켜 나가려 했기 때문에 퇴사 의욕이 점점 더 불타올랐다.
뜻이 맞지 않으면 떠나야 할 때가 된 게 맞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